최태원·노소영 '세기의 이혼', 대법 판결이 남긴 것
‘세기의 이혼’으로 불린 최태원·노소영 소송, 대법원이 내린 결론은? 불법 자금은 재산분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번 판결이 남긴 법적·사회적 의미를 짚어본다.
[법조프리즘]
박주희 로펌 제이 대표변호사
불법적이거나 사회질서 반한 재산형성 과정은 법 보호 불가
재산분할 목적은 공평한 청산
'적법한 재산이어야' 원칙 확인
![]()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지난 4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2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
10월 16일 대법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노 관장의 부친인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조성한 300억원의 비자금을 재산분할의 기여로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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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항소심에서는 판단이 크게 달라졌다.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에게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으로 1조 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 배경에는 노 전 대통령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300억원이 최종현 선대회장 쪽에 건네졌다는 메모와 어음 봉투가 있었다. 재판부는 이 자금이 SK그룹 성장의 종잣돈이 됐고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과 노 관장의 기여가 있었다고 봤다. 그러나 2심 판결을 두고 불법 자금인 비자금을 혼인 생활의 기여분으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한가를 두고 ‘불법 비자금의 대물림’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이 사건의 법적 쟁점은 단순히 재산분할 비율의 문제가 아니라 혼인 중 형성된 재산이라 하더라도 그 형성의 기초가 법질서에 반할 경우, 법적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였다. 대법원은 여기에 분명한 답을 내렸다.
설사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최 선대회장에게 전달됐다 하더라도 이 돈의 출처는 노 전 대통령이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이고, 이를 사적 관계를 통해 은닉·분산해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사회질서에 반하는 반사회성·반윤리성·반도덕성이 현저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해당 자금이 재산 형성에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법적으로 이를 재산분할 기여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우리 민법 제746조의 “불법의 원인으로 급여한 재산은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원칙을 이혼 재산분할 영역에서도 적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즉, 대법원은 재산의 형성과정이 불법적이거나 사회질서에 반한다면 그 결과가 아무리 부부의 재산 형성에 영향을 주었더라도 법적으로 보호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대법원이 이와 같은 판결을 하기까지 현실적인 고민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생전에도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었고 일부는 환수하지 못한 채 남았다. 그런데 그 자금이 딸 부부의 재산 형성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다시 개인의 분할 청구 근거로 주장된다면, 법이 결과적으로 환수하지 못한 불법 재산을 사적 재산으로 승인하는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러한 결과가 정의의 실현이라는 사법의 기본 원리에 반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재산분할의 목적이 ‘혼인 중 형성된 공동재산의 공평한 청산’에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지만 그 전제가 ‘적법한 재산 형성’이어야 함을 다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파기환송심에서는 불법자금이 일부 혼합된 경우 어느 범위를 배제하고 불법성과 합법적 기여가 병존할 때 비율을 어떻게 나눌지가 다시금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법리가 실제 사건에서 어떻게 구체화할지 파기환송심의 판단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최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