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방’을 아시나요…MZ세대 새 놀이문화? 고물가 고육지책? [이슈크래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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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근길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 -4500원”

“배가 불렀군요. 회사 가서 커피믹스 타드세요”


회사에 입성하는 나를 위한 체력 안배 포션인 ‘아아’ 주문에 날아오는 매서운 피드백. ‘아아’ 한잔에 졸지에 배부른 거지가 된 나는 다시 한번 ‘거지방’ 멤버들의 꾸중을 뼛속 깊이 새깁니다.


개인의 소비·지출 내역을 메신저상에서 공유하고 평가를 주고받는 이른바 ‘거지방’이 유행인데요. 20~30대 청년층이 대다수인 ‘거지방’ 접속자들은 한 달 자신의 작고 소중한 월급 또는 용돈의 과도한 지출을 막기 위해 이곳에 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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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방’ 입성, 내 지출을 보고한다


방마다 세부 규칙은 다르지만, 대부분의 기본 규칙은 한 달 목표 생활비를 정해 두고, 지출 내역을 공유하는 건데요. 그냥 무작정 지출을 하기보다 그 전에 한번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든거죠. 돈을 쓰기 전 허락을 받거나 돈을 쓰고 난 후 합리적인 지출이었는지를 확인하는 용도로 쓰입니다.


이 ‘거지방’은 요즘 청년들의 ‘놀이문화’의 하나라는 평도 나오는데요. 현재 오픈 카카오톡 채널에 ‘거지방’을 검색하면 200개가 넘는 방이 나옵니다. 이들 방에는 절약, 구두쇠, 백수, 아끼기 등의 키워드를 해시태그로 걸어놨죠. 방 입장 ID는 주로 지출 목표와 하루 지출 총액으로 설정돼 있습니다.


‘혼자서는 어렵지만, 같이 하면 가능하다’를 실천하고 있는 셈인데요. 여럿에게 소비내역을 공유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없던 절약 정신도 불쑥 고개를 내민다는 간증들이 이어지죠.


서로의 활동 범위를 맞추기 위해서 성별이나 나이에 제한을 두는 채팅방도 생겼는데요. 같은 나이 또래, 혹은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지출 내역을 더 잘 이해하고 확실한 피드백을 내려준다는 이유에서죠.


그 피드백은 참으로도 날카롭고 허를 찌르는데요. 이들의 대화들이 채팅방 바깥으로 전파되면서 ‘거지방’의 존재를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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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지출발생, 해학적인 피드백…‘새로운 놀이’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 속 단비 같은 감각적 쾌락 추구 -1200원’

‘그럴싸한 이름 붙이지 마시고 솔직히 얘기하세요’

‘...아이스크림 구매...’


‘퍼스널 컬러 진단비, 예약금 제외 4만 원’

‘퍼스널 컬러 진단이 왜 필요한가요. 색종이 얼굴 옆에 대보세요’


‘물 -500’

‘오후에 비 온다는데 좀 더 기다리시지 그랬어요’


절약을 벗어나 자린고비와 겸상 가능할 정도의 격한 쪼임인데요. 이처럼 자조적인 농담으로 회원들끼리 서로 감시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힘든 하루하루와 아껴야 하는 시간을 격조 높은(?) 비난과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있는데요. 이들 가운데 한 달 지출 금액이 가장 많은 사람은 닉네임을 ‘거지왕’으로 바꾸고 자필 사과문을 올려야 하는 등 벌칙을 주는 경우도 있죠.


‘거지방’ 접속자들의 지출이 늘어나면 분위기를 환기하는 복명복창도 진행되는데요. ‘자 복창하세요. 우리는 거지입니다’라고 거지왕께서 외치면 모두 ‘우리는 거지입니다’라고 화답하죠. 화면 맨 상단 ‘매일 매시 매초 본인이 거지임을 잊지 마세요’라는 공지도 시선을 강탈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해학적으로 표현하며 서로의 애환을 나누는 하나의 속풀이 방으로도 이용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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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에 지친 2030, 어쩔 수 없었던 ‘짠테크’


특히 이 ‘거지방’을 통해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공감대를 얻는 측면이 큽니다. 나 혼자 아끼려고 하면 작아지고 남들의 나은 사정에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에 함께하며 서로 의지가 되는 느낌이라고 말하곤 하죠.


‘플렉스’와 ‘욜로’과 정반대인 곳. ‘잘하고 있다. 앞으로도 잘해야지’라는 다짐이 들게 하는 응원방과 같은 곳이죠.


‘거지방’은 최근 고물가, 고금리 기조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소비자 물가상승으로 경제력을 완전히 갖추지 못한 청년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건데요.


한국보건연구원(연구원)이 지난달 27일 공개한 ‘청년 미래의 삶을 위한 자산 실태 및 대응 방안’ 보고서를 보면, 2030세대 청년 가구주 가운데 상당수가 위험 수준까지 빚을 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9세~39세 청년 가구주 중 소득대비부채비율(DTI)이 300% 이상으로 ‘위험’ 지표에 해당하는 경우는 21.7%나 됐죠. 즉 전체 2030세대 가구주 10명 중 2명가량은 소득보다 빚이 3배 이상 많다는 건데요. 2012년에는 DTI 위험 지표 청년 가구 비율이 8.37%에 불과한 것을 비추어 볼 때, 이들의 부채 속도도 너무나 가파릅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이러한 ‘짠테크(짠순이+재테크)’ 기조가 앞으로도 지속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경기 둔화 추세가 반등하려면 최소 6개월에서 많게는 몇 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죠.


‘우리는 거지입니다’ 외치는 웃픈 외침. 해학적인 피드백으로 전하는 이들의 ‘짠함’을 그저 웃음으로만 볼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인데요. 이들이 ‘놀이’로 승화시킨 이 현실을 더 경각심을 가지고 바라봐야 할 눈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투데이/기정아 기자 ( kki@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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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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