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카디건 또 품절됐대"…민희진부터 김호중까지 '블레임 룩'에 엇갈린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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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어도어 임시주주총회 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1집은 헤비메탈, 2집은 이지리스닝"


하이브와 갈등을 이어오던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을 총평하는 말입니다.


지난달 31일 민 대표는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임시주주총회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민 대표는 하이브의 임시주주총회 관련 입장을 전하고 질의응답을 진행했는데요. 4월 25일 열린 기자회견 이후 두 번째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첫 번째 기자회견은 그야말로 '역대급'이었습니다. 티셔츠에 야구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초췌한 모습으로 등장한 민 대표는 신랄한 욕설과 비속어를 곁들이며 '하이브가 주장하는 경영권 찬탈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주장을 피력했습니다. 이 기자회견은 "기자회견의 역사를 다시 썼다"는 반응까지 자아냈는데요. 두 번째 기자회견에도 세간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기자회견 현장을 생중계하는 유튜브 채널에는 수만 명의 접속자가 몰렸죠.


이날 민 대표는 모자를 벗고 얼굴을 드러냈습니다. 전날 법원이 민 대표가 하이브를 상대로 제기한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민 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임시주총에서 유임됐는데요. 이 덕분인지 한결 편안해진 얼굴과 전반적으로 차분한 모습으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화사한 노란색 카디건도 눈길을 끌었는데요. 유튜브 라이브 댓글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카디건의 정보를 묻는 글이 쏟아지기도 했죠. 민 대표가 입은 카디건은 일본 브랜드의 퍼버즈 제품인데요. 판매가의 2배 넘는 웃돈을 붙여 팔겠다는 '리셀러'까지 등장했습니다. 이에 앞서 민 대표가 첫 번째 기자회견에서 착용한 모자와 티셔츠도 '품절 대란'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처음이 아닙니다.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사건이 터지면, 피의자나 피고인 등 관련 인물의 패션이 덩달아 주목받는, 이른바 '블레임 룩'(blame look)의 정석과도 같은데요. 최근 논란으로도, 패션으로도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부터 우려까지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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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지드래곤(왼쪽), 김호중. (신태현 기자 holjjak@, 사진공동취재/연합뉴스)

정면 돌파한 지드래곤, 버티다가 모습 드러낸 김호중…패션에 네티즌 반응 엇갈려

'비난하다'는 뜻의 블레임(blame)과 '착장'을 뜻하는 룩(look)을 더한 블레임 룩의 국내 시초는 1999년 탈옥수 신창원이 체포될 때 입은 무지개색 티셔츠가 아닐까요? 당시 신창원은 미소니의 티셔츠를 입은 채 취재진 앞에 섰는데요. 비싼 진품 대신 가품의 인기가 치솟았습니다. 신창원이 입었던 티셔츠도 추후 가품으로 밝혀지기도 했다는 후문이죠.


가수 지드래곤은 '품절 대란'에서 빼놓을 순 없습니다. 지난해 11월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마약 투약 의혹을 완전히 벗은 지드래곤은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와중에도 '출두룩'으로 눈길을 끌었죠.


지드래곤은 인천 남동구 인천논현경찰서에 자진 출석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마약 혐의로 4시간에 걸친 첫 소환 조사를 받았는데요. 푸른 셔츠에 검은 정장 세트, 갈색 구두에 안경까지 착용한 채 경찰서에 등장했습니다.


검은색 뿔테 안경은 프랑스 제롬 마크 마르마지가 2014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만든 아이웨어 브랜드 자크 마리 마지의 제품입니다. 일본 안경 장인들의 수가공을 거쳐 만들어지며, 가격은 127만 원대로 알려졌죠. 한정 생산으로 쉽게 구매하기 어려운 탓에, 지드래곤의 출석 모습이 보도된 직후 검색량과 거래량이 급증했습니다.


슈트 셋업은 국내 여성복 브랜드 르하스 제품으로, 오버사이즈 핏의 여성복이지만 지드래곤이 착용해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 브랜드의 오너는 개인 인스타그램에 지드래곤의 '출두룩' 사진을 게재하며 "감사합니다"라고 적기도 했죠.


그가 인터뷰에서 착용한 오르오르의 뿔테 안경도 문의가 이어졌습니다. 오르오르 측은 지드래곤 인터뷰가 보도된 다음 날 "지드래곤이 착용한 블랙 컬러 모델에 대한 문의가 많아 프리오더를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죠.


음주 뺑소니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가수 김호중도 패션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다만 마냥 호의적인 시선이 쏟아진 건 아니었는데요. 지난달 21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김호중은 포토라인 앞에 대기 중이던 취재진을 따돌리고 건물로 들어갔으며, 조사를 마친 후에도 '취재진이 철수하면 나가겠다'며 귀가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6시간가량 버티던 김호중은 결국 오후 10시 41분이 돼서야 강남경찰서를 나서며 카메라 앞에 섰는데요. 당시 그는 명품 브랜드 몽클레르의 항공 재킷부터 루이비통의 스니커즈, 크롬하츠의 안경 등을 착용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날 김호중의 '출두룩' 가격을 모두 더해보면 750만 원을 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네티즌들은 "몽클레르는 뭔 죄냐", "모자 똑같은 것 있는데 버려야 하나", "입고 싶은 것 입는 것도 문제가 되냐", "의상은 잘못이 없다" 등 엇갈린 반응을 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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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2년 3월 1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크림반도와 세바스토폴 국가 지위와 러시아와의 통일에 관한 국민투표 8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통신/뉴시스)

세계적인 명품부터 국내 브랜드까지…블레임 룩에 패션업계는 '당혹'

블레임 룩에 브랜드 측은 달갑지만은 않은 입장입니다. 당장 제품에 대한 관심이 쏠리면서 매출이 급증할 순 있겠지만, 인물이나 논란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브랜드에 덧씌워질 수 있기 때문이죠. 브랜드 가치에 타격을 입으면 장기적으론 매출 하락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우려는 이미지가 생명과도 같은 명품업계에서 특히 체감됩니다. 명품 브랜드들은 남들과 다르면서도 유행을 선도하는, '쿨'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붓습니다. 비싼 광고모델이나 앰배서더를 기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나 어렵사리 구축한 브랜드 가치는 논란에 선 인물이 착용했다는 사실만으로 불똥을 맞을 수 있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블레임 룩에도 지대한 관심이 쏠린 바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2022년 크림반도 합병 8주년 축하 콘서트 무대에 설 때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로로피아나의 재킷을 입고 나왔는데요. 이 옷은 1만200파운드, 당시 우리 돈으론 1600만 원대입니다. 당시 러시아인의 평균 연봉은 약 67만8000루블이었는데요. 25개월 치 월급을 모아야 살 수 있는 셈이었죠. 푸틴 대통령은 평소 로로피아나 제품을 즐겨 찾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러시아 라디오 매체 ‘모스크바의 소리'(Echo of Moscow)에서 일하는 카린 오를로바 통신원 등은 로로피아나가 직접 푸틴을 향한 비난 성명을 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오를로바 등은 "로로피아나는 푸틴의 홍보 대사가 되고 싶지 않다면 즉각 공개 규탄을 하고 옷을 입지 말아 달라고 요구하는 성명을 내야 한다"는 내용의 인터넷 청원도 냈죠.


로로피아나는 당혹감을 내비쳤습니다. 피에르 루이지 로로피아나 부회장은 당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상당히 당혹스럽다"며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겪고 있는 비극을 대하는 유럽의 입장과 연대하고 있고, 이미 (러시아와) 거리를 두는 단계를 밟았다"고 말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로로피아나를 보유한 프랑스 명품 그룹 LVMH는 그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직후 러시아의 루이비통·디올을 비롯한 럭셔리 매장의 문을 모두 닫은 바 있습니다. LVMH는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을 위해 500만 유로를 기부하고 SNS를 통해 전쟁 난민을 위한 기금 모금 캠페인에 나서기도 했죠.


우리나라에서도 곤욕을 치른 브랜드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을 제작해 유포한 'N번방' 조주빈 등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범죄자들이 특정 브랜드의 옷을 입고 출소하거나 포토라인에 서면서 해당 브랜드 관계자들을 기함하게 한 건데요. 실로 조두순, 조주빈이 착용한 옷 브랜드들은 브랜드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즉각 "유감과 당혹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다"며 "브랜드 로고를 잘라내거나 모자이크를 부탁드린다"는 자료를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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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대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애나 소로킨이 앉아 있다. (AP/뉴시스)

"여긴 법정이지, 패션쇼 아냐"…블레임 룩, 논란 본질 흐린다는 우려도

최근엔 블레임 룩을 일종의 전략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별도의 스타일리스트를 기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판결이나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죠.


실로 2016년 스키장 뺑소니 사건에 휘말렸던 배우 기네스 펠트로는 법정 패션으로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재판은 배심원제로 진행됐는데요. 배심원단은 스키장 사고가 일어나고 재판이 열리던 유타주에서 선출됐습니다. 기네스 펠트로는 과한 로고 플레이를 피하고, 차분하지만 세련된 의상을 택했습니다. 당시 외신들은 그가 마치 유타주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션으로 법정에 나오면서 자신이 유타의 외부인이 아님을 표현했고, 신뢰감을 주면서 배심원단의 공감을 끌어냈다고 평가했죠. 결국, 그는 지난해 3월 해당 사건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올드머니 트렌드의 선두 주자(?)라는 평가까지 받게 됐죠.


2022년 인기를 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나 만들기'의 모티프가 된 가짜 상속녀 애나 소로킨에게 담당 판사는 "여긴 법정이지, 패션쇼가 아니다"라고 질책했습니다. 그는 스타일리스트를 동원해 법정에서 다양한 룩을 선보였는데요. 법정에서 지각을 일삼자, 참다못한 판사가 따끔한 한마디를 던진 겁니다. 많은 현지 매체는 재판 내용이 아닌 그가 입은 옷과 가방에 더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인스타그램에는 그의 아이템을 소개하는 아카이빙 계정이 개설돼 팔로워 5만 명을 돌파하기도 했죠.


블레임 룩에 단순히 선망이나 동경의 시선이 쏟아지는 건 아닙니다. 패션은 패션일 뿐 윤리적 잣대와는 별개라는 인식, 또 논란의 본질이 아닌 스타일에만 관심을 두는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라는 지적도 이어지는데요. 대중 심리에서 자유로울 순 없지만, 화려한 패션 뒤 숨은 진실과 의도를 흐리는 지나친 관심은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힘이 실립니다.


장유진 기자 yxxj@etoday.co.kr

2024.06.1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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