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팅커벨 출몰…2025버전 동양하루살이 전쟁 발발
벌써 도심에 쏟아진 팅커벨 떼, 올해도 동양하루살이와의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잠실야구장부터 도시 전역을 덮친 그들의 생태와 방제법, 그리고 공존 전략까지 정리했습니다.
그 유명한 잠실 벌레 시기 왔다
![]()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
하늘에서 비와 함께 팅커벨이 쏟아졌어요.
소름이 돋는 후기가 또다시 팅커벨의 출몰 소식을 알렸습니다. 벌써 아니 어김없이 팅커벨이 찾아왔는데요. 손바닥보다 작은 몸에 반짝이는 날개. 누군가가 붙인 이름은 팅커벨이지만 떼로 다가오는 이들은 그저 공포일 뿐이죠. 이 작고 날개 달린 곤충은 바로 동양하루살이. 매년 초여름이면 수십만 마리가 도시로 몰려와 시민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죠.
![]() (출처=오픈AI 챗GPT) |
날개를 펼치면 5㎝에 달하는 크기와 빛을 반사하는 밝은 몸 색깔 때문에 ‘팅커벨’이란 별명이 붙은 동양하루살이. 그러나 이 로맨틱한 별칭과 달리 현실은 끈적하고 불쾌한 경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5월 중순만 되면 ‘어디든 간다’는 각오로 도심을 휘젓고 다니기 때문인데요. 벌레를 피해 뛰는 사람들, 간판불을 끄고 장사하는 상인들, 그리고 하늘을 보며 손사래를 치는 야구장 관람객들. 2025년의 여름도 어김없이 이 ‘팅커벨 대첩’이 시작됐습니다.
동양하루살이는 사람을 물지 않고, 병을 옮기지도 않는데요. 법적으로도 해충은 아니며 생물학적으로는 오히려 깨끗한 물에서만 서식하는 수질 지표종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곤충이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혐오를 주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 그 숫자죠.
동양하루살이는 알을 한 번에 1000~2000개씩 낳습니다. 그 알은 물속에서 조용히 유충으로 자라다가, 봄이 돼 수온이 18도만 넘어가면 단체로 하늘로 튀어 오르는데요. 이것을 ‘우화’라고 합니다. 그런데 동양하루살이의 우화는 그냥 날아오르는 수준이 아닌데요. 이것은 ‘폭발’. 그들의 우화는 전쟁과도 같습니다.
![]() (출처=오픈AI 챗GPT, MBC 스포츠플러스 캡처) |
동양하루살이는 이 우화를 ‘집단’으로 수행하는 대표적인 종입니다. 수십만 마리가 동시에 우화하고 성충이 돼 하늘을 날며 짝짓기를 마친 뒤 하루나 이틀이면 모두 죽죠. 하루살이란 이름, 말 그대로 하루만 살 거든요.
일부는 2~3일을 버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짝짓기-알 낳기-죽기 코스를 순식간에 끝냅니다. 이쯤 되면 생애가 아니라 미션 수행에 가깝죠. 대규모로 태어나고 짝짓기와 산란만을 위해 짧은 생을 불태운 뒤 사라지는 삶. “이번 생은 짧지만, 후손은 남기고 간다”는 명예로운 퇴장이랄까요.
이 전략은 곤충 입장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생존 방식입니다. 천적이 일부를 잡아먹더라도 너무 많은 개체가 동시에 등장하니 모두 잡힐 수는 없고, 결과적으로 번식은 성공하게 되죠. 이를 생태학에서는 ‘포식자 포화 전략(predator satiation)’이라 부릅니다.
그들이 살기 위해 택한 방식이고 단 하루뿐이라지만 문제는 이 ‘생’이 너무 많은데요. 이 충해전술에 민원 1위, 공포도 1위, 불쾌지수는 끝판왕이 되어버렸죠. 더 공포스러운 것은 이 폭발력이 더 강해질 조짐이라는 건데요.
전문가들에 따르면 동양하루살이는 기온이 올라가면 성장 속도가 빨라져서 출몰 시기도 더 앞당겨집니다. 즉 기온 상승은 1년에 발생하는 세대 수 자체를 늘릴 수 있는데요. 실제로 올해 여름은 예년보다 더 더울 것으로 예보되면서 모두를 공포에 몰아넣었죠.
도심으로 들어온 하루살이 떼는 시민들의 일상에 직접적인 불편을 초래합니다. 특히 야간 경기가 열리는 야구장은 매년 주요 피해지역으로 꼽히는데요. 야간경기 조명이 켜지는 순간, 조명이 아니라 모기장이 내려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죠.
치어리더의 율동보다 관중의 부채질이 더 격해지는 때가 오고야 만 건데요. 아니나 다를까 28일 서울 잠실야구장 프로야구 한화이글스와 LG트윈스 경기 중계 화면에서도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뽐냈습니다.
![]() (출처=오픈AI 챗GPT) |
하루살이는 왜 하필 도심 조명에 그토록 집착하는 걸까요? 빛에 강하게 끌리는 습성(양성주광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하루살이는 빛 중에서도 블루라이트(청색광)를 좋아합니다. 가게 간판, 편의점 유리창, 아파트 외벽 등 LED 조명이 많은 도시는 하루살이에겐 신나게 뛰노는 디스코장인거죠.
해충이 아니라며 “이해해주자”고 넘기기엔 막대한 숫자에 지자체들은 진땀을 흘리는데요. 여주시는 남한강변을 중심으로 친환경 해충퇴치기 244대를 설치하고, 고압 살수 및 유충 구제제 투입 등 물리적·생물학적 방제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남양주시는 미꾸라지, 대농갱이 등 하루살이 유충의 천적을 방류하고 있으며 조명 유인 예보 시스템을 개발해 조명 운영 시간을 조정하고 있죠. 서울 성동구는 백색 간판 조명을 황색으로 교체하고 해충퇴치기 운영을 강화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방제는 쉽지 않습니다. 하루살이는 수명이 너무 짧아 방제 타이밍을 놓치기 쉽고, 개체 수는 많아 대응이 늦으면 이미 도심을 점령한 뒤인데요. 하천에 약제를 무차별 살포할 경우 하루살이뿐 아니라 다른 수서 생물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생태계 보호 측면에서 신중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대부분의 지자체는 방제보다는 유인 차단 즉 조명 조절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조명을 조절하면 하루살이 사라질까요? 그럴 리가요. 이건 팅커벨 폭탄 돌리기입니다. 불을 끄면 하루살이는 인근 더 밝은 곳으로 이동하죠. 불 꺼진 가로등 옆 가로등으로 이동하는 이들. 하루살이와의 싸움은 어쩌면 조명과의 싸움입니다.
![]() (출처=오픈AI 챗GPT) |
일주일 정도만 참으면 된다고 다잡기엔 2차전이 기다리고 있는데요. 동양하루살이가 물러나면 등장하는 ‘러브버그’ 때문이죠. 1㎝가 조금 안 되는 크기의 우단털파리속에 속하는 곤충인데요. 짝짓기가 끝난 뒤에도 며칠 동안 함께 날아다니기 때문에 러브버그로 불리죠.
주로 5월에 대량으로 출몰해 차량 앞유리, 라디에이터, 범퍼에 돌진하는 이 러브버그는 사체가 끈적하고 산성을 띠어 자동차 도장면까지 해치는데요. 하루살이가 하늘을 지배했다면, 러브버그는 하늘에 이어 도로 위 지배자인데요. 벌레 바통터치. 여름 도심은 곤충계 릴레이 무대죠.
이 곤충들과 공존하려면 시민들도 몇 가지 대비가 필요한데요. 아파트 단지 외벽이나 조명이 밝은 곳에는 커튼을 치거나, 백색조명을 황색등으로 바꾸는 것이 도움됩니다.
차량 앞면에는 광택제나 보호필름을 미리 도포해 사체가 들러붙는 피해를 줄일 수 있고, 출몰 직후에는 빠른 고압수 세차가 효과적이죠. 야간 외출 시엔 밝은 옷보다는 어두운 옷을 입고, 벌레망이 달린 모자나 양산을 활용하는 것도 실질적인 방법입니다.
우리는 지금 불편한 존재와의 공존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요. 귀여운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제론 도심 생활의 불청객. 그렇다고 몰아내기도 애매한 존재. 2025년의 팅커벨 전쟁은 다시 시작됐습니다.
기정아 기자 kki@e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