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이다” 허무맹랑한 주장에도…사람들은 왜 사이비 종교에 빠지나

[라이프]by 이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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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 신이 배신한 사람들’)

3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하 ‘나는 신이다’)이 공개되며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공개 전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습니다. 특히 초반 3회에 걸쳐 다뤄진 기독교복음선교회(통칭 JMS)총재 정명석 편을 두고는 법적 공방까지 이뤄졌는데요. 방송 분에서 성범죄 행각 및 도피 전력,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직접 담겨진 탓에 JMS 측은 지난달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것입니다.


재판부는 “채권자들(JMS·정명석)은 이 프로그램 가운데 채권자들에 대한 내용이 모두 허위 사실이라는 취지로 주장하지만, 채무자(MBC, 넷플릭스)는 상당한 분량의 객관적 및 주관적 자료들을 수집한 다음 이를 근거로 프로그램을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채권자들이 제출한 자료들만으로는 이 프로그램 중 채권자들에 관한 주요 내용이 진실이 아니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결국 예정대로 ‘나는 신이다’는 공개됐습니다. 다큐멘터리가 공개되자 시청자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피해 상황때문이었는데요. 적나라한 공개가 충격을 주기도 했지만 대체로 사이비 종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평가입니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사람들은 대체 ‘왜’ 사이비 종교에 현혹되냐는 것이죠.

4명의 사이비 교주들...피해자들 “그들은 신이 아니었다”

8부작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는 스스로 신이라고 칭하는 네 명의 인물과 그들을 중심으로 한 4개의 사이비 종교를 조명합니다. 정명석(JMS)과 오대양(박순자), 아가동산(김기순), 만민중앙교회(이재록) 등 4개 사이비 종교의 실체를 파헤치고, 피해자들의 이야기까지 담았죠.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은 1987년 8월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의 오대양 공장 구내식당 천장에서 4박 5일간 숨어 있던 오대양 직원들의 변사체 32구가 발견된 사건입니다. 오대양 회사 대표이자 교주였던 박순자를 포함해 32명의 신도가 사망한 채 발견됐죠.


‘아가동산’은 경기도 이천의 종교 집단인 아가동산에서 교주 김기순의 지시를 받은 신도들이 또 다른 신도를 살해, 암매장했다는 의혹인데요. 다만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살인 혐의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고, 김 씨는 재판 중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또 법원은 “종교의식이 없었다”며 아가동산을 종교 집단이 아닌 협동농장 공동체로 판단했죠. 김기순은 조세포탈죄와 횡령 등에 대해서만 유죄 판결이 인정돼 징역 4년과 벌금 56억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1999년 5월 신도들이 MBC 여의도 사옥을 난입한 것을 계기로 이름을 알린 만민중앙교회의 이재록 목사는 여신도 9명을 수년에 설쳐 성추행, 성폭행한 혐의로 2019년 대법원에서 징역 16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일부 신도들은 이 목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 목사가 여성 신도들과 성관계를 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위증을 하기도 했죠.


이번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은 JMS 총재 정명석의 이야기입니다. 특히 정명석이 추행을 저지르는 상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정명석은 과거 젊은 여신도들을 자신의 신부인 ‘신앙 스타’로 뽑아 관리했습니다. 그는 2009년 신도를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8년 2월 출소했죠. 그러나 출소 직후부터 2021년 9월까지 충남 금산군의 한 수련원 등에서 홍콩 국적의 여성 신도를 17차례에 걸쳐 강제 추행하거나 준강간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10월 구속, 또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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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넷플릭스)

사이비 판별하는 절대적 기준 없어…“피해 사례 조사 및 규제 법안 필요” 목소리도

‘사이비(似而非)’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즉 사이비 종교는 겉으로는 종교로 위장하고 있으나, 종교의 기본 요건을 구성하지 못하고 비(非)종교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단체나 집단인 것이죠.


사실 정통과 사이비의 경계는 모호합니다. 사이비 종교임을 판별하는 절대적인 기준 역시 부재하죠.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사이비 종교를 공식적으로 지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되는 종교만 한 해 수백 건이고, 이마저도 창설과 해체를 반복하고 있어 정확한 수치 파악도 어려운 상태입니다.


통상 종교 단체가 교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여부에 따라 사이비 여부를 가릅니다. 만약 종교 단체의 지도자 등이 교리를 빌미로 금전 혹은 노동력을 요구한다면 사이비일 확률이 높습니다. 또 지도자를 향한 맹목적인 헌신, 진리를 강조하고 구성원들의 행동, 관념을 통제하려 든다면 사이비 종교임을 의심해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단체들은 사이비 종교를 규제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습니다. 신현욱 구리이단상담소장은 지난해 12월 열린 ‘반사회적 사이비종교 규제법 제정 포럼’에서 “신천지뿐 아니라 돌나라 한농복구회와 은혜로교회, 만민중앙교회와 JMS, 통일교와 대순진리회, 중국에서 들어온 전능신교 등 이단 사이비로 인한 피해는 매우 심각하다. 종교 사기 피해자들이 2백만여 명에 이르고, 교주 지망생들도 많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이비 종교를 지정하고 있다는 오스트리아, 캐나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 벨기에, 중국, 싱가포르 등의 사례를 참고해, 피해 사례 조사를 비롯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현행법으로 대처에 한계가 있다면, 법 제정을 통해서라도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국회에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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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결핍 파고드는 사이비…세뇌 거치며 외부와 단절

사이비 종교에서는 지도자가 자신을 ‘신’, ‘메시아’ 등으로 신격화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물론 허무맹랑한 주장이지만, 수많은 피해자가 등장하며 사이비 종교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됐죠. 이는 사이비 종교가 사람들의 ‘결핍’에 파고들고 소속감을 제공한다는 사실이 영향을 줬습니다. 즉 사이비 종교가 인간관계에서의 결핍을 해소하는 대체재로 작용했다는 것이죠.


바른미디어 대표인 조믿음 목사는 “사이비 피해자들을 단순히 심신이 미약하거나 분별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로 치부해선 안 된다. 이들의 결핍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사이비 종교 단체는) 낮은 자존감과 학대 피해 등 제대로 된 돌봄과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이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과정은 그루밍 범죄 과정과도 같은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결핍이 있는 사람에게 접근해 신뢰를 얻고, 결핍과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처럼 속인 뒤 세뇌, 회유, 협박 등의 과정을 진행한다는 것입니다.


사이비 신도는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며 외부 세계와 단절, 판단력 역시 흐려져 자신의 재산이나 노동력을 바치게 되죠. 실로 아가동산에서 탈퇴한 이들은 교주인 김기순의 명령에 따라 부모·자식 간 연을 끊고, 모든 재산을 바치며 노예처럼 일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김기순이 명령한다면 자녀·부모를 폭행하거나, 시신을 매장하기도 했다고 주장해 충격을 자아냈죠.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사이비 종교에 발을 들여놓는 신자들에겐 대부분 결핍이 있다”며 “그 결핍을 종교적 힘으로 채우거나 극복하려는 사람들이 사이비 교주에게 쉽게 빠져든다”고 짚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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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검찰총장. (연합뉴스)

조성현 PD “그는 정말 ‘메시아’인가…목소리 내달라”

‘나는 신이다’를 연출한 조성현 PD는 다큐멘터리가 공개된 후 ‘가나안’ 카페를 통해 제작 소회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처음 이 다큐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제작에 이렇게 긴 시간을 들이게 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며 “촬영을 진행하며 미행과 협박, 해킹을 당하게 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모든 것은 생각과 달랐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정명석 씨의 음성 녹취를 꼭 봐줬으면 좋겠다.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정 씨의 진실을 과연 몰랐을까. 침묵하면 그 어떤 것도 바뀌지 않는다”며 “외면하면 10년 후에도 누군가가 당신을 착취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정말 메시아인가’ 질문해 보시고, 아니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면 이제 당신의 목소리를 낼 순간”이라고 피해자들에게 소송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다큐멘터리가 세간에 충격을 안긴 가운데, 이원석 검찰총장은 6일 대검찰청에서 이진동 대전지검장으로부터 지난해 10월 준강간, 강제추행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정 씨에 대한 공판 진행 상황을 직접 보고받고 “피해자에 대한 세심한 지원과 보호에 만전을 기하고, 피고인에 대해 범행에 상응하는 엄정한 형벌이 선고돼 집행될 수 있도록 공소 유지에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앞서 정 씨를 재판에 넘긴 대전지검은 성폭력분야 공인인증 부부장검사 등 성범죄에 대한 전문성이 높은 검사들로 구성된 3명의 팀을 편성해 재판에 대응하고 있죠. 경찰에서 진행 중인 추가 피해 사건 수사도 긴밀히 협력해 엄정히 수사할 방침입니다.


한편 이날 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나는 신이다’는 5일 기준 넷플릭스 한국 톱10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이 사회적 공분을 자아내며 사이비 종교에 대한 대중의 지탄 역시 쏟아지고 있는 상황인데요. 피해자들이 전면에 나서며 용기를 낸 만큼, 관련 수사 역시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투데이/장유진 기자 ( yxxj@etoday.co.kr)]

2023.03.0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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