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의 역설’ 불경기인데 판매 비중 19년 만에 ‘최저’
경차 판매 비중이 2006년 이후 1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가격 상승·세제 혜택 축소·소형 SUV 확대가 겹치며 ‘불황의 대안’이던 경차의 입지가 크게 줄어든 것.
기아의 대표 경차 ‘모닝’의 3세대, 2024년식 모습(자료사진. 기아 제공) 2024.6.10/뉴스1 |
올해 국산 승용차 시장에서 경차 판매 비중이 2006년 이후 1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가성비’ 대명사로 불황기의 대안 역할을 했지만, 차량 대형화 흐름과 가격 상승, 세제 혜택 축소 등이 겹치며 존재감을 잃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통계를 분석한 결과 올해 1~9월 국산 경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8만 3383대) 대비 31.3% 감소한 4만 6011대에 그쳤다. 이로써 국산 승용차 판매에서 경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5.1%로 전년 동기(7.9%) 대비 2.8%포인트(p) 하락했다. 이같은 추세라면 연간 기준 2006년(4.2%) 이후 19년 만에 시장 점유율 최저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국내 경차 시장은 불황을 타고 성장했다. 1991년 ‘작은 차 큰 기쁨’을 내건 대우 ‘티코’ 출시로 탄생한 국산 경차 시장은 1998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시장 점유율이 사상 최고인 27.6%까지 치솟았다. 이때를 전후로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각 사 최초의 경차로 ‘아토스’와 ‘비스토’를 출시했고, 대우는 ‘마티즈’로 라인업을 확대해 경차 4파전이 열렸다.
2000년대 들어 티코와 아토스, 비스토가 차례로 단종됐지만, 기아 ‘모닝’이 출시돼 명맥을 이었다. 금융위기(2009년) 직후인 2010년대에는 모닝에 더해 기아 ‘레이’와 ‘레이 EV’가 등장했고 대우의 후신 한국GM은 마티즈를 ‘스파크’로 변경해 시장에 선보였다. 신식 모델의 잇단 등장에 2012년 경차 판매량은 20만 2844대를 기록,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2021년에는 현대차가 아토스 단종 이후 19년 만에 경차 ‘캐스퍼’를 출시했다. 이에 2022년 경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39.5% 증가한 13만 2911대를 기록하며 시장 점유율이 5년 만에 10%를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 해 말, 24년간 생산된 스파크가 단종되면서 경차 라인업이 5종에서 4종으로 축소됐고, 올해까지 3년 연속 판매량이 하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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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 혜택 축소되고 소형 SUV 등장…신차 개발 ‘주춤’, 중고 경차는 ‘불티’
소비자들이 경차에서 눈을 돌린 결정적인 이유는 가격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불과 3년 전 900만 원 선(스파크)이었던 경차 시작가는 1300만 원 선(모닝)까지 올라왔다. 각종 편의·안전 사양을 더한 최고가는 2000만 원(캐스퍼·모닝·레이)을 돌파해 준중형 세단(아반떼) 가격과 겹칠 정도다. 과거 취·등록세를 전면 면제해 주던 경차 세제 혜택은 2020년 한도가 신설돼 현재는 75만 원까지만 면제된다.
2010년대 중반 개화한 소형 SUV도 경차 입지를 좁히고 있다. 2015년 출시된 쌍용차(현 KG모빌리티) ‘티볼리’로 소형 SUV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자 현대차 ‘코나’·‘베뉴’, 기아 ‘셀토스’·‘니로’·, 르노코리아 ‘XM3’ 등이 잇달아 출시됐다. 기존 경차와 동일한 해치백 디자인에 가격도 2000만 원 선부터 시작해 경차 수요를 일부 흡수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실제로 국산 승용차 시장 내 소형 SUV 점유율은 2015년 6.5%에서 지난해 35.6%로 상승했다.
완성차 업체에도 경차는 ‘계륵’으로 전락했다. 소득 수준이 낮고 내수 경쟁이 치열하던 때에는 값싼 경차가 완성차 업체의 시장 점유율을 높여주는 노릇을 했다. 그러나 이젠 1인당 국민 소득이 4만 달러를 바라보는 데다 국산 승용차 시장에서 현대차·기아의 점유율이 90%를 넘어선 상태다. 대당 마진도 경차는 중·대형차 대비 현저히 낮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중고차 시장에서 경차는 여전히 강세를 보인다. 국내 최대 중고차 직영업체 케이카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 경차 4종(캐스퍼·모닝·레이·레이EV) 거래량은 전년(2023년) 대비 41.3% 증가했다. 올해 예상치 역시 2023년 대비 14.7% 높은 수준으로 추정된다.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매년 ‘톱5’ 안에 경차가 최소 3종 이상 이름을 올린다”며 “가격이 워낙 저렴하기 때문에 누구나 부담 없이 사고팔아 불경기일수록 중고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경차 신차 판매량은 당분간 반등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경차를 구매하는 저소득층과 자영업자들이 더 커진 가격 부담 탓에 중고 경차로 이동한 지 오래”라며 “완성차 업체에서도 마진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경차를 개발하기 꺼린다. 경차 구매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리고 개발 단계에서부터 정부가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