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디자인』 길들여지지 않기

『행복의 디자인』 길들여지지 않기

Photo by ‘Botond Istvandi’ and ‘The Classic Car Boot Sale’ in the Vintage Festival

흔히들 로모라고 부르는 로모그래피Lomography는 필름 카메라치고는 조작 방법이 매우 간단하고 크기도 작아서 사용이 편하다. 외관상으론 마치 장난감 같은 허술함이 보이는 로모의 시초는 아이러니하게도 스파이 맞춤형 카메라였다. 손 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은 크기 인데다가 여타의 필름 카메라와 비교해서 사용법이 쉽기 때문에 정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발 빠르게 움직이는 스파이들에게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라는 추측 정도만 해 볼 뿐이다.

 

실제로 스파이들이 사용했다는 근거는 불명확하지만, 어쨌거나 스파이 맞춤형 카메라로 개발되었다는 로모는 신기하게도 30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어 개인용 스파이 카메라로 바뀌어 있다. 여전히 첩보 작전에 사용되었다고 보기에는 매우 의심스러운 그 기능 그대로 말이다. 스파이들의 전유물로 남기엔 부족함이 많은 허술한 로모지만, 그 모자란 기능이 오히려 일상의 정보를 캐기엔 제격이다. 21세기의 개인용 추적 장치가 된 로모는 자기 삶의 흔적을 스스로 추적하며 삶에서 모르고 지나쳤던, 하지만 의미있는 또 다른 장면들을 포착하며 본래의 순기능을 되찾는다. 개인의 삶에 숨겨져 있는 보석을 찾듯이 일상의 아기자기한 재미를 찾는데 아주 유용한 쓰임새를 주면서 말이다.

 

토이 카메라들과 어울려 사용되는 로모처럼, 사물은 최초의 디자인 의도와는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용처는 분명 다르지만 30년이란 시간이 진화하면서 이 사물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도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부분이다. 사용자에 의해 쓰임새가 변할 수도 있고, 변한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는 것은 디자인의 융통성이 지닌 큰 매력이다.

 

무엇보다도 아날로그 문화 더미 속에 묻혀있던 로모가 이름을 알리는데 디지털 문화의 오지랖은 상당한 공헌을 했다. ‘창의성’이라는 배에서 남매로 태어난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화는 여느 형제자매들이 그렇듯이 경쟁관계에 있으면서도 서로의 성장에 좋은 자극이 되었다. 반면에 좋은 사진의 정석에서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로모만의 정서는 디지털 문화를 흡수하면서 다양하게 변형되고 생산되었다. 심지어는 ‘로모 효과’라 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로모의 효과는 전문성이 탁월한 필름 카메라나 성능이 우수한 디지털 카메라들도 탐내는 것이었다. 알고도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모르기 때문에 무시할 수밖에 없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로모가 만들어 내는 이 우연의 효과는 마치 우연을 가장해서 의도대로 찍은 듯, 언제나 기대하는 것 그 이상이라서 선물처럼 느껴진다.

 

러시아의 레닌그라드 광학기계 조합이 개발한 로모 콤팩트 오토마트는 LOMO LC-A라는 이름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모델이다. 스파이용으로 제작된 이 기계식 카메라는 소련이 패망한 이후, 시장에서 거의 사라졌다가 1991년 5월, 체코 프라하의 벼룩시장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부터 날아온 두 청년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후, 독특한 색감과 질감의 로모는 주변 지인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전 세계로 퍼졌고, 로모그래피라는 이름을 얻으며 다시 생산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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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o LC-A+ Image from Lomography Korea www.log135.com

사진의 외곽까지 도달하는 빛의 양이 중심보다 적은 탓에 가장자리가 어두워지는 비네팅Vignetting 현상은 모든 카메라가 로모를 가장 질투하는 부분이다. 이 기묘하리만치 드라마틱한 로모 효과는 카메라를 조작하는 사람의 장난기가 더하면 할수록 예측 불가능한 즐거움으로 극대화된다. 이것이 로모의 진짜 멋이다.

 

로모그래피가 제시하는 사진 찍기의 열 가지 황금 법칙으로도 짐작 할 수 있듯이, 사물에 대한 남다른 접근 방식은 우연과 의도의 구분이 애매해서 생기는 로모 효과보다 로모를 더욱 폼나게 만들어준다. 사물을 대하는 태도를 스스로 풀어놓으며 마음을 여는 대범함이 없이는 제대로 찍을 수 없는 접근 방법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눈높이가 아닌 엉덩이 높이 즈음에서 찍어본다거나 길을 걷다가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찍는다거나 하는 무심하면서도 엉뚱한 행동들 말이다. 이보다 더 고난도의 기술을 보이기 위해서는 로모그래피가 가진 최고의 무기를 써야 한다. 건성으로 찍게 만드는 게으름과 나태함이 바로 그것이다.

 

조물주가 게으른 자에게 의도하지 않게 허락한 선물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인내심이다. 이것이 로모의 두 번째 핵심 무기다.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소용이 없다. 디지털 카메라처럼 사진을 찍고 난 후에 바로 확인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진을 기다리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무념무상으로 장난스럽게 찍은 사진 몇 장이 현상되기를 기다리는 때의 긴장감은 로모를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는 기능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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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from Lomography www.lomography.com

토이 카메라는 원래 홍보용으로 쓰였던 보급형 상품들이었다고 하는데, 어설픈 토이 카메라가 주는 결과물이 발산하는 재미난 효과들이 유행하면서 전문적으로 예술 사진을 찍은 이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토이 카메라가 지닌 ‘장난기’는 값비싸고 작동이 어려워 사용하기에 부담스럽기만 했던 필름 카메라를 만만하고 친숙한 사물로 여기게끔 한다. 싸구려 렌즈와 플라스틱과 같은 가벼운 외피로 대량 생산해 가격이 저렴한 이 토이 카메라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자신들의 시선으로 보고, 느끼는 세상을 쉽게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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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from Lomography Korea

홀가Holga나 로모 LC-A와 같은 카메라들이 원래는 일반용 카메라로 만들어졌음에도 우수하지 못한 성능으로 인해 토이 카메라로 취급되는 경우라면, 디아나Diana나 피쉬아이Fisheyes와 같은 카메라들은 원래부터 가벼운 놀이를 목적으로 개발된 대표적인 장난감 사진기들이다.

 

오늘날 로모 마니아들에게 로모 카메라는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사진기는 찍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삶을 가꾸는 도구로도 활용된다. 사진기의 외관은 개인의 삶의 취향을 알리는 또 하나의 수단이다. 35mm 필름 카메라인 ‘라 사르디나La Sardina’는 폭 넓은 사용자의 다양한 취향을 고려한 로모그래피의 디자인 카메라다. 매 시즌마다 새로운 색상과 디자인을 선보이며 개성 강한 로모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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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from Lomography Korea

로모그래피가 출시한 35mm SLR조립식 필름 카메라인 콘스트럭터Konstruktor는 사용자가 스스로 조립에서부터 촬영까지 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한 DIY 제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장난으로 시작해서 장난으로 끝나는 카메라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낱낱의 부속으로 조립하며 하나의 카메라로 완성하는 과정에서 그 작동 원리와 기계 원리를 익힐 수 있다. 어디에서 어떤 노력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물건들의 더미들 사이에서 이 같은 DIY 제품들은 불편하고 시간낭비 같아 귀찮기는 해도 사용자와 브랜드 사이에 무형의 소통을 이끌어낸다. 그렇게 형성된 네트워크는 만든 이와 사용하는 이가 서로를 이해하고 상호소통하며 함께 살아가는 프렌드십 환경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행복의 디자인』 길들여지지 않기

Lomography by Toshico Nakagawa

로모그래피라는 작고 앙증맞은 무법의 사진기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은 여타 필름 카메라보다도 못한 성능도, 보잘것 없는 작은 카메라가 보여준 차별화된 마케팅 능력도 아니다. 사진을 잘 찍을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자신감이 충만해 찍고 싶게 만드는 물건의 미혹함은 더 더욱 아니다. 그것은 습관적으로 보고, 듣고, 행하던 일상의 시간들, 그 시간 안에 존재하는 익숙해진 일상에서 잠시 등 돌리게 하는 로모만의 감성에 있다.

 

사실은 우리들 어느 누구도 쉽게 행하지 못하는 ‘일상과의 등 돌리기’는 ‘일탈’이나 ‘탈선’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잊고 지냈던 진짜 일상을 다시 내 삶 안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작은 틈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건조하고 촘촘한 삶에 가을날의 바람 가득한 숨처럼 촉촉 하고 낙낙한 공기가 스며들게 하는 것과 같다. 시야에서 벗어났을 때 느껴지는 것은 불안의 세계가 아니다. 늘 가까이에 있었지만 돌보지 않았던 내 주변의 일상이다. 그러니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로모의 감성을 믿고 그냥 셔터를 눌러도 된다. 그럼 만나게 될 테니까. 길들여지지 않은 우리의 또 다른 일상과의 시간을 말이다.

 

* 위 칼럼은 『행복의 디자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글_ 김지원, 정리_ 김소영

저자 소개 김지원 

 

디자인의 시작과 끝 사이의 모든 과정을 보여 주려는 마음은 욕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도, 어떤 과정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그래야 비로소 정성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사람을 위한 상품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면서, 사물을 만드는 이의 정성과 쓰는 이의 애정이 비례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뭐든 쉽게 만들고, 또 버리고 부수기를 반 복하는 우리 사회에서 그런 ‘깐깐함’과 '정성'은 디자인에 속한 사람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 한의 윤리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모닝글로리 디자인연구소 팀장을 지냈으며 성균관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디자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런던에서 돌 아와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문화상품개발팀장을 지낸 후,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학교부속기관인 '전통문화상품개발실'의 초대 디렉터를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공예• 디자인문화진흥원에 재직 중이다. 저서와 논문으로는 『런던 디자인 산책』, 『메타상품으로서 문화상품(2014 한국디자인학회 최우수논문상)』 등이 있다.

2016.09.06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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