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AB번 버스 세월의 시계

버스로 서울여행 : 버스 여행가를 위한 일곱 노선 서울여행법

110AB번 버스 세월의 시계

110AB번 버스는 노선 모양부터가 독특하다. 대부분의 노선은 직선에 가까운 왕복노선인데 이 노선은 동그랗다. 게다가 번호에 생소한 ‘AB’라는 표기까지 있다. 처음에는 동그란 노선이 있다는 것도, AB로 나뉘어 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지하철 2호선처럼 순환하는 노선이라 생각하니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시계방향과 반시계방향으로 순환을 하기 때문에 버스노선이 A와 B로 나뉘어있는 것이다. 종종 버스 노선 중에 A와 B로 나뉜 버스들을 본적이 있었지만 110AB 노선보다 더 시계를 닮은 노선이 또 있을까?


노선을 속속들이 살펴보니 이렇게도 여러 시간의 모습을 간직하는 버스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연탄을 이용해 집안에 온기를 채우고, 높은 건물보다는 나지막한 언덕들이 자리한 정릉부터 우리의 한이 담긴 독립문과 서대문 일대를 통해 과거의 시간을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이미 핫플레이스로 정평이 난 녹사평, 한강진 일대, 힙스터들의 성지인 홍대를 지나며 현대의 시간을 관통하기도 한다. 어쩌면 <백 투 더 퓨처>의 드로리언일지도. 뱅글뱅글, 순환하는 버스를 타다 보면 정말로 시간이 교차하는 지점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여행을 하고 싶다면 110AB번 버스에 올라타 보자.


(중략)

파란 생동감

블루스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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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에는 유난히 삼성과 관련한 건물들이 많이 있는데 110번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그 중 하나인 블루스퀘어를 만날 수 있다. 블루스퀘어는 뮤지컬이나 연극 등의 공연이 이루어지는 공연장이다. 창작극보다는 주로 라이센스 공연이 올라간다. 그만큼 규모가 큰 편인 공연을 접할 수 있는 공연장이라는 뜻도 된다. 건물 내부에는 크라제버거 레스토랑과 칠채홍, 디초콜릿커피와 같은 프랜차이즈 식음료 가게가 들어서 있다. 그 옆에는 컬처파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조성된 NEMO(네모)가 있는데, 공연예술, 미술, 설치, 패션 등 다양한 장르와 교류가 가능해지는 공간을 꾀하고 있다. 이곳은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지금까지 전시공간은 물론이고 패션쇼가 열리는 런웨이로, 몇 년 전엔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북페어가 열리기도 했었다.

망설이다 들어오세요, 들어오면 반합니다

동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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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연남동을 찾은 날은 어느 평일 오후였다. ‘동진시장’이라고 쓰여있길래, 앗, 시장이다! 하고 들어섰는데 웬걸, 전통시장이라고 하자니 실내라서 놀랐고, 전시장의 작은 박람회처럼 각각의 부스가 있으나 박람회라고 칭하기엔 작아도 너무 작았다. 심지어 장사를 하고 있는 상인도 없었다. 그러다 다시 토요일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곳에 장터가 서 있었다. 예전에 왔던 곳은 마치 무슨 유령동네였던건가 싶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동진시장은 원래 7일장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열린다. 그러나 지금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간 열려 더 긴 시간동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주로 직접 손으로 직접 만든 것들을 취급한다. 다른 여느 시장에 견주어 대단히 큰 규모는 아니지만 각각의 매력이 있고, 무엇보다 친절한 판매자들의 호객행위에 웃음이 나는 그런 시장이랄까. 들어가 보고 싶다면, 한 번 더 고심해보길 바란다. 들어가기만 하면 반해서 이것저것, 양손이 무거워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간의 발자취를 느끼다

유진상가

110AB번 버스 세월의 시계

‘유진상가’는 벌써 지어진 지 40년이 넘어, 사람으로 치자면 불혹을 넘긴, 고령의 건물이다. 상가와 주거공간이 합쳐진 주상복합건물의 할아버지 즈음 된달까. 주변에는 홍제천이 흐르고 있고, 건물 바로 위로 내부순환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어 건물이 잘린 것 같은 약간은 불안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점점 재개발에 대한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하고 있다. 이 건물로 인해 주변 경관을 해치고 있고, 수요가 없다는 이유 탓이다. 친구인 세운상가나 낙원상가는 진작에 재개발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지만, 세운상가는 강력한 반대로 일부만 리모델링한 상태다. 세운상가의 경우는 건축가 김수근에 의해 만들어졌기에 그 힘을 무시할 수 없는 듯 보이나, 유진상가는 설계자가 미상인 탓에 철거위기 속에서도 큰 반발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이 상가 역시 나름으로 아름다움이 있고 남아있어야 할 가치는 충분하다.

시간을 기억하는 디자인

디앤디파트먼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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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모든 것이 빨리 변하고 있다. 낙후된 공간이거나 유휴공간이라고 판단하면, 무조건 밀어버리고 새로운 걸 짓는다. 그 건물과 동네가 가지는 역사성이나 가치는 철저히 무시되고, 모든 것은 상업성이라는 이유로 포장해버린다. 사람들이 많이 몰릴지언정, 동네가 갖는 개성은 없어지고 ‘몰개성이 곧 개성’이라는 억지스러운 말로 자위한다. 그런데 그동안 만나왔던 ‘오브젝트’는 그 궤도에서 이탈한 특별한 공간이었다. 그러한 오브젝트를 운영하는 유세미나 대표의 롤모델이었던 나가오카 겐메이. 그의 철학이 서울에까지 퍼졌다. 서울의 ‘MMMG(밀리터리밀리그람)’ 이태원점 건물 아래 해외지점으로는 처음으로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이 탄생한 것이다. 차츰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한남동에서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또한 지속적으로 다양한 활동으로 영역을 넓혀나가는 디앤디파트먼트가 서울에서는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 지가 매우 기대된다.


디앤디파트먼트 서울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남동에서의 시간 그리고 ‘시간을 기억하는 디자인’에 대해 들어보았다.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은 어떤 곳인가?

 

디앤디파트먼트는 롱라이프디자인을 추구하는 스토어다. 롱라이프디자인을 추구한다는 게 그저 오래된 것을 지향한다기보다는 오래된 물건들을 지켜보자는 차원에 가깝다.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은 누군가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로부터 검증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세상이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사람들은 유행을 좇지만 그래도 기본적이고 오래된 것을 찾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다. 우리는 그 점을 잘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앞서 말한 이유로 살아남아 롱라이프디자인이 되는 것도 있고, 롱라이프디자인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기 때문에 소멸되어 가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요즘 점점 새롭고 유행에 민감한 것, 혹은 ‘어느 동네가 뜨고 반면, 어느 동네는 진다’는 등의 이야기에 관심이 너무 많다. 그에 반해 오랫동안 지속해왔던 어떠한 것들에 대해서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관심이 덜 한 듯 보인다.


롱라이프디자인을 소개한다는 것은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리가 다르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삶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생각해보자’는 시각을 가진 매장이고 공간인 거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디자인을 표면적인 것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생산자의 삶과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에 있는 다양한 디앤디파트먼트는 지점별로 각각 대표상품이 있다고 들었다. 한국에는 하나뿐인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의 경우도 서울을 대표하는 상품을 특별히 판매하고 있는지 혹은 한국을 대변하는 전체성을 띄고 있는지 궁금하다. 또한 한국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알고 싶다. 서울점에 한정된 물건들을 보여준다기보다는 현재는 한국본부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은 사실 생산도시라기보다는 소비도시에 가깝다. 사람이 많다 보니 재화를 판매하고 그것을 소비하는 일이 많이 벌어지고, 서비스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에서 디앤디파트먼트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전국에 있는 좋은 제품들을 직접 소개하고 판매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의 좋은 생산자를 찾고 우리의 것을 알아가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지속적으로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일본에서 벌어지는 디앤디파트먼트의 롱라이프디자인 활동을 한국에 소개하는 역할, 그리고 그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그들이 15년 넘게 해온 것을 보고, 한국 실정에 맞추어 변형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도 모색하고 있다.


디앤디파트먼트의 가장 큰 특징은 롱라이프디자인을 세 카테고리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셀렉트(select), 유즈드(used), 월드스탠다드(world standard)가 바로 그것이다. 첫 번째, 지점별로 대표하는 상품을 셀렉트라고 부르는데, 서울점에는 코리아셀렉트가 있다. 이런 형태도 서울점에만 있는 특징이다. 그리고 이 지형과 토양에서 만들어져 소비가 된 것들 중 버려진 것, 혹은 살아남아 고쳐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유즈드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월드스탠다드는 어느 지점에나 있는 것으로 미국, 일본, 유럽 등의 질 좋고 전형적인 상품을 소개하는 것을 말한다. 유즈드와 셀렉트는 지역기반인 셈이다. 지금은 이렇게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이 개념이 자리잡은 지도 오래되지는 않았다. 이 지역의 느낌이 나는 제품이 50% 이상이 되어야 하며 그것을 목표로 다양한 제품을 조사하고 연구한 후, 일본 본부와 의견을 나누며 회의를 한다. 그러한 교류를 통해 서울점을 꾸려가고 있다.


다양한 제품 중에 소개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해달라


담양에 가면 죽 제품이 유명하다. 대나무가 많은 곳인데 예전에는 바구니와 같은 생활소품이라든지 주방용품과 같은 것들이 대부분 대나무로 된 것이었다. 물에 강한 데다가 나무의 조직 자체가 다른 것들과 비교하였을 때 조직이 유연해서 가공이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잘 사용해 오던 것이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바로 플라스틱이나 유리와 같은 가공이 쉬운 것들에 대해 한 땀 한 땀 제작을 하기에 수요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담양의 죽 제품이 플라스틱제품과 경쟁을 해야 하는 데는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플라스틱보다 자연적인 재료이기 때문에 좋은점을 분명 가지고 있다. 담양에 가면 여전히 죽 제품에 대한 수요가 많지만 담양에 나와 있는 제품들은 70~80%가 중국산 대나무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수요는 있지만 소비자들이 자꾸 더 저렴한 것을 찾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생산자가 무한정 금액을 낮출 수가 없다 보니, 원가절감을 위해 중국산 대나무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지속되어 우리나라의 전통 죽 제품은 사라지고 중국산, 베트남산 죽 제품이 늘어난다면, 수요가 사라져 장인들마저 사라지게 될 터이다. 결국 우리는 비싼 값에 수입된 죽 제품을 사게 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론 우리가 손해를 보는 거다. 그래서 디앤디파트먼트에서는 이러한 지역성, 왜 여기서 죽 제품이 만들어졌고 누가 만들고 있고, 어떻게 만들고 있는 지를 제대로 전하면서, ‘가격면에서 제일 싸고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다’가 아니라 ‘올바른 과정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다.


롱라이프디자인은 똑똑하고 잘난 물건이 아닌, 늘 우리 주변에 있었지만 써보니 좋은 점을 가지고 있는 것들을 알아봐주고 소개하며 보람을 느끼게 하고,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나 빨라지고 균형이 무너져 있기 때문에 그걸로 피해보는 건 결국은 우리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인간성을 회복하고 속도를 정상적으로 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균형도 맞춰가야 한다. 너무 싼 것만 찾아 많이 사서 쉽게 버릴 게 아니고 하나를 사서 소중히 쓰고 망가지면 고쳐서 쓰고, 그래서 이것을 잘 사용하고 생산자에게 고마움을 갖고 좋은 순환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하략)


*위 내용은 책『버스로 서울여행』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버스로 서울여행』 바로 가기: http://goo.gl/avhKEC 


글. 이예연, 이혜림, 정리. 이가람 

저자 소개

 

[이예연]

시각디자인과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버스 문화잡지 <생각버스>에서 디자인 작업을 맡고 있다. 매일 아침 두 눈을 비비며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이미지와 이야기들에 대해 생각한다. 지하철보다 버스를 즐겨 타는 버스 애호가이다.

 

[이혜림]

애증의 도시 속 버스여행가. 낭만과 영감을 얻으려 버스에 올라타기도 한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 어느 시 구절처럼, 서울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그 모습을 만끽하고 있다. 버스를 새롭게 바라보는 문화잡지 <생각버스>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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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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