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추억, 또는 디지털 디톡스? 노키아로부터 배우는 기업 부활의 비결
무덤을 박차고 돌아온 기업이 하나 있다. 애플과 삼성이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아진 지 오래, 하지만 진보의 대세를 거스르는 니치를 잡아 기어오르는 불사조가 있다.
한 시절의 군웅이었지만 아이폰에게 침몰당한 뒤 마이크로소프트 안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여겨졌던 노키아다. 노키아 과거 임직원들이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노키아 브랜드를 수습하여 만든 신규 법인 HMD가 노키아라는 이름으로 다시 스마트폰 시장에 재진입한 지도 어느새 1년 반. 우리는 관심 없는 사이 성적표도 나왔다.
판매 대수는 7천만 대. 그 덕에 1억 달러 규모의 추가 투자까지 유치했다. 시장가치도 1조 원에 이르렀으니, 어엿한 유니콘으로 부활한 셈이다.
20만 원 대의 가성비 좋은 스마트폰은 고가 LG폰처럼 얼추 ‘아이폰X의 노치’도 베낀 것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에서는 10초 만에 매진 사태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노키아는 또 하나의 안드로이드 업체로 참전하고 싶지는 아니한 듯했다. 노키아다움으로 승부했다. 7천만 대 중 6천만 대는 피처폰이었는데, 이 물량이 만드는 규모의 경제가 반드시 개발도상국만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웠다.
일리가 있다. 디지털 과몰입의 폐해가 새로운 상품 카테고리를 만드는 미니멀리즘 경제가 태동할 가능성은 어느 시장에나 있다. 한국에서도 아예 데이터를 못 쓰게 만든 ‘공신폰’이 인기라고 한다. 그런데 관련 검색어가 ‘공신폰 루팅’ ‘공신폰 adb’ 등 온통 해킹 관련된 것이니, 아무래도 부모님 생각과 자제의 생각은 또 다른 건가 싶다.
사실 디톡스는 쿨해야 한다. 나를 스스로 제약하는 일이 모양마저 나지 않으면 흥이 날 리 없는 탓이다. 노키아는 쿨하기 위한 방법으로 노스탤지아를 소환하기로 한다. 바로 추억의 모델을 부활하는 것이었다. 근 20년 된 모델 노키아 3310의 복각판이 등장했다. 부품은 최신으로 바뀌었지만, 배터리 대기 시간은 무려 1개월. 8110은 매트릭스에도 등장했던 그 바나나폰이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에게는 아련한 추억으로 손이 땀에 젖을 일이다. 게다가 매트릭스 버전에는 피쳐폰 주제에 구글 어시스턴트마저 들어 있다. 시대를 뛰어넘는 골동품에는 손쉽게 미래를 끼워 넣을 수 있나 보다.
어쨌거나 이렇게 골동품의 먼지를 털어 이야깃거리 만들기에는 성공했고, 이는 개발도상국 시장을 차지해온 다른 염가형 브랜드와는 근본적인 차별점. 바로 선망과 호기심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노키아로서는 이제 1회 말이 끝났을 뿐이다. 추억은 잡화나 식품과 같은 소모품에는 어울릴지 몰라도, 24시간 365일 늘 손에 들려 있어야 하는 핸드폰에서 얼마나 유효할지는 알 수 없다. 미니멀리즘을 새로운 시대 정신으로 정착시킬 수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한두 기업이 노력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쓰지만, 시험 끝나자마자 버리고 싶은 ‘공신폰’이 되어선 더더욱 아니 될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가성비와 실용주의를 살린다면 스마트폰계의 유니클로가 될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소위 학생용 폰이 너무 비싸다. 노키아 3310 공기계를 단돈 50달러에 아마존에서 살 수 있음을 생각하면, 한국에서도 이 시장의 가능성은 있다.
다만 독자 OS를 쓰는 현상황에서는 한글화마저 쉽지 않아 보인다. 여명기의 스마트폰·PDA 시절처럼 독지가에 의한 한글화도 가능은 하겠지만, 미래의 최전선이 아닌 기껏해야 ‘공신폰’을 위해 이런 노력을 할 용자는 많지 않아 보이니, 이 또한 신생 노키아가 극복해야 할 역경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