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ARM, 나 인텔인데 나 지금 떨고 있니?

어이 ARM, 나 인텔인데 나 지금

이 세상에는 대략 두 종류의 CPU가 있다. 하나는 인텔(그리고 AMD라는 호환 기종)이고 또 하나는 ARM(애플과 삼성 등의 라이센스품)이다. 예전에는 PowerPC, MIPS 등 조금 더 다양했는데, 지금은 이 둘로 수렴 중이다. 전자는 PC와 서버의 세계를 x86(또는 x64)이라는 이름으로 장악했고, 후자는 스마트폰 및 IoT 시장의 표준이 되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폰은 물론 온갖 가전 그리고 라즈베리 파이 같은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두뇌가 필요한 모든 곳에 스며들었다.


ARM 칩은 크기가 작고 열도 덜 나고 전력 소모도 작다. 냉각 팬도 필요 없다. 하지만 대신 특화된 특정 용도에 한정된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도 그랬던 것이 아무래도 성능이 뒤졌기 때문이었는데, 그로 인해 x86과 같은 범용 컴퓨터의 취급은 받지 못했던 것.


2006년 윈도우와 맥OS가 인텔로 대통합된 이후 x86의 태평성대는 오랜 기간 이어졌다. PC와 맥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은 그대로 서버와 클라우드에서 돌았으니 인텔 x86의 통일시대가 완성될 수 있었다.


이 시대는 영원할 것 같았다. 개발자들은 인텔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꼭 인텔일 필요는 없었지만, 그들이 쓰는 도구가 인텔용 결과물을 만들어냈고, 가상화 등 그들이 쓰는 환경은 인텔이 기본이었다. 인텔 인사이드 스티커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개발자에게도 안심감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ARM도 쓸만했음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윈도우와 인텔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던 시장과 생태계가 번듯하니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인텔이 아니라도 괜찮다는 메시지는 시장과 업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ARM은 사회 곳곳에 퍼져 나갔다. 애플이나 삼성 같은 제조사로서도 ARM은 라이센싱만 하면 자신의 칩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으니, 공급 업체에 발목 잡힐 일도 없다. 애플 맥은 언제 인텔을 버릴지 다들 궁금해하는 와중에, 윈도우 10은 ARM 버전을 내놓았다. 격세지감의 변화기를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개발자들을 포함한 가치 생산자들은 인텔을 버리지 않았다. 맥이 여전히 인텔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이고 동시에 윈도우 10 ARM이 뜨뜻미지근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미적지근한 물도 온도를 꾸준히 올리다 보면 언젠가는 끓는 법이다. 올해 나온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퍼포먼스는 이제 어지간한 인텔 PC보다 빠르다.


퀄컴의 ARM 신제품 스냅드래곤 8cx칩은 아예 PC 시장을 노골적으로 노리고 출시되었다. 이렇게 나와주니 용두사미였던 윈도우 10 ARM도 기운이 난다. 윈도우 10 ARM은 종래의 Win32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에뮬레이션 했어야 하지만 이 제약마저도 앞으로는 칩의 성능으로 무마할지도 모른다. 이미 7nm 공정이다. 인텔이 여전히 10nm에서도 헤매고 있음을 생각하면 ARM 진영은 고도성장기다. ARM판 크롬 OS를 돌리는 크롬북 그리고 ARM판 윈도우10을 탑재한 삼성 갤럭시북 2 등 ARM이 우리 무릎 위로 빠르게 진군하고 있다.


눈치 빠른 마이크로소프트는 윈텔의 혈맹 따위 느슨하게 풀어 버릴 준비를 마쳤다. 정통 개발도구 비쥬얼 스튜디오도 이제 인텔용 win32 앱을 Arm64용으로 ‘리컴파일’할 수 있게 되었다. 파이어폭스도 ARM 버전 Firefox on ARM을 내놓았다. 최근 릴리스된 구글의 모바일 개발 방법론인 Flutter의 컴파일 결과물은 오로지 ARM용만 있다. iOS와 안드로이드는 어차피 ARM투성이니 괜찮다는 뜻 같다. 아마존 클라우드 AWS는 아예 ARM칩을 직접 만들어서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데이터 센터? 이런, 인텔의 매출 중에서 이미 데이터 센터용 칩의 비중은 데스크탑 PC보다 큰데 인텔로서는 다급해졌다.


온도는 올라간다. 지각 변동의 열쇠는 개발자들에게 넘어갔다. 소비자에게는? 경쟁의 혼돈은 늘 좋은 일이다.

2018.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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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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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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