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치 군단이 몰려온다. MWC 유행 풍속도

[테크]by 김국현
노치 군단이 몰려온다. MWC 유행

노치(notch). U자나 V자 형태로 파낸 자리를 말하는데, 이런 식으로 눈금을 새겨 측량을 하곤 하다 보니 급수나 단계를 뜻하는 단어가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탑노치(top-notch)라고 하면, 최고급이라는 뜻인데, 오늘은 정말 탑에 생긴 노치에 대한 이야기다.

 

노치는 이번 MWC에서 갑자기 뜨거운 단어가 되었다. 원래는 작년에 출시된 아이폰 X(텐)의 M자 탈모형 스크린의 바로 그 이마 부분을 지칭하는 사실상 공식화된 용어였다. 그런데 바로 이번 MWC 참석자들은 기겁하고 말았으니 바로 노치 군단들이 중화권으로부터 대거 등장한 것이다.

 

멀리서 언뜻 보면 영락없는 아이폰 X 헤어 스타일. 얼굴이 아무리 달라도 개성을 만드는 것은 헤어다. Leagoo니 Doogee니 낯선 업체들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ASUS, Oppo 등 인기 브랜드까지 모두 노치다. 화웨이와 원플러스 등 대세폰마저 이 추세에 동참할 것이라는 소식마저 들려 온다.

 

그들로서는 이건 아이폰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 위한 것이라 변명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아이폰 X에 기웃거리는 사람들에게 그것처럼 보이는 폰을 주고 싶었던 것이었다면 제조사로서는 너무 자신들의 가치를 너무 낮추는 일 아닌가. 게다가 아이폰 X에 사람들이 눈을 못 뗀 이유가 설마 노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면 이것이야말로 나이브함 자체다.

 

중국 업체만의 국지적 유행이라고 치부할 상황도 아니다. 심지어 비공개로 공개된 것으로 알려진 LG의 차세대 플래그십 G7마저 그런 지경이라는 소문이다. 베젤이 극도로 얇아지고 점점 길죽해지는 지난 수년간의 트렌드 경쟁을 아예 뛰어넘고 싶은 심정도 이해는 가지만, 정말 노치가 필요하기는 한 일일까? 

 

인공지능 얼굴인식을 지원해야 했던 아이폰 X의 경우 노치 부분에 나열되어 드러나는 부품만 총 8개. 사실 이 정도라면 그냥 상단 베젤을 두껍게 하면 그만이지만, 상하좌우를 모두 똑같은 베젤 두께로 감싸고 싶었던 나머지 그 부분만 파내 지금의 스타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들도 이 디자인이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는지, 각종 아이콘 등에서도 이를 강조하면서 멀리서 봐도 아이폰 신제품이라 느껴지는 효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노치란 겉모습처럼 효율적이지는 않다. 물리적으로 정말 파인 깊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구현상 앱에게 요구하는 가장자리 여백이 있어서, 홈버튼 대신 아래쪽에 차지하게 된 홈 바 영역과 합하면 실질적인 '표시 영역(Safe Area)'은 상당히 축소된다.

 

안드로이드의 하단 버튼처럼 스크린 일부가 고정 기능의 붙박이 영역이 되면서 버튼이 사라지는 추세야 어쩔 수 없는 일이겠으나, 스크린이 아니었던 영역까지 스크린으로 넓힌다고 해도 그곳을 속속들이 차지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배경뿐인 경우가 많은 셈이다.

 

중고생의 패딩 유행처럼, 그것이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정말 멋진지는 중요하지 않다. 교복 자유화 속에서 패션의 획일화가 벌어지는 아이러니, 업계도 학교와 다르지 않다.

 

물론 앞으로 노치도 변할 것이다. 아이패드에도 비슷한 기능이 탑재되어 노치가 파일 것이란 예측이지만, 얼굴 크기에 따라 느낌은 꽤 다를 것이다. 또 최근 부품 업체로부터 흘러나오는 첩보에 의하면, 얼굴인식 모듈과 카메라 모듈이 하나로 통합될 가능성이 크다고도 하니 앞으로의 노치가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지문 인식이 화면 밑에 숨은 폰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을 보면, 노치도 과도기의 궁여지책일 수 있다.

 

어쨌거나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삼성 갤럭시! 구글 픽셀! 안드로이드의 우등생, 마지막 자존심들이여, 그대들만큼은 제발 똑같은 헤어스타일로 나타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2018.03.05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채널명
김국현
소개글
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이런 분야는 어때요?
    ESTaid footer image

    © ESTaid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