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대 인텔 타이거레이크는 대단할지도?

[테크]by 김국현

어쨌거나 지금 노트북을 사려 했다면 잠시 기다리시겠습니까

전자 제품은 필요할 때 빨리 사서 하루라도 더 알차게 쓰는 게 남는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릴 수 있으면 기다리는 편이 나은 때도 있다. 2020년 가을은 그런 때다.


우선 맥북을 사려 한다면 2020년은 맥북의 CPU가 ARM 기반 애플 실리콘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해다. 초기 베타테스터가 될 필요 있겠냐는 둥, ARM용 소프트웨어를 지원해야 하는 개발자가 아니면 번잡하기만 하겠다는 둥, 그냥 지금 인텔 맥을 사버리라는 의견도 있지만, 기다릴 수 있다면 기다리자. 왜냐하면, 현존 맥북에 실린 인텔 칩조차 끝물이라서다.

인텔은 변했을지도

현재 시판 중인 맥북에 실린 인텔칩은 8~10세대가 혼재되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칩도 AMD 7나노 공정의 노트북용 최신 라이젠 칩에는 상대되지 않는다.


그 결과 마이크로소프트 서피스 시리즈와 같은 플래그십 모델에서조차도 AMD의 입성을 허락하고 말았다.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더 많은 파트너가 AMD 탑재품을 유통시키고, 더 많은 소비자들이 AMD의 가성비를 깨닫게 될 터였다. 인텔로서는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마음은 급하지만,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인텔에게 7나노 공정은 2022년까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말았고 주가는 폭락했다. 애플도 인텔을 버린다는 마당에 이래저래 분위기는 영 좋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뭐라도 해야 하는 시점이 있다.


하지만 궁하면 통하는 법. 나쁜 소식만 있지는 않았다. 10나노 공정의 개선판인 10나노++에서 생산되는 타이거레이크가 괜찮게 뽑힐 것 같아서다. 인텔은 이를 계기로 환골탈태, 와신상담의 역전극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 보기로 한다. 하지만 반도체란 결국은 공정 성능 싸움, 그 생산 역량에 물음표가 찍힌 마당이기에 아무래도 의심부터 간다.


지난주 타이거레이크는 발표되었고 공개된 성능은 나쁘지 않았다. 최상위 모델에서의 벤치마크 비교결과, 노트북을 괴물로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AMD 라이젠 7 4800U에 비해 연산능력은 28%, 그래픽은 67%, AI 성능은 4배 개선되었다. 비디오 편집 작업을 예로 들며 경쟁사보다 2.7배 빠를 것이라는 대담한 자신감마저 엿보였다. 게이밍 성능을 종합적으로 봐도 2배 가까운 성능이니 압도적 우위로 왕좌를 탈환할 기세다.


하지만 벤치마크란 실제로 제품이 시장에 풀린 뒤에 결론이 나는 항목이기도 하다. 리퍼런스 보드 위에서의 성능과 양산품은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발표 시기가 다른 제품의 특성상 탑재한 메모리의 성능 격차 때문에 CPU의 성능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번에도 인텔은 LPDDR-4266으로 AMD는 DDR4-3200의 벤치마크였다.


이처럼 칩은 그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구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텔은 가장 타이거레이크를 잘 살리는 구성을 브랜드화하기로 한다. Evo라는 브랜드를 밀기 시작했는데, 인텔은 주기적으로 이런 마케팅 브랜드를 만든다. 울트라북이나 그 옛날의 센트리노가 그런 것이다. 메르세데스의 AMG 같은 일종의 트림(Trim, 디럭스 등등처럼 자동차 모델의 다른 버전)을 만들어 팬을 만들려는 전략이다. 타이거레이크 탑재 이외에 Evo의 특성이자 조건을 살펴보면 1초 미만에 깨어나기, 실사용 9시간 이상의 배터리, 30분 만에 4시간 분량을 채우는 고속충전 등 매력적이다. 고도로 발전한 노트북은 스마트 기기와 구분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스펙 상으로는 4의 행진이 이어져 PCIe 4.0, LPDDR4x(5도 지원), 썬더볼트 4 등으로 알차다. 단, 와이파이는 6다.


하지만 Evo는 어디까지나 브랜드일 뿐이다. 삼성이나 레노보 등은 제품 라인업이 올라왔지만, 아직 HP나 델 등 기업 현장에서 강한 브랜드는 적극적이지 않아 보인다. 종합 구성의 완성도는 우리가 더 잘한다는 자존심일지도 모르겠지만 Evo라는 마케팅 스티커 한 장의 효과가 두드러지기만 한다면 언제든 인증에 참여할 터다.


소비자인 우리들은 어떤 노트북을 사든 Evo의 실물을 먼저 만져보는 것이 좋다. 적어도 하나의 기준점이 선언된 셈이니까, Evo 전후로 인텔이 아닌 제품들도 달라지고, 또 세대가 바뀌면 전 세대의 가격은 하락하기 마련이다.


인텔을 보면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떠오른다.


인텔의 역사가 깊은 만큼, 진지한 일을 하면 할수록 인텔이 아니면 곤란해지는 일이 없지 않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운영체제와의 밀월도 길었던 만큼 가상화 등에서 인텔이 아니면 불편한 일들이 예기치 않게 나타나기도 한다.


똑같은 amd64 코드를 활용하는 기종끼리도 이런데, 전혀 다른 아키텍처로 넘어가는 ARM의 경우는 말도 못하게 더 한 일이 수도 없이 벌어질 예정이다.


그래서 인텔이 그간 다소 게을렀지만, 역전의 기회는 꾸준히 주어질 것이다. 마치 늙어가는 챔피언에 대한 예우와도 같이.


물론 실은 너무나도 길었던 점령기가 마련해 준 어드벤티지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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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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