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IT 역사. 트랙볼이 돌아왔다.

[테크]by 김국현
살아있는 IT 역사. 트랙볼이 돌아왔
잊고 있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뉴스가 있는 날이 있다. 마우스 명가 로지텍에서 새로운 트랙볼( MX Ergo )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한 날도 그런 날이었다. 

 

멸종위기종 트랙볼. 손으로 직접 볼을 굴려서 화살표를 움직이는 포인팅 디바이스로, 요즈음에는 이렇게 굳이 설명을 해 줘야 할 정도로 보기 드문 신세가 되어버렸다. 실물을 본 적이 없는 이들을 위해 다시 설명해 보자면, 예전 그 볼마우스를 뒤집어 놓은 생김새라고 말해보려 했으나, 이미 볼마우스 자체가 화석이 된 지 오래니 이를 또 설명해야 하는 지경이 되어 버린다. 이쯤에서 멈추기로 하자.

 

한 때는 포인팅 디바이스 하면 마우스 아니면 트랙볼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흔했다. 노트북의 터치패드가 있던 그 자리에 볼이 하나씩 박혀 있곤 했다. 심지어 블랙베리에도 콩알이 하나 박혀 있었다. 

 

공간을 적게 차지하고, 손목을 움직이지 않으니 관절에도 좋을 것 같고, 마우스처럼 바닥을 문지르지 않으니 때도 덜 탄다. 하지만 전혀 안 끼는 것은 아니다. 가끔 볼을 빼내 보면 손을 타고 들어간 이물질이 켜켜이 껴있곤 한다. 이곳을 청소하는 것이 나른하고 개운한 일과였던 시절이다.

 

나는 마우스를 쓰지 않는다. 씽크패드의 빨간콩과 애플 제품의 트랙패드를 만난 이후,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들을 쓸 수 없는 환경에서도 마우스는 쓰지 않았다. 

 

나는 그 시절 트랙볼을 쓰고 있었다. 생각이 나서 잡동사니를 뒤집어 보니 그곳에서 발견된 것은 구형 켄싱턴 트랙볼. 광학식으로 바뀌던 시절이어서 초대기처럼 당구공을 대신 넣어 쓰는 존재감 가득한 묘기는 부리지 못하지만, 그 거대한 볼을 만지는 기분은 역시 각별했다.

 

대개의 포인팅 디바이스는 상대좌표 기준이다. 거대해진 21세기의 화면을 화살표가 횡단하기 위해서는 마우스의 경우 꽤 많은 거리를 손목을 써서 ‘달려야’ 한다. 하지만 트랙볼에는 다른 포인팅 디바이스에는 없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관성이다. 내 몸을 써서 화살표를 직접 가져다 옮기는 것이 아니니, 멀리 가기 위해서는 볼을 세게 굴리면 된다. 미세한 움직임은 손끝으로 어루만지면 된다. 물론 요즘 마우스의 설정 화면에는 대개 가속도나 관성을 흉내 내는 옵션이 있지만, 이 천연의 관성이 주는 느낌을 따르기는 힘들다.

 

이 느낌. 공을 굴리는 느낌. 화살표를 공을 밀 듯, 밀어 버릴 때 발산하는 해방감. PC 전성기의 내가 지금은 단종된 마이크로소프트 트랙볼을 포함, 늘 트랙볼을 쥐고 있었던 이유였던 것 같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으니 게임에는 어딘가 적합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관성이란 통제하기 힘든 자연법칙이다.

 

사실 트랙볼은 그 크기에 따라 볼의 크기에 따라 조작감이 꽤 다르다. 트랙볼 유저에도 엄지파가 있고 손가락파, 손바닥파가 있다. 그 차이에 따라 다른 유파(流波)의 장비에도 익숙해지는 데 진입 장벽을 넘어야 하기에, 초심자의 경우 트랙볼에 당황하기에 십상이다. 이는 점점 일반 사용자를 멀어지게 했다. 익숙해지면 꽤 편하지만, 굳이 익숙해져야 할 이유를 못 찾았다. 마치 자동차의 수동 기어처럼.

 

하지만 만약 손목이나 심지어 어깨가 아픈 PC 사용자라면 이 세계를 모르고 지나치는 것이 안타깝다. 트랙볼을 쓸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면, 적어도 마우스 설정에서 가속 기능을 켜준 채, 마우스를 물리적으로 과하게 움직이지 않는 기법을 익히자. 윈도우에서는 어쩐 일인지 ‘포인터 정확도 향상(Enhance pointer precision)’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으니 이를 켜놓는다. 맥에서는 디폴트가 마우스 가속이 되어 있다. 끌 수는 있다. 예전에 내 마우스가 얼마나 많은 km를 뛰었는지 기록해 주는 Mousotron이라는 PC 프로그램도 있었다. 손목으로 뛰는 마라톤, 그것이 바로 마우스다. 내가 마우스를 전혀 쓰지 않게 된 핑계였던 것 같다.

 

그래서 트랙볼에 다시 적응하게 되었냐고? 음, 큼지막한 볼을 어루만지는 기분은 추억을 불러일으켜 행복감을 가져다주기는 하지만, 책상 위의 매직 트랙패드를 치울 것 같지는 않다. 공을 굴리며 노는 것도 즐겁지만, 평면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면서 노는 것에 익숙해진 시대를 사는 탓인가 보다.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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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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