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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배터리가 문제야. 2018 배터리 트렌드

by김국현

배터리가 문제야. 2018 배터리 트

에너지의 문제는 시간과 장소의 문제다. 에너지는 늘 어디에선가는 넘치고 있는데, 동시에 어디에선가는 정작 필요할 때 부족하다. 저 멀리 태양은 타오르고 화산은 끓어 오르지만 정작 내 폰이 필요로 하는 3.7 볼트는 오늘도 모자란다. 발전소를 지어 기름을 태우고 원자력도 보듬어 보지만 에너지를 만들어내기는 쉬워도 에너지를 잡아 두고 담아 두기는 힘든 일이다. 어차피 흐르는 전기는 그래서 심야에 싸다.

 

흐르는 물을 담은 저수지(貯水 ‘池’)처럼 흐르는 전기를 담아 두고 싶은 전지(電 ‘池’)는 이처럼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궁리의 결과였다.

 

세계최초의 전지가 등장한 것은 서기 1800년. 발명자의 이름을 딴 볼타전지(대략 1 ‘볼트’ 정도였는데 볼트는 볼타를 기념하는 단위)에서 시작한 기술혁신은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타올랐는데, 건전지, 납축전지, 니켈카드뮴전지 등의 시제품이 등장한 것도 지난 세기 초였다. 세계 대전 후 망간이나 알칼리건전지가 양산되기 시작하며 카셋트 라디오 등 고도성장기의 전자기술 대중화를 촉발했다. 돈으로 전기를 사서 끼워 넣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돈으로 에너지를 사서 바로 주입하는 건전지는 마치 주유소에서 에너지를 사서 주입하는 것처럼 이해하기 쉬운 에너지 수급법이었다. 그렇지만 일회용의 비용과 폐기물은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고, 전기를 다시 담아둘 수 있는 충전지의 혁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절 이래 전지 혁신 역량이란 기술입국의 가늠자였다. 니켈·카드뮴, 니켈·수소 등 건전지형 충전지는 산요, 도시바, 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의 성과였다. 리튬이온도 90년대 초반 소니가 양산하면서 대중화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일본 가전업계의 해가 저물 듯, 결국은 LG화학이나 삼성SDI 등 한국 기업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갔다. 삼성과 LG가 주목을 받게 된 시기와 겹친다.

 

그러나 최근은 중국의 규모 앞에서 위축되고 있다. 중국제라고 하면 믿을 수 없는 배터리의 대명사였으나, 지난 1~2년 분위기는 상당히 바뀌고 있다. 중국 덕에 배터리의 가격은 하락하고 양산 규모도 달라지고 있다.

 

규모가 달라지니 이제 배터리는 휴대용 전자기기의 에너지원이 아니라, 자동차, 아니 도시나 지자체의 에너지원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재생 가능(renewable) 에너지에 의존하는 지역이라도 풍력·태양력·수력 발전이 모자란 경우 화력으로 태우곤 하는데 만약 초거대 규모 배터리 농장을 만들 수 있다면 청정에너지에 의존한 국가를 만들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테슬라의 기가 팩토리가 만들어내는 대량의 배터리는 자동차뿐만 아니라 호주의 전력도 지탱할 예정이다.

 

전기를 담아 두는 힘이 국력이 될지도 모른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충당 비율이 25년째 OECD 꼴찌를 차지하고 있는데, OECD 평균의 겨우 10분의 1 수준. 미세먼지를 두고 중국 탓만 할 수는 없는 속내가 여기에 있다. 만약 배터리의 양이 늘어난다면 이런 나라에도 충전국가로의 희망을 줄 수 있다.

 

낙관적일 수 있는 이유는 배터리의 질도 좋아지려 하기 때문이다. 완성도가 높아질 만큼 높아진 리튬이온의 뒤를 이어 리튬·공기, 리튬·황, 나트륨·이온 등등 변이체 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 흔한 원자재를 활용 제조원가를 낮추고 밀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계속되어 성능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주원료인 코발트는 그 60%가 콩고공화국에서 인권이 유린된 상태로 채굴된다.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다. 예컨대 나트륨·이온 전지는 전압이나 에너지량은 비록 더 적지만 착한 배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포스트 리튬이온으로 가장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은 전고체전지(solid state battery)다. 리튬이온에 들어 있던 물컹거리는 액체 전해질을 고체화한 것으로, 고체물질에 이온을 통하게 하는 것이다 보니 액이 새어나오거나 폭발하는 등의 위험이 줄어든다. 아무리 리튬이온의 전해질이 겔타입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물 주머니, 찢어지거나 찍혔을 때 벌어지는 일은 지난 갤럭시 노트 참사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아무래도 안정성이 있기에 전압을 높일 수 있어서, 용량도 더 높일 수 있다. 종래 전지의 3배 이상의 출력특성 덕에 도요타, 다이슨 등 고출력 모터가 필요한 곳들이 매우 적극적이다. 이처럼 최종 양산 업체가 소재산업을 품으려는 모습은 이례적인데, 이런 열기 덕에 늦어도 5년 내로는 상용제품이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처럼 전지의 기술혁신을 둘러싸고 새로운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물론 과거 리튬이온에서 그랬듯이 혁신을 빨리 흡수해 더 싸고 꼼꼼히 만들어내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이 먹힐 수도 있다. 선행자(퍼스트무버)는 47%가 실패하는 것에 반해, 개선자는 8%만 실패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이 깨어난 상황에서 이것이 현실적인 전략인지는 알 수 없다. 리튬이온을 처음 양산했던 소니의 전지 부문은 과거의 영화를 뒤로하고 세라믹 기술력이 뛰어난 무라타라는 회사에 인수되어, 신소재 전지의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배터리 경쟁은 어느새 이미 다음 판으로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