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B-C 유토피아는 오기도 전에 대혼돈 중

[테크]by 김국현
USB-C 유토피아는 오기도 전에 대

USB-C는 미래다. 뒤집어 어느 쪽으로 꽂아도 상관없고 또 기존의 단자들보다 훨씬 좋다는 내구성은 마음 편한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미래는 보통 현재와는 사이가 좋지 않기에 그 틈새를 메꾸기 위한 동글들과 각종 케이블은 늘어만 간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사실 USB-C(USB Type C)는 일종의 생김새에 대한 규격에 불과하다. USB-C 포트에 쑥 잘 꽂힌다고 무조건 작동하지는 않는다. USB-C 포트에 케이블만 꽂으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해결될 것 같지만, 지금 수중에 가지고 있는 케이블들이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는 이 규격 중 어중간한 상태로만 지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USB-C는 여타 규격들보다도 고난도의 집합체다. 상당량의 전류와 전압도 보낼 수 있는 사양에 꽤 빠른 데이터도 주고받고, 심지어 모니터 디스플레이 신호마저 대체할 예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걸 제대로 만들려면 가격도 가격이지만 케이블이 상당히 두툼해지고 무거워진다. 양쪽 케이블 끝에 이마커(eMarker) 라는 반도체 칩도 박아넣곤 하니 모양새도 투박해진다.


하지만 전자 제품에 번들로 들어가야 할 케이블은 그것이 USB-C든 뭐든 예쁘고 가볍고 저렴해야 한다. 충전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고 어쩌다가 약간의 데이터 전송만 하면 99%의 수요는 충족될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애플 맥북이나 구글 넥서스 안에 들어 있는 정품 USB-C 케이블도 초고속 데이터 통신이나 모니터 연결을 지원하지 않으니 이 혼돈의 양상은 새롭다. 예컨대 같은 LG 제품에 들어 있는 USB-C 케이블이라도 휴대폰 안에 들어 있는 것과 모니터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질이 다른 셈이다. 이런 간이 USB-C 케이블은 커넥터를 잘 보면 배선이 듬성듬성하다. 대신 얇고 길게 만들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 유통되는 케이블은 그야말로 천차만별, 가격이 10배 차이가 나기도 한다.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는 진리는 여기에서도 대략 통하기는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이 머리 아픈 점이다. 사서 꽂아봐야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었는지 알 수 있는 지경이다. 겉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어도 그 속은 제각각이다. 


USB-C라는 외모의 물리적 단자를 통해 어떤 일이 벌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대표적 내용 규격으로 USB 3.1이 있다. 여기에는 다시 1세대(Gen1)와 2세대(Gen2)가 있어서, 각각 5Gbps와 10Gbps로 속도 차가 있다. (1세대는 사실 그냥 USB3.0과 같은 말인 셈이다.) 2세대의 경우 USB 2 시절의 480Mbps랑 비교하면 20배의 속도 차이다. 여기에 다시 PD(Power Delivery)라고 해서 어느 정도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규격이 들어가고, 또 알트 모드(Alternate Mode)라고 해서 USB 이외의 신호를 전송하기 위한 규약이 있는데 비디오 신호를 전송하려면 이를 또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경우의 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또 USB 3.1 이외에 아예 맥북 프로처럼 썬더볼트 3도 채택, 40Gbps를 지원하고 비디오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5K 디스플레이는 썬더볼트로 4K는 USB-C를 사용하니 케이블도 따로 준비해야 한다. 


또 양쪽의 USB-C 지원 장비 또한 서로를 잘 배려하고 있으리라는 기대 또한 낙관적이다. 심지어 USB-C를 통해 들어오는 충전 신호도 PD 규격이 아닐 수 있다. 특히 휴대폰의 충전 신호는 QC(Quick Charge)라는 별도 규격이 많다. 


USB-C. 이쯤 되면 상자를 열어 직접 꽂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개 조를 명심해 보자. 


1) 구매하기 전에 위의 내용에 대해 미리 공부를 꼭 해두고, 구매평과 상품 정보에서 다시 확인하자.

2) 구매하더라도 교환 및 반품이 용이한 곳에서 구매하자.

3) 되도록 케이블이 없이 살 수는 없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해 보자. 


우리 생활에 케이블이 늘어날수록 번잡함과 지저분함이 찾아오곤 한다. USB-C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USB-C라는 대통일 시도가 있기 전까지는 우리 주위에 이토록 많은 종류의 케이블이 있었는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USB-C가 안방과 가방으로 들어올수록 제각각의 제품들을 어떻게든 하나로 모으는 일이란 얼마나 힘든 일이란 것인지 몸소 느끼고 만다. 내가 처음 USB-C 제품을 사들이기 시작한 지도 3년이 넘었건만, 3년도 넘게 이 혼돈이 지속하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USB-C 케이블 혹은 동글이라고 나와 있는 제품들이 구매자의 의도대로 움직여 줄 확률은 상당히 낮다. 다행히 지금 쓰고 있는 제품에서는 문제가 없어 보여도 다른 제품과 물려보면 뜻밖의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통일과 통합이란 힘든 일인데, 아무나 그 결과물을 만들 수 있고 결과에 대해 누가 뭐라 하지 않으니 USB-C는 정글 상태다. USB-IF 등 협회나 표준화 기구도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어설픈 제품이란 때로는 악의가 아니라 그것이 최선의 결과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2018.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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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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