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는 살아있다!

[테크]by 김국현
테이프는 살아있다!

구글 첫 페이지의 그림은 자주 바뀐다. 구글 두들이라 불리는 이 그림은 시대상을 종종 반영하곤 하는데, 지난주에는 1974년의 아레시보(Arecibo) 메시지가 구글의 첫페이지를 장식했었다. 이진수로 만든 메시지를 주파수 변조해 패턴으로 만들어 전파망원경으로 우주로 쏘아 보낸 것. 지구를 대표할만한 몇 가지 메시지를 담은 이 전파는 2만 5천 년 뒤쯤 외계인이 있을지도 모를 것 같은 항성 군에 도착할 것이라 한다.


비슷한 시도로는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voyager) 탐사선에 들어 있던 골든 레코드가 있다. 구리로 만든 디스크에 인류 문명에 대한 힌트를 나름 담아 보낸 것. 우리가 보낸 잡음 속에서 외계인이 데이터를 ‘로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정말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카세트테이프에 주파수 변조된 데이터를 담아 저장하곤 했다. 80년대의 8비트 키드들은 LOAD 명령어를 치고, 카세트테이프 재생 버튼을 꾹 눌렀다. 5분 이상의 잡음을 재생하고 나면, 기껏해야 32KB 정도의 게임이 로드되었다. “삐리삐리지지직” 소리가 맑지 않으면 나사를 돌려 헤드를 조절하곤 했다. 테이프란 이렇게 헤드의 위치가 어긋나곤 하는 불완전한 입력기기였다. 플로피 디스크가 대중화되기 전까지의 풍경이다.


골든 레코드를 품은 보이저 호는 원자력 배터리로 구동되는 당시로서는 첨단 탐사우주선이었지만 그 저장장치는 일종의 카세트테이프였다(정확히는 8트랙). 보이저호가 촬영한 저해상도의 흑백 사진은 지구로 보내지기 전까지 잠시 이 테이프에 머물렀다. 전송이 끝나면 즉시 되감기 되어 새로운 정보가 기록되었는데, 이 쳇바퀴 같은 단순작업이 이어진 지 벌써 40년이 넘었다. 총 메모리가 69KB이니, 이 만평 그림 파일도 다 안 들어갈 용량의 보이저 빈티지 컴퓨터. 지금도 우주 저편을 항해하며 미세한 신호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


정보란 이처럼 기껏 파형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세트테이프는 그럴듯한 저장매체였다. 하지만 그 용량이 너무 작았고, 또 모든 데이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들이고 써내려가야만 하는 ‘시퀀셜’한 특징이 발목을 잡았다. 수시로 저장하고 정보를 읽어내는 ‘랜덤 액세스’가 힘들다는 점은 가장 큰 단점이었다. 따라서 플로피 디스크의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멸종될 수밖에 없었는데, CD와 MP3의 등장 때문에 음악 카세트테이프가 멸종되는 속도보다도 빨랐다.

 

그나저나 카세트테이프는 요즈음 어찌 되었을까 궁금해졌는데, 흥미롭게도 2017년 미국과 영국에서는 모두 카세트테이프 판매가 성장했다 한다. 영국은 두 배로, 미국은 136%나 성장했다. 레트로 붐에서 LP판을 오히려 앞선 셈이었다. 마블 영화 가디언 오브 갤럭시에서 주인공이 카세트테이프를 고집하는 모습을 모두 인상 깊어했는지, 가디언 오브 갤럭시의 ‘최강(Awesome) 믹스’ 시리즈는 두 번째 볼륨까지 정식 발매되었다. 주기적으로 골동품은 최신 트렌드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그런데 왜 인제 와서 카세트테이프나 LP판을 사는 걸까. 가끔 우리 가수들도 카세트판을 내놓기도 한다. 이 무슨 80년대 목폴라나 어깨뽕처럼 촌스러운 일인가 싶은데, 아날로그의 매력은 이에 심취해본 당사자가 아니면 설명하기 쉽지 않다.


아날로그가 뱉어내는 완벽하지 않은 음색은 그것이 억지 재현이 아닌 최선을 다한 모습이라서 끌린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최선을 다했던 시절은 누구나 그리워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완벽하지 않은 구석을 추억이 채워주니 그리움은 여유만 있다면 대개 잘 되는 장사다.


하지만 세월은 흐른다. 전주의 카세트테이프 생산공장은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지원산업’을 거쳐 문화공간이 되었다. 카세트테이프는 일상에서는 사라졌지만, 소니는 작년에 카트리지당 330TB를 담을 수 있는 초고밀도 백업 테이프를 개발했다. 데이터 센터에서는 여전히 수요가 있나 보다. 놀랍게도 여전히 테이프에 기록되는 데이터양은 지금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백업 테이프는 여전히 디스크보다 싸고, 오류가 적으며 수명이 디스크보다도 6배나 더 길다. 마그네틱 입자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계속 전원을 넣을 필요도 없으니 보관하기도 쉽다. 불편한 것은 상관없다. 백업은 자주 해도 실제로 복원하는 일은 극히 드무니까.


하지만 HDD는 SSD가 되고, 서버는 클라우드가 되고 있다.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모든 것은 결국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아날로그가 아니어도 되는 모든 것은 결국 디지털이 될 것이다.

이 IT적 숙명을 테이프는 과연 언제까지 피해갈 수 있을까?

2018.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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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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