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전수전 노키아에 찾아온 화웨이 사태라는 기회

[테크]by 김국현
산전수전 노키아에 찾아온 화웨이 사태

인생에도 사업에도 한 가지 확실한 바가 있다. 그것은 인생도 사업도 뜻하는 대로만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노키아가 그랬다. 휴대폰으로 세계를 장악했던 황금기의 추억도, 스마트폰 시대의 부적응자가 되어 수직 추락한 충격도, 그리고 있는 대로 팔고 정리하고 동료들마저 대거 정리해 마련한 처절한 자금으로 한 마지막 배팅의 설렘까지.


그 배팅이란 알카텔-루슨트를 사들이며 선택 및 집중하기로 한 네트워크 장비 사업이었다. 그전에도 노키아는 장비 사업을 하긴 했었지만 단말의 제왕 노키아에게는 그저 변방의 부서였다.


B2B 시장이 보통 그렇듯 네트워크 장비란 화려하지 않은 비즈니스다. 기지국이나 교환기 등 시민이 매일 의존하는 공공 영역의 필수품이지만 일반소비자가 직접 선택하지는 않는다. 대개의 경우 일반인들은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는데,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좋은 망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통신사의 몫이니 어련히 알아서들 조달하고 설치하리라 생각해서다. 수주전을 거쳐야 하고 갑을관계가 수직적인 B2B 비즈니스란 따라서 재미가 없고, 여유 있는 테크기업이라면 가능하면 안 하려 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5G로의 전환기. 큰 장이 서려 하니, 준비된 이들에게는 큰물이 들어 오는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통신의 세대 전환기에는 IT 기업의 명멸을 판가름하는 큰 변화가 있었다.


이러한 장비 시장을 현재 전세계적으로 5개사가 석권하고 있는데, 화웨이(시장 점유율 28%), 에릭슨(27%), 노키아(23%)가 3강, 그리고 중국 ZTE(13%), 삼성(3%) 순이다. 스웨덴 에릭슨이 전통적 강자였는데 요즈음 영 신통치가 않다. 불과 한 달 전 영국 O2나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망이 먹통이 되어 버려 사회가 마비되는 대참사가 일어났는데, 에릭슨 장비의 소프트웨어 버그 탓이었다.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특히 소프트뱅크는 상장 직전이기에 여러모로 꼬여 버린 셈이었다.


5강 중 쾌진격 중인 곳은 화웨이다. 현재 2위 에릭슨과 점유율 상 큰 차이는 나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화웨이의 압도적 가성비와 성능은 두려울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이는 최근 심지어 화웨이 스마트폰에서도 엿보이는 평판이기도 하다. 무자비한 행군으로 만들어내는 패스트 팔로워의 정수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BT(브리티시 텔레콤)의 치프 아키텍트가 "현재 진정한(true) 5G 공급업자는 화웨이밖에 없다"는 말을 할 정도다. 국내에서도 LG 유플러스의 5G 준비 상태가 삼성 등을 채택한 KT·SKT보다 진척도 면에서 앞서고 있다는 소문이다.


하지만 화웨이는 지금 미중무역전쟁의 링 위에 밀려 들어갔다. 화웨이 창업자의 딸이자 CFO가 캐나다에서 전격 체포되고 또 보석되는 등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미국 기술을 이란에 위법 유출하게 했다는 명분인데, 이미 미국에서 ZTE가 같은 이유로 제재를 받아 파산 위기까지 갔던 적이 있다. ZTE가 연습경기, 화웨이가 본게임인 듯한 느낌이다. 인민해방군 출신이 만든 회사이고 중국정부와의 관계가 미묘한 비상장기업이기에 언제 어떤 식으로 첩보에 유용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명분이다. 이미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까지 모두 통신 인프라에 화웨이를 배제하기로 암묵적 합의를 한 듯하다. 심지어 소프트뱅크도 에릭슨의 대체재로 화웨이를 고려하려 했으나 노키아로 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떴다. 화웨이는 보도자료도 뿌리며 그렇지는 않다고 주장하지만 적어도 분위기는 동맹국 만세다. 그런데 정말 화웨이가 스파이가 될까? 창업주가 지분을 1.4%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분산형 조직이자 방대한 특허를 쏟아내는 R&D형 글로벌 기업이 조직범죄의 무리수를 둘 이유는 크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서방세계는 중국의 패스트 팔로워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게 되었다. 고객들이 찝찝해진 것이다.


노키아가 2016년에 인수한 알카텔-루슨트. 그 루슨트란 전신이 AT&T의 장비사업부였고, 이곳은 광통신과 무선통신과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과 정보이론 등등 현대 ICT을 구성하는 대개의 기초과학을 완성한 벨연구소가 있었던 곳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모든 기초 연구를 20세기에 다 해줬더니 21세기 중국이 그 득을 본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


그 추억의 연구소가 프랑스 알카텔을 거쳐 다시 핀란드로 넘어가 노키아 벨 연구소로 쪼그라들었다. 이미 프랑스로 넘어갈 때 미국은 줄 수 없다며 한차례 홍역을 앓았다. 노키아는 알았는지 몰랐는지 서방세계의 마음을 사들인 것.


노키아에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찬스가 펼쳐지고 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알 수 없다. 그간 수차례 이어진 전략적 실패, 그리고 VR 영상업을 하겠다는 둥, 헬스케어 사업을 하겠다는 둥 문어발처럼 신사업을 건드려 보다마는 실수를 또 할 수도 있다.


지금 챔피언은 강하다. 노키아도 에릭슨도 지금 가진 것은 통신 장비뿐이지만, 화웨이는 단말도 장악한 종합 IT 장치 기업으로 시너지를 내는 범위가 넓다. 노키아의 주가는 2007년에는 거의 40유로, 2012년에는 2유로로 폭락, 그리고 요즈음은 5유로 언저리에서 횡보중이다. 폭락의 지옥에서 기어올라 활주로에 다시 올라선 노키아는 이륙할 수 있을까?

2018.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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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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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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