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모지(이모지)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

[테크]by 김국현
에모지(이모지)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

시대는 20세기 말. 장소는 일본. 삐삐 문화가 그 막을 내리려던 시절. 숫자뿐만 아니라 문자도 보낼 수 있는 삐삐가 일본에서 삐삐의 마지막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일부 기종에서만 하트 마크를 찍을 수 있었는데, 이 기종을 따라 고객이 이동해 버리는 현상이 벌어진다.

 

:-) 와 같은 미국식 이모티콘(1982년생), (^_^)과 같은 일본식 카오모지(얼굴문자·顔文字. 1986년생)가 PC에서 절찬 유행하고 있었지만, 삐삐에서 이걸 입력하는 것은 어려운 일. 하트 마크 하나가 지닐 수 있는 위력을 업계가 인지하게 된 계기가 된다.

 

마침 때는 일본 최대의 통신사 NTT도코모에서 i모드를 기획하던 시절. i모드는 피처폰용 무선인터넷의 효시인데, 지나치게 성공한 나머지 일본 IT산업의 갈라파고스화를 촉진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데 그런 평가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 전세계는 지금 그 갈라파고스 i모드가 남긴 위대한 유산을 매일 쓰고 있다. 바로 에모지(그림문자, 絵文字)다.

 

당시의 무선 인터넷은 그림을 처리하는 일 자체가 부담이었다. 그림 전송은 문자와 다른 세션을 따로 맺어야 했다. 따라서 문자 안에 그림을 어느 정도 넣어 두자는 의견은 제약 조건 안에서 솔루션을 상상해내는 기술적 상상력이기도 했다. 당시 한 문자의 도트수는 12x12. 그 작은 면적 안에서 점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에모지가 등장한 것이다.

 

통신사에서 나온 것이건만 이례적으로 권리보호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워낙 조그맣다 보니 의장으로서의 구분이 힘들다는 해석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어쨌거나 에모지는 열린 문자가 되어 버려 당시 일본의 통신 3사가 모두 달려들게 된다. 문제는 제각각의 방식으로. (기술적인 이야기를 애써 하자면 <IMG> 태그로 하는 회사도 있었고, 메인프레임에서나 익숙했던 SO/SI를 쓰는 데도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서로 에모지를 주고 받으려면 심지어 에모지 변환 서비스를 거쳐야만 했다. 그런데 각사가 다른 코드를 쓰고 있었기에 변환의 가지수는 엄청났다.

 

그러던 2008년 아이폰이 소프트뱅크를 통해 일본에 상륙한다. 에모지는 일본어 입력기의 일부 기능으로 그것도 소프트뱅크 방식으로 등장하는 한정적 등장이었다. 하지만 애플에게 그 가능성을 설명해준 사건이었다.

 

흥미를 느낀건 구글도 마찬가지였다. 구글은 이미 2007년 유니코드에 에모지를 넣자는 의견을 처음 내게 된다. 안드로이드의 알파버전이 나오던 무렵이니, 에모지의 가능성을 애플보다 먼저 느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 후 2009년 애플이 공식 제안에 합류하면서 이 두 회사는 이 일본산 에모지를 유니코드로 가져가는 긴 여정을 함께 시작하게 된다.

 

주도권이 넘어가 버리는 순간이었다. 에모지를 세계의 ‘이모지(emoji)’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스마트폰 시대와 더불어 가장 널리쓰이는 상형문자이자 가장 급성장중인 언어가 되었다. 이모티콘을 연상해서인지 이모지라고 발음하고 한국에서도 그 습관이 수입되었다.

 

이 두 회사에 의해 에모지가 새롭게 그려지면서 백인편중이라는 편견이라느니 질타를 받고 다양한 인종이 추가되기도 했다. 백인이 생각해낸 것도 아닌데…

 

한편 최근에는 미셸 오바마가 공부하는 소녀의 에모지를 보고 싶다고 했는데, 구글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다양한 직업에서 활동하는 여성을 그린 에모지를 유니코드 컨소시움에 제출했다. 생각해 보면 직업을 나타내는 에모지는 다 남자였고, 여자는 헤어나 네일이나 댄스에 등장하곤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미국처럼 많이 쓰이지는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그 자리를 스티커가 차지해서인가? 아니면 ㅋㅋㅋ와 ~나 ‘헐’ 정도면 충분해서일까? 오히려 21세기의 스페이스키와 마침표가 되어가는 ㅋ과 ~등이야말로 별도 문자코드를 추가 할당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에모지가 좋다. 바둑판처럼 광활히 펼쳐진 빽빽한 에모지판에서 메시지를 위해 하나를 고르는 기분은 묘하게 정성이 들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나의 에모지가 다른 기종이나 운영체제에서도 똑같은 그림이라는 보장은 없다. 스시 먹으러 가자고 에모지를 보내도, 참치초밥(iOS), 계란초밥(구글, 삼성), 심지어 단무지김밥(윈도우)으로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1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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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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