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맥스 OS에서 화웨이 OS까지, 운영 체제의 애국 마케팅

[테크]by 김국현
미중 무역전쟁의 불똥이 화웨이에 옮겨붙었다. 아니 불씨였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화웨이가 상무부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나니 구글의 서비스가 일제히 금지되고, ARM이 더 이상의 계약을 금지하기로 하는 등 보기 힘든 쾌속 냉전이 IT 산업에서 펼쳐지고 있다.


손발이 묶인 화웨이는 자국 내수용으로 준비해 운영체제를 Ark OS라고 유럽 등지에 급히 상표 등록하며 확장하려 하고 있다. 안드로이드 자체는 오픈소스이다 보니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운영체제를 하나 뚝딱 만들어낼 수 있음은 샤오미 등이 이미 보여준 바 있다.


OS를 새로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빌게이츠나 리누스 토발즈의 위인전을 읽어 보면 비결이 녹아 있다. 오늘날의 그 대작들도 그 시작은 미미하였던 것이고, 늘 어느 시대에나 비빌 언덕이 있었다. 더욱이 파일 시스템이나 네트워크 스택 등 요소 기술의 설계도가 널려 있는 21세기는 한층 쉬울 것이다. 하지만 OS를 키워 내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수많은 이들의 참여와 호응이 필요한 일이고, 여러 의미에서 그 작품과 작가를 사람들이 좋아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진인사대천명과 같은 쇼 비즈니스적 마음가짐마저 필요하다. 누구나 시작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박수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이 바로 운영체제라는 무대인 셈이다.


올해는 티맥스 윈도우 사태가 벌어진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MS 윈도우를 대체하겠다고 ‘독립선언’을 하며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를 했으나 실태는 속빈강정이었던 그 사건은 우리 사회에 국산 소프트웨어에 관한 냉소를 자라나게 한 안쓰러운 사건이었다.


그 후로도 티맥스 OS로 이름이 바뀌어서 2016년부터 주기적으로 발표하고 있는데, 올 7월 드디어 일반 사용자용으로 배포 예정이라고 한다. 그 뉴스 후 자사 홈페이지에서 실수인지 잠깐 배포가 이뤄졌는데, 너도나도 설치해 보며 인터넷에서는 한바탕 축제가 펼쳐졌다. 그런데 분위기는 참담. 제대로 도는 것은 없으며, 무언가 가져다가 만든 것 같은데, 그에 공을 돌리고 저작권을 귀속시키는 등 리스펙트가 보이지 않는다고 자발적 리뷰어 들은 입을 모았다. 10년 전과 3년 전 시연회에서의 반응과 분위기가 그대로 재연되었으니,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바뀌지 않는 풍경이란 것은 있는 모양이다.


‘리스펙트'가 있어야 ‘리스펙트’가 따라오는 법이다. 운영 체제 성공에, 아니 모든 소프트웨어의 성공에 필수적인 이 감정을 간과하는 일은, 위력에 의해 판매가 가능하다는 기대가 있을 때 저지를 수 있는 일이다.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리 없지만, 그 시장이 왜곡되었다면 소비자의 의견 따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산 소프트웨어라고 하면 마치 국산 휘발유 엔진을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고 하는 듯한 고양감이 있고, 이에 끌리는 이들도 있다.


큰 정부 하에서, 정부 정책에 이용 가능한 어용 기업은 쓸모가 있다. 정부 스스로는 할 수 없거나 차마 하기 힘든 일을 모듈화하여 리스크와 함께 외주화할 수 있어서다. 'OS 종속성’, ‘독립’과 같은 자극적인 단어들은 소비자의 애국심은 자극하지 못하지만, 관료들의 공명심은 자극한다.


철의 장벽 안에서 지금도 벌어지는 일들이다. 다만 중국이 비슷한 큰 정부인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내수의 규모다. 화웨이는 자신의 OS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가능할 수도 있다. 아무리 괴작이라도 수억 명이 쓰면 정상으로 보이는 법이고, 심지어 기회의 플랫폼으로 보이기도 하는 법이다.


비슷하지만 결코 아무나 따라 할 수는 없는 관치주의다.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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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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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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