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시 내 위치를 폰이 말하게 하자

[테크]by 김국현

위급상황이 닥쳐오면 119에 전화를 할 정신은 겨우 있더라도, 당황한 나머지 현재 위치를 말하는 것을 잊곤 한다. 영화에서는 상황실 화면에 우리 위치가 깜빡거리고 있곤 하지만, 그건 영화일 뿐이다. 음성으로 걸려온 전화에 대해 현대 기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발신자 번호를 토대로 어떤 기지국에 연결되어 있는지 통신사에 조회 의뢰하는 일 정도다. 따라서 위급시에는 현재 위치를 자세하고 간결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쉬운 일일 리가 없다. 최근 영국에서는 숲에서 조난당한 이들이 999(우리의 119)에 조난 요청을 했는데 본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 턱이 없었다. 바로 what3words(W3W)라는 앱을 내려받고 거기에 뜬 주소를 불러 달라고 해서 무사히 구조되었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었다. 영국 경찰은 많은 이들이 이 앱을 깔기를 바란다고 독려하기까지 했다.


W3W는 단어 세 개의 조합으로 3m 간격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영단어뿐만 아니라 한글단어로도 조합이 가능하다. 특허받은 스타트업 기술인데 국내에서는 카카오맵이 이를 채용해 올봄에 한창 뉴스를 탄 적이 있다. ‘초여름·이긴다·색상’ 같은 식으로 추억의 장소가, 혹은 행정 주소가 미비한 미개발 지역도 시적인 세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니 감성 충만한 마케팅이 가능한 기법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사람까지 구했다. 훈훈한 이야기다.


그런데 다급한 상황에서 전화 너머의 상담원이 수십메가짜리 앱을 다운로드하라고 한 일이 옳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스마트폰을 쥐고 있었다면 다른 방법도 분명히 있을 터다.


사진에는 GPS 정보가 녹아 있으니, 현재 사진을 찍어서 전송하라고 하는 편이 더 빠르고 상황 파악에 좋지 않았을까? 각종 메신저 앱에도 위치 공유 기능이 있다. 예컨대 행아웃 등의 채팅앱에서는 ‘Where are you?’ 라고 치기만 하면, 상대방이 내 좌표를 보낼 수 있는 버튼이 뜨는데, 굳이 틀리기 쉬운 세 단어를 육성으로 넘겨받아야 했는지 의문이다. 영국발 스타트업이라 정부도 나서서 홍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PR을 위해 띄워주는 건 아닌지 짓궂은 의심이 든다. 그래도 위치 확인을 위해 ‘119 신고앱’을 깔아서 쓰라는 우리보다는 합리적인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다.


실은 통신사와 제조사 모두 이런 고민을 해왔다. 2016년 영국에서 브리티시 텔레콤과 HTC 등이 AML(Advanced Mobile Location)이라는 유럽 표준을 만들었던 것. 이를 애플과 안드로이드 모두가 이어받았다. 그 결과 미국과 영국 등 서방 국가에서는 이미 긴급 전화시(911/999) 스마트폰의 위치 정보가 전달되도록 마련되어 있다. 주로 유럽의 14개국에서 쓰이는 안드로이드의 긴급위치서비스(ELS, Emergency Location Service)라는 기능이 이 구현체이고, 아이폰도 iOS 11.3부터 기능이 들어 있고, 애플의 HELO(Hybridized Emergency Location)라는 기술이 관련 기술이다. 그런데 위의 조난 사건은 이 기술의 발상지 영국에서 일어난 일인데 왜 또 다른 앱을 내려받으라고 했을까. 아마도 상황실, 통신사, 사용자 중 업데이트 안 된 쪽이 있었나 보다.


스마트폰은 무엇보다 최선을 다해 나의 위치를 파악하려 하고 있다. GPS와 와이파이 액세스포인트를 통해 내 위치를 계산하기에 실내·실외에서 모두 강하다. aGPS라 하여 기지국의 도움도 받으니 GPS 잡는 속도마저 빠르다.


그래서인지 위치 정보는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내 알리바이를 대신 계산해 주려는 듯, 구글 지도의 ‘내 타임라인’을 열어 보면 내 족적을 다 기억하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무심코 올리는 사진들에는 위치 정보가 다 박혀 있다.


위치 정보 기술이란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에서의 행동을 현실로 소환하는 위험한 기술이지만 바로 이 기술이 위급시에 정말 소중한 이에게 나의 위치를 알릴 수 있다. 아이폰의 경우 119와 통화가 끝나면 내 위치를 내가 설정한 가족 친지에게 자동으로 문자로 보내는 기능이 있다. 설정 방법은 ‘건강’ 앱을 띄운 후, ‘*의료정보’란에 긴급 연락처를 추가하면 된다. 안드로이드의 경우는 제조사에 따라 상황이 꽤 다르지만, 삼성의 경우 삼성 SOS라는 기능이 마련되어 있다. 이런 기능이 없더라도, 잠금화면에서 ‘긴급 전화’를 누른 후, ‘긴급 상황 정보’에 비상 연락처와 혈액형 및 지병 정보는 추가해 두도록 하자.


나는 정신줄을 놓더라도 내 폰은 나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할 때가 있다.

2019.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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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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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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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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