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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어른들의 소꿉놀이 동물의 숲, 그 인기의 근원적 이유

by김국현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 시리즈 최신작이 일본에서만 3일 만에 188만 장이 팔렸다. 온라인 다운로드는 치지 않은 오프라인 패키지만의 수치다. 전 세계 통계가 나오기 전이지만 이미 닌텐도로서도 역대 최고의 판매 속도다. 닌텐도의 주가가 상한가를 친 것은 물론, 국내 유통사도 덩달아서 폭등했다. 국내에서는 물량 부족으로 새벽 줄서기까지 벌어졌다. 왜들 이 난리일까?

① 격리된 일상으로부터의 도피

우리는 현실의 스트레스를 피해 게임을 찾는다. 하지만 전염병 대유행으로 사람들을 피해 다니니 현실이 무슨 아포칼립스 게임 속 같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던 긴장감 넘치는 게임이 달리 보이고 부담스러워진다.


동물의 숲의 귀여운 나머지 한없이 해가 없어 보이는 등장인물들. 목적도 임무도 없다. 죽는 일도 없고, 엔딩도 없고, 그렇기에 그 어떤 긴장감도 없어 손에 땀을 쥘 일이 없다. 평온함은 지친 이들에게 힐링이 된다.


경쟁과 마감과 같은 현실적 부담은 사라지고, 오로지 시간 관념만 현실과 연동된다. 게임 속 화면은 창밖처럼 같은 시간에 어둠이 내린다. 대신 밋밋한 풍경이 아니라 아름다운 야경이 나를 반긴다. 매일 매일 조금씩 서서히 바뀌는 계절. 동기화된 시간은 그곳 또한 현실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 게임 속에서 현실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 이 게임은 이게 다다.


엔딩은 없지만 마치 멀어지는 친구처럼 어느 날 하는 것을 잊고 천천히 떠나게 되는 게임. 성장이란 그런 것이라는 듯, 남겨 두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게임. 즐길 만큼만 즐기면 되는 게임이라니, 힘든 시기에 요긴하다.


히트 상품에는 사회 심리가 반영되곤 한다. 이 히트작 역시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로 자의 반 타의 반 두문불출할 수밖에 없는 딱한 일상. 이 격리상태는 내 일상의 무미건조함을 두드러지게 한다. 일상 속에서 쳇바퀴 돌 듯 살아온 나날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다. 화상통화 줌(Zoom)이 격리된 이들을 이어주며 코로나 사태의 수혜주가 되었다. 하지만 화상통화마저도 부담스럽고 또 그렇게 직접 꼭 얼굴을 보여달라고 하는 일마저 없는 고독한 이들도 많다.


고독에 지칠 무렵 어렸을 적 즐겼던 게임이 나온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동숲'이라는 애칭이 정착되어 있을 정도인데, 특히 한글화되었던 DS판이 대인기를 끌었던 시기(2007년)에 유소년기를 보냈던 청춘들은 십몇 년 만에 등장한 본격적 후속판에 남다른 애착을 느꼈을 수도 있다. 물론 그 사이에도 스마트폰 버전을 포함한 시리즈물이 있었지만, 흥행은 그때와 지금이 뚜렷이 쌍봉 곡선을 그리고 있다.


혼자 즐겨도 좋지만, 가족과 함께 하나의 섬을 꾸미거나, 온라인을 통해 친구를 나의 섬으로 초대할 수 있으므로, 사회적으로 떨어져 버린 거리를 가상 세계에서나마 이론적으로는 좁힐 수도 있다. 모르는 이를 초대할 수도 새로운 만남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지금 어려서 생각했던 미래를 살고 있는지, 2020년의 현실에서 되돌아보는 기회를 주는 제품. 2,30대의 레트로가 되기에 충분한 감성을 준 것이고, 그렇다면 집을 나서 구매 대기줄을 설 수밖에 없는 일이다.

② SNS 친화적인 비현실의 세계


코로나라는 상황과 사적인 추억은 히트작의 불꽃을 점화시킬 수 있지만, 사상 최고 히트작으로 쏘아 올리기 위해서는 또 다른 힘이 필요했다. 그건 아프지 않은 부러움이었다. 나의 개성을 살린 귀여운 캐릭터가 해 떨어지는 바다를 바라보는 잔잔한 일상의 한 컷. 누구나 미소 짓게 하는 그럴듯한 SNS 짤방이 된다. 연예인들도 자신이 꾸민 캐릭터 인증샷을 올려 연예 기사화되니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었다.


소소한 일상은 콘텐츠가 된다. 낚시를 하고 추수를 하고 심부름을 하며 나만의 페이스 대로 살아가지만, 그렇게 돈을 벌고 물건을 만들고 집을 꾸민 뒤 스크린샷을 SNS에 남겨 "이런 거 만들었어요, 봐주세요!" 할 수가 있다. SNS적 욕망과 잘 맞물린다. 그런데 이 자랑은 모두 허구, 날카로운 시샘과는 다른 소박한 궁금함이 섞인 부러움을 불러낸다.


어린 시절 평온한 소꿉장난과 역할놀이의 추억과도 같은 기분이다. 애초에 아이들이 이런 놀이를 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과 허용 범위를 뛰어넘는 상상을 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차근차근 잡화를 모으고 집 꾸미기를 하는 일이 비현실적으로마저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동물의 숲은 아직 괜찮다는 듯 여기서 하면 된다는 듯 다독인다. 분명 그곳에도 화폐는 있지만, 그 화폐가 또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은 세계다. 무일푼으로 찾아든 고장에서 빚을 지며 게임은 시작되지만, 오히려 돈보다 중요한 것은 뭔가를 하나하나 만들어 가고 새로운 일을 배우고 그리고 지역에 기여하고 그 과정에서 친구를 사귀고 또 없는 살림에서도 기부를 하고 그러면서도 내 한 몸 뉘일 곳 있고, 또다시 그렇게 조금씩 가꾸어갈 수 있는 그런 삶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좀처럼 21세기의 대도시는 허락하지 않았던 삶을 동물의 숲의 소꿉놀이는 대신해 준다. 그리고 이제 누구나 이 비현실을 자랑할 수 있다. 이 이상한 부러움은 인스타그램에도 트위터에도 어울렸다.

③ 귀여움의 탈을 썼지만, 현실에도 작용하는 인터페이스

그런데 동물의 숲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비현실적 유토피아로 끝나지 않았다. SNS라는 소통의 창에 효과적으로 증명된 게임의 용도는 상상력만큼이나 넓었다.


마음대로 게임 속 의상은 물론, 바닥 등에 내 디자인을 입힐 수 있는 '마이 디자인' 기능이 결정적이었다. 주어진 그래픽뿐만 아니라 얼마든지 창의적으로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니 여러 일이 벌어진다. 코로나로 결혼식이 여의치 않아지자 결혼식을 이곳에서 올리기도 했다. 알리페이나 위쳇의 송금용 QR 코드를 가게 입구 바닥에 깔고 과일 장사를 하는 이도 등장했다. 정말로 입금하면 택배로 과일을 보내주니 O2O가 따로 없다.


특히 시리즈로서는 처음으로 중국판이 텐센트를 통해 유통되자 스케일이 다른 일이 벌어졌다. 우한폐렴(武漢肺炎)이라고 디자인해 붙이고, 시진핑 주석의 얼굴을 고인 초상처럼 걸어 놓는 등 명백히 정치적 메시지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집회를 할 수 없게 된 홍콩에서도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집필 시점 중국 시장에서 동물의 숲은 판매금지라도 된 것처럼 등록상품에서 사라지기 시작하고 있다.


귀여운 캐릭터는 당의를 코팅한 듯 신랄한 메시지도 부드럽게 만든다. 하지만 이 격차가 메시지를 오랫동안 뇌리에 남긴다. 동물의 숲 자체가 페이스북 같이 정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된 것 같이 보였다. 다만 그 안의 동물들도 또 플레이어들도 모두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웃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