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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허블 우주 망원경 30주년. 486은 아직도 현역.

by김국현

가끔 혼자 너무 궁상맞게 구형 컴퓨터를 쓰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날 때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12톤짜리 486 조립 컴퓨터가 저 하늘 어디선가 30년째 빛나며 활약중이다.


미 항공우주국 NASA와 유럽 우주기관 ESA가 1990년 4월 24일에 발사한 우주 망원경 허블. 올해로 30주년이 되었다. 깊은 우주를 쳐다보는 것이 일인 이 일종의 인공위성. 그동안 저 어두운 우주의 저편에 아름다운 은하가 수도 없이 존재함을 알려주었고, 블랙홀이 정말로 있다는 것도 증명해 줬다. 과학자들 노트 위의 가설을 육안으로 데려오는 중요한 역할은 486으로 충분했다.


원래는 486도 아니었다. 초기 버전은 DF-224라는 NASA 특제 전용 컴퓨터. 80년대부터 우주 탐사에 단골로 쓰였던 기종이었다. 한 시절을 풍미했지만 20세기와 함께 저물어간 미국 제조업의 상징 락웰(Rockwell) 사 제품이었다. 클럭 속도는 1.25MHz. 요즈음 인텔 프로세서는 5GHz를 넘나드니, 벌써 수천 배 차이다. 지금 내 PC의 GHz는 무엇을 위해 쓰이고 있나 숙연해진다.


수명 10년이면 선방이라고 생각했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하고 있는 허블 우주 망원경. 처음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컴퓨터는 관심사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망원경 내 반사경이 잘못 깎여서 뿌옇고 번지는 화면을 만들었던 것. 지구에서 보는 화질보다 못한 화질이 전송됐다.


망원경의 기본기가 흔들리는 실수를 했지만 이미 우주에 납품된 상태. 설치 장소가 장소다 보니 세상 그 어느 초기 불량보다도 곤란한 일이다. 환불도 새제품 교환도 불가하다.


수리를 하긴 해야 하는데, 부품의 일대일 교체도 힘들다. 그 거울의 지름은 2.4m. 이 거울을 새로 깎아서 끼워 넣기에는 설치 장소는 550km 위의 상공. 배달도 수리도 쉽지 않은 곳이다. 말이 수리지 유인 우주 왕복선을 다시 띄워야 하는 대과업. 결국, 고객 재방문은 3년 뒤에 이뤄졌다.


수리 결과는 성공적이었는데, 렌즈의 교환 대신 마치 안경 렌즈를 조율해 시력을 조절하듯 잘못된 반사경의 미세한 구면수차(spherical aberration)를 카메라 교체로 극복하기로 한 것. 이 방문에서는 컴퓨터도 함께 업그레이드되어 인텔 386이 보조 프로세서로 더해졌다. 이러한 수리 미션은 그 후 배터리도 바꾸고 컴퓨터도 업그레이드하는 등 2009년까지 총 다섯 번 유인 우주 왕복선이 떠서 시행되었다.


특히 1999년에는 486으로 전체 시스템이 교체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다. 펜티엄은 1993년부터 시중에 나와 있었지만,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하기에 쿨링팬 없이도 잘 도는 386/486이 채택되었을 것 같다. 따라서 펜티엄부터 등장해 영상 처리에 많이 쓰이는 MMX, SSE 등 SIMD 명령도 쓰이지 않았다.


2008년에는 컴퓨터 고장도 발생했다. 다행히 이중화를 6중으로 해놨다. 하지만 한 번도 켜본 적 없는 백업 컴퓨터에 전원이 공급될 때 모두들 두근두근. 활약할 날을 기다리며 암흑의 우주에서 기다리던 전자 부품들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주어졌다. 전원은 들어오고 시스템은 성공적으로 살아났다.


2009년에 있었던 마지막 수리 미션은 특히 수백 개의 나사를 푸르고 조이며 각종 카메라와 배터리를 교체하는 대수술. 결과는 90배의 성능 향상으로 이어져, 초기 버전과 현재 버전의 영상차이는 꽤 두드러진다.


저 멀고도 깊은 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져 내려온 각기 다른 파장의 여러 가지 빛들. 허블이 이들을 응시하며 만들어낸 노출이 다른 여러 장의 흑백 사진들은 색색으로 합쳐져 한 장의 아름다운 사진이 만들어진다. 허블이 지구로 전송하는 사진들은 모두 흑백이지만 이처럼 각각의 파장을 나타낸다. 만약 그곳에 찾아가서 육안으로 정말 보면 이럴 것이라고 여겨지는 색으로 각각의 파장 정보를 담은 흑백사진은 각각 색이 입혀진다. 이들을 한 장으로 합하면 영롱하고 아름다운 허블의 우주 사진들이 완성된다.


우리도 기념 삼아 이제 데스크탑 배경화면으로 쓸만한 명작을 살펴보자. 어느새 마음만은 가디언 오브 갤럭시가 된다. 물론 뭐니뭐니해도 가장 마음을 울리는 것은 역시 ‘창조의 기둥’일 것이다. 같은 장소를 20년의 간격을 두고 업그레이드된 카메라로 촬영된 이 사진, 20년의 세월도 저 공간의 크기 앞에서는 순간일 뿐이라는 듯 거의 변하지 않았다.

링크

멍하니 쳐다보고 있으면 지구에서 주어진 우리의 삶이란 무엇인가 상념에 빠지게 된다.


내년 3월 대망의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드디어 발사 예정이다. 10년 가까이 연기되고 그 사이 예산은 몇 배나 늘어났던 대작. 허블은 이 최신형으로 바로 대체되는 것은 아니고 서로 다른 방식의 보완재로서 당분간은 함께 우주를 바라볼 것이라 한다. 이 최신형 제임스 웹 망원경은 수리도 불가능하다. 지구로부터의 거리 약 150만km(달보다 4배 먼 거리)에 배송될 예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