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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포스트 코로나 재택근무 시대의 자동차 라이프

by김국현

사태는 아무리 봐도 진정되고 있지 않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업종은 적극적으로 하면 좋겠지만, 세상에는 가능한 업종이 그리 많지 않나 보다.


그런데 실은 업무상으로는 리모트 업무가 가능해도 할 장소가 없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간 이래저래 집에서는 사실상 “잠만 자는” 삶을 살아왔었다면 갑작스러운 재택근무 요구라니 고역이 따로 없다. 특히 도심의 많은 가옥 구조는 채광이나 환기 등이 탐탁스럽지 않기에 종일 갇혀 있다가는 우울감만 고양된다.


어찌 집은 번듯하더라도 이미 가정 내에 자기 자리가 없을 수도 있다. 아이들마저 온라인 수업으로 집에 있는 날이 많아지니 집에서 자리 차지하고 있기 눈치가 보인다.


이처럼 재택근무를 하라고 해도 갈 데가 없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자기 공간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차는 또 하나의 방

일본에서는 최근 '주차장 파파(아빠)’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재택근무는 해야 하는데 정작 일할 환경이 갖춰지지 않아 차 안에서 업무를 보는 이들이 주차장에서 대거 목격되기에 생긴 말이다. 자기 방은 없어도 차라도 있으니 운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코로나 사태 이후 차를 사고 싶다는 이들이 늘었다고 한다. 우선 대중교통이 두려워서라는 면도 있지만, 이처럼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순수히 업무 공간 확보를 위해 렌터카나 셰어링카를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기회는 뜻밖의 상황에서 나오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허츠가 파산하니 마니 하는 상황인데, 한국 렌터카 업체들의 실적은 오히려 반등 중이다. 미국에서는 공항에서 빌려 타는 것이 렌터카의 기본이었는데, 국내는 장기 대여 위주라서라 한다. 코로나는 이동을 막아 여행업을 좌절하게 했지만, 격리와 연금(軟禁) 생활 속에서 나만의 공간을 갈망하게 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는 이 트렌드를 놓치기 싫은 이들이 많다. 닛산은 #OneMoreRoom 이라는 해시태그를 밀면서 차 안에서 원격 근무를 하기 위한 몇 가지 팁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 골판지로 운전석에서 쓸 수 있는 테이블을 직접 따라 만들어봤는데 나쁘지 않았다. 일하고 싶은 곳에 차를 몰고 가서 일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도 얼핏 들었다. 하지만 그런 목적지가 막상 떠오르지는 않았다. 왜 ‘주차장 파파’가 증식 중인지 알 것만 같았다.

차박 난민 혹은 밴라이프

일본에서는 요즈음 ‘차박’이 차박 난민으로 업그레이드 중이라 한다. 무연고 사회의 워킹 푸어들이 몸 누일 집도 없이 차에서 사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현재 일본 수도권 도로 휴게소의 36%에서 차박 난민들을 목격할 수 있다 하니 그 증식 속도가 꽤 빠르다.


사실 출근할 필요가 없다면 혹은 출근할 데가 없다면 길 위에서의 삶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주거비가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이 넘어가는 저소득층이라면 특히 더 하다. 아니 실리콘 밸리의 사례를 보면 중요한 것은 소득보다 부동산 가격이다. 구글의 사령부 주위에는 캠핑카들이 즐비하다. 그 동네 월세 4천 달러를 내기 힘든 구글 근무자들도 그중에는 섞여 있다. 정규직 엔지니어와 비정규직과의 임금 차는 어마어마한 데다, 그 동네에서는 동네 풍경을 해칠까 우려하는 지역 사회의 분위기 덕에 한국식 연립주택은 지을 생각도 못 하고 있다. 이래저래 힘든 일이다.


우리가 차박이라고 하면 낭만적인 하룻밤을 떠올리듯이 원래 차에서 자는 일은 비일상이었다. 그런데 이 비일상이 아예 일상이 될 수는 없을까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차에서 자고 사는 일을 일종의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은 일종의 사회적 운동이 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VanLife 해시태그만을 넣어봐도 수백만 건의 사례를 엿볼 수 있다.


낡은 폴크스바겐 밴에 서프보드를 싣고 절경을 찾아다니며 아날로그적 정서의 ‘갬성’을 찾는 이 ‘밴라이프’. 사진은 예쁘게 나오지만, 어딘가 서글프기도 하다.


우리가 당연하다 생각했던 삶.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일터와 가족과 집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 이 기대가 깨지는 날, 그런 미래는 오지 않는다고, 그렇기에 지금이 소중하다고, 현재를 흘려보내지 말라는 노마드적이고, 보헤미안적인 가치관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한 결과였다. 특히 미대륙의 자동차 문화는 광활한 땅 그 어디든 갈 수 있다며 지평선 너머가 가져다줄 가능성을 속삭였다. 그리고 워크와 바케이션을 혼합한 ‘워케이션(Workation, 영국에서는 홀리데이와 혼합해 workoliday라고도 쓴다)’이라는 영어 신조어와 맞물려 대안적 삶으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이 생활이 영속적으로 가능한 이들은 이 트렌드를 선점해 스스로 셀럽이 될 수 있었던 일부만의 일이었을 뿐이었다. 현실의 밴라이프란 꼭 생각 같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결국은 일거리를 찾아 일터 옆 공터와 도로에 밴을 불법 장기 주차하고 동네 경찰과 씨름할 수밖에 없는 현실.


주차장 파파도, 차박 난민도,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밴라이프도 사회와 가정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에게 자동차라는 쪽걸상이 마지막 쉼터가 되어 주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