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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코로나 시대, 업무의 미래는 원격 앱에

by김국현

어떤 사건이 사회 문화에 초래하는 변화는 여러 수치로 드러난다. ‘원격 데스크톱’에 대한 막무가내(brute-force) 해킹 시도가 두 배가 넘었다고 한다. 코로나 사태는 디지털 업무 문화와 사용자 인터페이스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아무래도 집이나 밖에서 일하기 위해 회사 컴퓨터에 원격 접속하는 일이 늘고 있다. 일단 접속해서 비밀번호를 맞추기 위해 하나하나 대입해 보는 ‘브루트 포스’ 공격을 감행하다니 아무리 자동으로 하고 있다지만 그 무모하고 효율 낮은 일도 하고 싶게 할 정도로 남의 회사 컴퓨터는 들어가 보고 싶은 곳이다.


이처럼 다른 기계에 접속해서 그 화면 그대로를 데스크톱 채 통째로 조작하는 일을 보통 원격 데스크톱(Remote Desktop)이라고 말하는데, 요즈음에는 네트워크가 좋아져서 총천연색의 레티나 4K화질도 위화감도 버벅거림도 없이 재연 가능하다. 이 원격 데스크톱으로 보통은 윈도 가상 머신에 접속하곤 하는데, 이 가상 머신은 자기 기계에서 가상화로 돌릴 수도 있지만, 클라우드에서 돌고 있는 것을 임대해서 쓰는 사용례가 늘고 있다.


다른 기계에서 도는 앱을 가져다 쓰는 일은 쓸모가 많다. 예컨대 지난 WWDC(애플 개발자 콘퍼런스) 화제 중 맥이 인텔에서 ARM으로 정말 이행한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ARM으로 갑자기 바뀌면 인텔에 맞춰 짜인 앱들을 어떻게 쓸지 걱정이 많다. 하지만 에뮬레이션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도 여기저기 다른 인텔 기계에 접속하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내 기계가 인텔은 아니라도 네트워크에는 인텔이 많다. 5G·클라우드 세상에서 네트워크는 또 다른 기판이다.

RDP의 꽃, 리모트앱(RemoteApp)

원격 데스크톱 프로그램과 프로토콜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리모트 데스크톱(RDP, Remote Desktop Protocol)가 가장 널리 쓰이는데 윈도나 맥용 앱은 물론 안드로이드나 iOS에서도 완성도가 훌륭하다. 어떤 디바이스든지 윈도 기계처럼 활용하게 해 준다.


문턱이 높아 잘 알려지지 않은 RDP의 특징 중 ‘리모트앱(RemoteApp)’이라는 개념이 있다. 원격으로 데스크톱 전체를 접속하는 것이 아니라, 딱 내가 쓰고 싶은 앱만 불러내서 그 앱을 창 하나에서 사용하는 기술이다. 맥에서 윈도용 프로그램을 이런 식으로 띄워서 사용할 수 있다.

윈도의 아래아한글 앱을 마치 맥 앱처럼 띄우고 쓸 수 있다.

설정 방법은 다소 복잡한 편이지만, 그만큼의 보람은 있다. 원래라면 서버에서 훨씬 더 복잡한 설정을 했어야만 하는데, 지금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덕에 일반 윈도에서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프로그램은 꼭 지금 만지고 있는 기계에서 돌아가야 한다는 상식을 버려야 하는 시대가 와버렸다.

리눅스도 RDP로

상식 이야기를 하다 보니 리눅스는 문자 기반 터미널로 접속하는 것이 당연한 (X 터미널 등은 있었어도) 상식이었다. 어떤 환경에서도 문자는 표시할 수 있으니까 기종을 넘나드는 접속에는 역시 문자만큼 유리한 것도 없었다. 문자가 기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이크로소프트 RDP가 xRDP라는 오픈소스 구현체로 만들어졌고,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 자신도 리눅스를 윈도 내에서 “일급” 게스트 OS가 되도록 그 구현자들과 협업하고 있는 시대다. xRDP를 잘 셋팅해 둔 이미지를 윈도10과 함께 배포하고 있을 정도다.


터미널에서 VIM 쓰는 것이 당연한 시절에서 이제는 맥, 윈도, 리눅스를 오가며 VSCode를 어디에서나 쓰고 각각에 그대로 컷앤페이스트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맥의 ‘화면 공유’는 순정 기능으로 충분

이로써 모든 기계를 RDP로 접속해 활용할 수 있는 대통합 시대가 완성되었다면 좋겠지만, 아직 맥이 남아 있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맥에도 xRDP를 설치해서 RDP로 접속할 수는 있다지만, 맥에서 맥으로 동종 접속하는 것이라면 순정 기능이 무난하다.


맥 순정 ‘화면 공유’ 기능은 서버와 클라이언트 모두에 복잡한 설정 없이 기능을 켜기만 하면 파인더만으로도 비교적 손쉽게 접속할 수 있다. 맥이 슬립 모드에 있을 때는 알아서 깨워주기까지 한다. 하지만 RDP와는 달리 말 그대로 화면을 공유하는 것이므로, 원격지에서 사무실에 접속해서 작업한다면 사무실 맥을 유령이 조종이라도 하듯 화면이 켜지며 커서가 움직이는 모습이 지나가던 이에게는 보이게 된다.

RDP 말고는 또 더 없을까?

이조차 복잡하면 친숙한 브라우저 크롬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크롬 리모트 데스크톱이 있다. 크롬만 있으면 되므로 보편적이고 편하긴 하지만 RDP에 비해 성능은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다. 조직이 구글의 서비스를 쓰는 것에 거북함을 느낀다면 아파치 과카몰레라는 오픈소스 시스템을 설치하면 아예 어떠한 브라우저로도 접근가능하다. HTML5의 힘으로 클라이언트 설치조차 필요 없게 해 준다.


인터넷의 등장 이래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네트워크 컴퓨터(NC)의 꿈은 이번에도 클라우드 데스크탑의 꿈으로 반복되려 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미(dummy)’하고 ‘씬(thin)’한 터미널뿐, 모든 두뇌 능력은 구름 너머 거대한 시스템에 흡수되는 되풀이되는 미래. 최근 여기저기서 시도되고 있는 클라우드 게이밍이라는 트렌드 영역도 이와 관련 있다.


최근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신임 위원장이 '전 국민 버추얼(Virtual) 데스크톱' 프로젝트를 언급한 적이 있다. 전 국민에게 가상 머신을 한 대씩 나눠주자는 셈인 듯한데, 코로나 시대의 재난지원금이나 기본소득 논의가 그렇듯 뭐든 직접 국민에게 나눠주는 것이 어쭙잖은 좀비 기업에 국고가 새는 것보다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 안에서 웹서버도 돌리고 코딩도 해보고, 안 쓰면 가족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친구에게 빼앗기기도 하고, 그렇게 방치해뒀다가 십수 년 만에 로그온하고 지난 추억에 눈물짓기도 하고 그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