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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차세대 외장 단자 썬더볼트 4. 인텔과 애플로부터 홀로서기

by김국현

차세대 외장형 인터페이스 썬더볼트 4가 발표되었다.


애플이 인텔 CPU를 떠나 자사의 애플 실리콘을 채택한다는 결별 발표 이래, 인텔의 주목할만한 첫 발표다. 이별 후 인텔의 한 마디가 썬더볼트라니.


썬더볼트란 애플과 인텔 사이의 오랜 친분이 빚어낸 콜래보의 결정체였다. 썬더볼트를 작명해 인텔에 선물한 것도 애플이었고, 썬더볼트를 가장 잘 구현하고 또 가장 많이 사용한 이도 애플이었다. 초창기 썬더볼트는 애플 전용 외부 포트로 여겨질 정도였다.


5년 전인 2015년 썬더볼트 3가 발표되었으니 시기상으로는 4를 발표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아직 세상은 3도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데 다음 버전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4의 최대 전송속도는 40Gbps로 3과 같기에 별 변화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대역폭의 최대치란 무의미하다는 것을 썬더볼트 3은 알려줬다. 규격의 폭이 아무리 넓고 여유롭더라도, 만들어져 팔리는 제품은 그 최대치가 아닌 최소치에 맞춘다. 절대로 꼭 구현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은 사양은 제조되지 않는다는 점을 5년이 지나고야 깨달았다. 심지어 애플조차도 맥북의 좌우측 썬더볼트 속도가 달랐고, 많은 썬더볼트 케이블들은 겨우 50cm만 넘어가도 속도가 안 나왔다. 썬더볼트는 USB와는 달리 검증된 인증 제품들만 유통되기로 되어있었는데, 결국 혼돈을 줄이지는 못했다. 오히려 늘렸는지도 모른다.

썬더볼트 4의 의미

USB-C는 생김새의 규격이다. USB3이니 4니 USB 뒤에 숫자가 나오는 것은 속도 등 성능·기능 규격, 썬더볼트는 USB의 대안으로 여겨지던 성능·기능 규격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면 생김새는 다 똑같으니 사용자는 아무래도 헷갈린다.


그렇다면 최상위 규격인 썬더볼트만 사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대역폭을 고려하면 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안되고, 안되어도 누구 책임도 아닌 어중간한 제품이 썬더볼트 3 인증제품으로 팔렸다. 여기에 액티브니 패시브니 개중에는 10만 원에 가까운 케이블도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썬더볼트는 중국산 USB-C 제품의 대혼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신세가 될 처지였다.


버전 4가 등장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원래부터 진작에 이랬어야 할 모습을, 애초에 그랬어야 할 기능을 썬더볼트 4는 이제라도 되짚는다.


속도가 40Gbps로 그대로라고 하더라도, 이 대역폭을 잘 살려서 4K 디스플레이는 애초 기대처럼 동시에 두 대를 쓰는 일이 반드시 가능하게 하고, 외장 그래픽 등을 위한 PCI Express(PCIe) 전송속도도 32Gbps는 확보하라고 강제했다. 이는 현재 16Gbps에서 2배에 해당한다. 이는 신형 PC의 USB3.2가 10Gbps임을 고려할 때 상당한 속도다. 초당 3천 메가바이트를 전송할 수 있는 외장 SSD 하드를 쓸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우리가 사용 중인 어지간한 내장 스토리지보다 빠른 셈이니, 외장 하드에서 바로 유튜브 편집 및 모델링 등 대용량 파일 작업도 쾌적하게 할 수 있어진다. 케이블도 2m까지는 속도를 보장했다. 이 정도면 내장기관을 자신 있게 밖으로 꺼내놓을 수 있다.


이처럼 4는 3에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뤄내기를 바랐던 그 모습을 하나하나 다시 강조하며 강제한다. 일종의 패치이자 서비스팩인 셈이다. 사양 상 될 것 같은데 내 눈앞의 이 제품이 정말 되는지 아닌지 해봐야 아는 황당한 USB-C적 상황은 소비자를 좌절하게 한다.


소비자를 절망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각종 카드를 꽂는 규격인 PCI는 원래 케이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기에 직접 메모리에 접근하는 기능(Direct Memory Access, DMA)이 자연스레 부여되어 있었다. 하지만 PCIe 이후 부품을 외장 기기로 빼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이 기능을 활용한 해킹이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결국, 썬더스파이라는 해킹 기법까지 등장해 버리고 말았다.


썬더볼트 3는 완전체를 꿈꿨지만, 그 구현체들이 완전하지 않았기에, 어떻게든 추슬러야만 했다. 버전 4에서 썬더볼트는 확실한 미니멈을 꼼꼼하게 제시한다. 제품을 완성하는 것은 그 기준의 최저치에 있음을 깨달아서다.


USB-C 생김새의 제품들은 수도 없이 등장 시장을 혼란하게 했지만, 포트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는 최저 기준을 마련했다는 점에 썬더볼트 4의 의미가 있다.


예컨대 지금까지 당연히 있었어야 할 것 같은데 보이지 않던 제품이 있다. 바로 USB-C 단자 하나를 다시 여러 USB-C로 쪼개주는 허브다. 비싼 도킹 독들도 허브 기능은 있었지만, 하류(下流) 포트는 늘 구식 USB-A 단자였다. 못 만들 일은 없지만 고려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실현되지 않은 제품의 예였다. 썬더볼트 4는 이렇게 애매한 부분을 정리해 준다. 이제 이런 허브 제품들처럼 이미 있어야 할 것 같은 많은 제품도 본격적으로 출시될 터다.

썬더볼트가 인텔과 애플의 그늘을 떠날 때

썬더볼트는 USB-C 단자를 채택하면서 맥을 넘어 많은 인텔 제품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AMD 제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애즈락 등 일부 선도적 벤더만이 인증 제품을 내놓을 뿐이었다). 여전히 썬더볼트는 인텔과 애플 사이 밀애의 산물로 여겨졌다.


인텔이 썬더볼트를 무료 라이센스로 공개하면서 USB4는 썬더볼트를 품게 된다. 하지만, USB4는 아직 시장에 나와 있지 않고, 썬더볼트 호환성 수준은 옵션으로 남기에 혼란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완전체의 의미로서 썬더볼트라는 브랜드는 지속될 것 같다.


인텔과 결별한 애플은 이 USB-C의 완전체 썬더볼트를 애플 실리콘에서도 구현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 궁금증이 더해지자 애플은 대표적인 썬더볼트 모범생답게 곧바로 성명을 내며, 지원할 것이라고 시장을 안심시켰다.


썬더볼트 4는 차세대 CPU 아키텍처 ‘타이거 레이크'에 통합될 예정인데, 인텔은 여느 때와는 달리 지원 컨트롤러 인텔 8000시리즈 신제품을 두드러지게 강조했다. 인텔이 아니라도 ARM이라도 AMD라도 다 함께 썬더볼트로 가자는 듯 보였다. 애플이 자체적으로 구현할지 인텔의 컨트롤러를 쓸지는 알 수 없지만, 인텔이 아니라도 썬더볼트를 잘 쓸 수 있다는 본을 보여줄 터. 이는 썬더볼트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많은 업체에 용기가 될 것이다.


2011년생 썬더볼트, 아직 어리지만 애플과 인텔이 키워주던 추억은 잊고, 이제 애플에도 인텔에도 의존하지 않는 홀로서기를 자신의 성장을 위해 해야 할 때가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