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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크 ]

아아, 아저씨·아줌마의 청춘에 건배. 자바 25주년.

by김국현

올해는 여러모로 프로그래밍 언어 자바에게 중요한 한 해다. 우선 지난 15일 자바 15가 발표되었다. 많이들 쓰는 것은 자바 8(최근 조사에 의하면 75%)인데 벌써 버전이 15인가? 예전에는 2~3년에 한 번씩 버전이 올라갔는데, 요즈음에는 6개월에 한 번씩 버전이 올라가니 실은 별일 아니다. 아무래도 부지런해 보이고, 발전이 있어 보이게 하려는 전술인데 나름 검증된 효과가 있어서인지 자바가 채택한 지도 꽤 되었다. 요즈음 소프트웨어의 버전은 쑥쑥 인플레가 심하다.


그보다는 올해가 자바 25주년이었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1995년 가을의 자바 열풍은 함께 찾아온 닷컴 붐과 함께 한국에서도 참으로 뜨거웠던 추억이다. PC 시대의 중흥기이기도 했고, 초고속인터넷에 의한 IT 강국론이 무르익던 시절이기도 했다. 배불뚝이 CRT 모니터만 있던 시절, 자바는 대세였다.


특히 처음에는 웹페이지 안에 박히는 액티브X 풍 활용 용도가 주된 것이었는데, 그 덕에 인터넷의 기본기를 언어 구조에 녹여낼 수 있었다. 바야흐로 자바는 인터넷의 언어라 할 만했다. 인터넷이 스며 들어가던 모든 기계로, 서버든 PC든 PDA든 가리지 않고 쳐들어갔으니 온 세상을 궁극의 자바 가상 머신(JVM)이 점령할 기세였다.


그런데 인터넷이 가져온 모든 변화의 가능성을 도맡으려 하니 자바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주전산기의 터미널을 PC로 옮기는 일에 자바는 제격이었다. 하지만 1세대 IT, 즉 코볼로 한 페이지면 짰을 업무를 PC 시대라며 인터넷 시대라며 십수 페이지 분량의 자바 코드로 변환하곤 하는 일은 힘겨웠다.


그렇지만 그 덕에 수요는 창출되었고, 많은 개발자들이 업계로 들어왔다. 2세대 IT의 등장이었다. 차세대 프로젝트라며 대자본을 투하해 벌이곤 하는 대작업이었지만 그렇게 “사람들을 갈아 넣어” 진행한 프로젝트가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일은 많지 않았다. 문자 터미널 화면이 웹 페이지로 바뀌었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다. 이 정도의 변경으로는 사회에 초과 잉여가 발생할 리 없었다. 사회와 시장이 지쳐가자 소프트웨어 개발은 3D 업종이 되었다. 인터넷은 많은 것을 바꿀 것 같았지만, 많은 것이 그대로이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믿어지지 않지만 2011년 뉴스 기사를 찾아보면 서울대 컴퓨터 공학과는 5년이나 카이스트 전산학과는 7년간이나 (학부 2학년에 전공 선택시) 정원 미달 상태였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는 기피 직업이었다.


스마트폰 대폭발 후,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를 주머니에 넣어 다니게 된 후, 소프트웨어의 힘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면을 뒤틀어 버릴 수 있음을 깨닫게 될 때까지의 한참 동안, 2세대의 IT는 힘겨운 고난의 행진을 해왔던 셈이다. 2세대까지는 대개의 가치 창출이 기업에서 발생하던 B2B의 시대였다. IBM이나 오라클 등이 거물이던 시대였다. 그 정점은 2009년 오라클이 인터넷 시대의 기린아였던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인수하면서 자바를 흡수하던 때였다. 약 8조 원 정도를 들여서 사들인 셈인데, 오라클은 바로 다음 해 구글에 9조 원짜리 소송을 걸어버린다.


안드로이드는 영리하게도 자신은 (오라클의) JVM을 정작 쓰지는 않으면서도 안드로이드만의 런타임 위에서 자바로 개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는 지쳐버린 2세대 개발자들을 3세대라는 희망찬 시대로 대거 이끄는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도 안드로이드 시장이 더 큰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재야의 B2B 개발자들이 치킨집 창업 대신 안드로이드 앱 개발로 넘어왔기 때문이라 짐작할 수도 있다.


자바를 쓰지 않으면서도 자바를 쓰는 이 기발한 구글의 전략에 오라클이 급히 소외감을 느꼈을 수도 있지만, 오라클은 애초에 이 싸움을 겨냥하고 썬을 인수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 소송은 2세대와 3세대 간의 세대 전쟁의 상징과도 같은 일이 되었다. 자바가 안타깝게도 오라클이나 IBM처럼 나이 지긋한 회사들이나 미는 쿨하지 못한 언어가 되어 버리던 차, 젊은 구글이 등장해서 자바 개발자를 스마트 시대로 인도해 갔다.


그런데 정작 그 기술적 구조는 오라클이 인수한 그것과는 달랐다. 언어와 API만 쓰고 알맹이는 달랐다. 알맹이를 목돈 주고 구입한 오라클의 마음, 자바는 이용당했다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간다.


과연 API를 가져다 쓰는 것이 저작권 침해인지, 그리고 그렇게 쓰는 것이 공정 이용에 해당하는지 이 두 가지 논점을 둘러싸고 엎치락뒤치락 10년의 싸움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마지막 판결의 흐름은 오라클에게 유리했었는데, 구글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대법원에 불복상고한 상태다. 코로나 때문에 밀리고 밀려 구두 변론일은 추석이 끝난 10월 7일 이후로 예정되어 있다.


반전에 반전의 드라마를 거듭한 이 논쟁이 미 연방 대법원에서 어떻게 결론 날지 모두 궁금해하고 있을 법하지만, 별로 그렇지도 않다.


그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자바의 이미지가 급히 낡아 가고 있기에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어서다. 물론 여전히 자바 개발자의 모수는 크다. 파이썬 및 자바스크립트와 함께 여전히 널리 쓰이는 3대 언어에 들어간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중국, 한국, 인도, 독일, 스페인, 브라질에서 특히 많이 쓰인다고 하는데, B2B와 SI가 발달한 나라들이다. 기업과 정부는 여전히 잘해야 2세대의 상태, 구미 국가들은 오프쇼어로 아시아의 자바 개발자에 의존하고 있을 터다.


그렇지만 아직은 괜찮다고 해도 자바의 하락세는 걱정스럽다. 3세대 IT의 최신 트렌드는, 자바스크립트의 범용성, 파이썬의 머신러닝, 러스트와 고(Go)의 시스템 프로그래밍, 코트린과 스위프트의 네이티브 앱 개발로 정리되면서 자바를 소외시키고 있다. 자바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모바일과 클라우드 세상을 모두 합세하여 만들어 가고 있었다.


아직 25살밖에 되지 않은 자바의 최대 과제는 이제 이미 한물간 아저씨의 느낌을 어떻게 떨어버릴지가 되어버린 셈이다. 자바와 함께 IT를 시작한 많은 이들에게 자바는 흘러가는 청춘의 한 챕터가 되고 있다. 그렇지만 사반세기나 이어진 그 긴 이야기는 많은 추억도 가져다줬을 터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우리는 모두 또 그렇게 하나의 시대를 건너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