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D 라이젠(Ryzen) 도전자, 다시 링에 오르다

[테크]by 김국현

금주는 MWC로 내내 시끄러울 듯하지만, 개인적으로 신경 쓰이는 일이 하나 따로 있다. 바로 AMD의 새로운 CPU가 3월 초에 출시될 것이라는 소식. 몰락하던 AMD의 유일한 희망이라던 ‘젠(ZEN) 아키텍처’가 드디어 ‘라이젠(Ryzen)’이란 이름으로 런칭한다. 

 

컴퓨터 CPU라 하면 인텔이 거의 동의어가 되어버렸을 정도로, 지난 10년은 인텔의 독무대였다. 하스웰이니 스카이레이크니 인텔칩의 코드명은 줄줄 외워왔어도, 그 경쟁제품들로 무엇이 있는지에는 모두 별 관심이 없었다. 마치 윈도우가 유일한 관심이던 시절, 사람들이 시카고니 롱혼이니 코드명을 외우곤 했던 것처럼.

 

그런데 왜 경쟁이라 할만한 경쟁이 벌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IT는 자본집약적이고 기술집약적인 곳이어서 한 번 벌어진 격차를 좁히기가 쉽지 않다. 인텔의 클론 업체로 출발한 AMD의 태생 자체를 생각해 보면 10년 전 치열하게 엎치락뒤치락 경쟁하던 때가 오히려 예외적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한 때 K6, K7이라는 CPU 이름의 K는 인텔이라는 수퍼맨을 처치하기 위한 크립토나이트에서 유래되었을 정도.)

 

AMD의 CPU는 전반적으로 가격경쟁력은 뛰어났지만, 이런 포지셔닝은 PC가 다소 고가이고 유일무이한 디지털 기기였을 때나 통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PC는 여러 의미에서 소모품이 되었다. 성능은 대강 모두 그럭저럭 좋고, CPU라는 단일 부품에서의 얼마 가격차이보다는 오히려 일반인에게 익숙한 브랜드를 택해 안심할 수 있는 것의 가치가 더 큰 시대가 됐다. 마치 수퍼에서 타성에 젖은 채 눈과 귀에 익은 식품회사의 라면을 집어 들 듯이 익숙한 것의 힘은 강했다.

 

게다가 PC가 이미 스마트 기기 탓에 관심사에서 이선으로 밀려 버린 상황. PC의 주 구매층 및 여론 형성층은 벤치마크에 민감한 마니아층 위주가 되었는데, AMD는 지금껏 최고성능을 끌어내는 쪽으로는 인텔보다 취약했다. 시장도 위로 아래로 모두 인텔만을 노래하는 상황이었으니, 일반 사용자들은 굳이 AMD를 고를 이유가 없었던 시대가 찾아왔고, 이 시대는 길게 이어졌다. 상황은 점점 악화, 인텔의 점유율이 과하게 높아지다 보니, 세상이 인텔 위주로 돌아갔고, 소비자는 대세를 따랐다. 아무래도 안심하고 싶은 소비자의 행동으로는 타당한 일이었다. 그렇게 끝나가나 싶었다.

AMD 라이젠(Ryzen) 도전자,

하지만 AMD는 그저 그런 이류 기업은 아니었다. 인텔 복제품에서 시작했지만, 멋지게 완전 결별을 이뤄내 독자적인 색채의 설계를 할 줄 아는 기업이었다. x64라 불리는 64비트 구조를 만들어 인텔도 쓰게 만든 것도 AMD였고, 사실상 제대로 된 x86 듀얼 코어를 처음 설계한 것도 AMD였다.

 

게다가 그래픽 칩에서도 역시나 2위를 하고 있는 바람에 특허도 많다. 이 포트폴리오를 잘 살리면 얼마든지 연명할 수 있는 체력도 있다(작년 인텔과 특허 관련 계약을 체결했고, 이는 짭짤한 부수입이다). 이는 홈런 타자의 두 가지 조건이다. 인텔처럼 시간 맞춰 매년 착실히 진보해 나가기는 힘들어도, 어느 날 기술이 숙성되어 대박 장맛의 명품 뚜껑이 열릴 수는 있는 그런 회사다. 

 

올 3월은 이번에는 그럴지 모른다는 기대를 한몸에 받은 제품 라이젠(Ryzen)이 근 5년의 숙성을 끝내고 등장하는 시즌. 미리 공개된 벤치마크만 놓고 보면 모두 “이럴 수는 없다.”며 흥분 중이다. 인텔의 반값에 성능은 더 좋은 대작이 완성되었다는 것. 

 

다만 다소간의 걱정이 없지는 않다. AMD와 설레발을 합쳐 ‘암레발’이라는 은어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그간의 신제품은 실망의 연속이었다는 점. 과연 이번에도 설레발일까? 

 

어쨌거나 경쟁은 좋은 것이고, 독과점은 위험한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나 기업도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되면 아무래도 긴장이 풀어지고 힘이 풀리게 된다. 여러 의미에서 초심을 잃게 되니, 결코 좋은 일이라 볼 수 없다. x86이라 불리는 소위 PC의 세계는 지금 인텔 독주의 세상, 도전자에게 내 지갑을 흔쾌히 열고 싶다. 그렇게 경쟁이 펼쳐지고 재미있는 부품들이 많이 등장하면, 이와 더불어 PC조립이라는 어른들의 호사로운 취미도 되살아나지 않을까 더불어 기대할 수 있어서이기도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인텔은 라이젠의 경쟁 제품들에 대해 대대적인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경쟁은 좋은 것이다. 

2017.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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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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