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인생을 다시 짓다, 고성 으뜸바우집

[라이프]by 전원속의 내집

느닷없는 산불은 순식간에 노부부의 집을 집어삼켰다. 기억이 담긴 모든 것이 사라졌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새로 지은 집. 나지막한 단층집은 정갈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지난 기억을 보듬는다.

SECTION

SECTION ① 거실 ② 기도실 ③ 침실 ④ 화장실 ⑤ 간이주방 ⑥ 현관 ⑦ 안방 ⑧ 주방/식당 ⑨ 대청마당 ⑩ 지열보일러실

진입도로에서 바라본 주택의 전경.

2019년 산불로 재가 되어버린 집 현장.

2019년, 미국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집 설계 관련 질문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본인의 장인, 장모를 위한 집 이야기였다. 느닷없는 화재로 집이 홀라당 사라졌다는 것이다. 낡은 변압기에서 시작된 강원도 고성의 산불은 어르신들이 귀향해 남은 시간을 보내려 했던 집을 완전히 태워버렸다. 난데없는 날벼락이었다.


얼마 뒤,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지인을 만나 같이 고성으로 향했다. 현장은 초입부터 그야말로 처참했다. 인근의 바우지움 미술관 주변을 감싸고 있던 낙락장송들이 새까맣게 타버린 채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설수록 다가오는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여기저기 시커멓게 타버린 집, 녹아내린 지붕과 무너진 흔적들, 재만 남겨진 온갖 가재도구들. 갑작스러운 화재는 집과 물건을 태운 것뿐만 아니라 수많은 기억과 추억의 흔적들까지 송두리째 앗아갔다.


해 질 무렵 바라본 사랑채. 열린 툇마루와 창 너머로 따스한 빛이 스며 나온다.


뒷마당을 바라볼 수 있는 대청마당 공간.

70대 중반의 노부부는 몸만 빠져나오느라 집 안의 물건을 하나도 건사하지 못했다. 젊은 시절부터 하나씩 모아왔던 그림이나 도자기, 작은 공예품들과 여행길마다 수집했던 모든 것들이 전부 재가 되어 버렸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사진과 비디오 등 아이들과 함께 남겨두었던 흔적까지 모두 사라진 것이다. 수십 년을 서울에서 생활하다 은퇴 후 고향 근처인 고성에서 살기로 하고 주말마다 틈틈이 와서 다듬고 가꾼 집이라고 했다. 그러다 건강을 이유로 2018년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이곳에 온전히 자리 잡았다. 그런데 아뿔싸,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다니. 그 심정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고민하던 두 분은 그래도 공기 좋은 이곳과 오랫동안 가꿔온 조경에 대한 애착이 남아 집을 다시 짓기로 했다.

DIAGRAM


대청마당의 바람길. 안쪽에 사랑채로 들어가는 현관문이 있다.


사랑채의 툇마루에는 필요에 따라 여닫을 수 있는 덧창이 있다. 덧창을 완전히 열면 안채로부터의 시선을 차단해주는 벽이 된다.

HOUSE PLAN

대지위치 ≫ 강원도 고성군

대지면적 ≫ 1,299㎡(392.95평) | 건물규모 ≫ 지상 1층

거주인원 ≫ 2인(부부)

건축면적 ≫ 186.64㎡(56.46평) | 연면적 ≫ 172.72m2(52.25평)

건폐율 ≫ 14.37% | 용적률 ≫ 13.30%

주차대수 ≫ 2대 | 최고높이 ≫ 6m

구조 ≫ 기초 - 철근콘크리트 매트기초 / 지상 - 철근콘크리트

단열재 ≫ 비드법단열재

외부마감재 ≫ 노출콘크리트 위 발수 코팅, 공간세라믹 이형벽돌

창호재 ≫ 살라만더 PVC 삼중창호

에너지원 ≫ 대성 지열에너지

설계 ≫ 홍성용, 신경훈, 유재윤

시공 ≫ 건축주 직영(시공소장 임대광)

첫 만남에서 노부부는 단정한 집을 이야기했다. 연세도 있으셔서 관리가 편했으면 한다고 요청했고, 꼭 필요한 생활의 공간들만 남겨두기로 했다. 어릴 적 경험했던 한옥의 편안함과 포근함을 그리워하는 두 분과 대화하며 편안한 집을 설계하기로 방향이 잡혔다. 넓은 대지는 단층집을 짓는데 충분했고, 직접 가꾸어 오신 조경을 벗 삼아 집 어디에서도 조경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집의 구성은 말 그대로 기능에 충실하게 최소한의 단위 공간을 만들었다. 내부는 한옥처럼 넓은 마루를 깔고, 거실은 대청마루처럼 바닥을 높이고 경사지붕을 드러냈다. 마감은 자작나무 합판으로 하여 나뭇결의 편안함을 더해주었다.


거실과 연결된 주방 겸 식당. 조명을 건축디자인의 한 요소로 사용한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밝은 분위기의 욕실에는 작은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 통창을 내었다.

최소한의 필요 기능으로 구성한 안채는 각 공간이 본 기능에 충실하되 감성적 경험의 극대화를 이끌어 내도록 했다. 안방은 잠을 편하게 자기 위해서 침대 외 공간을 절제해 단출하게 꾸렸다. 아주 가끔 손님이 오기 때문에 안방 욕실을 공용화했지만, 실제는 거의 개인 공간이다. 밝은 화장실과 욕실 개념으로 통창을 두어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작은 정원을 마주하도록 했다. 이곳은 두 분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주방은 상부장을 없애서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수납은 바로 옆에 커다란 팬트리 룸을 두어 해결했다. 부수적으로 지열 보일러 공간도 수납으로 활용할 수 있다. 세탁실은 거실에 면하는 동선에 두어 사용이 편리하게 했고, 애벌빨래가 가능하도록 구성했다. 거실과 주방은 연결되어 있지만, 잡다한 주방기구가 거실에서 보이지 않게 주방가구 위로 밥솥이나 전자레인지가 올라오지 않도록 디자인했다.


건축의 줄 나눔을 안으로 들인 안채의 내부. 높고 경사진 천장의 거실에는 안방과 화장실을 분리하는 가림벽을 세웠다.


욕실과 거실에서 창 너머로 보이는 작은 정원.

PLAN


① 거실 ② 기도실 ③ 침실 ④ 화장실 ⑤ 간이주방 ⑥ 현관 ⑦ 안방 ⑧ 주방/식당 ⑨ 대청마당 ⑩ 지열보일러실

INTERIOR SOURCE

내부마감재 ≫ 벽 – 포세린 타일, 자작나무 합판 / 천장 - 자작나무 합판 / 바닥 –대리석 타일

욕실 및 주방 타일 ≫ 홈세라믹스 최중식 수입타일

수전 등 욕실기기 ≫ 아메리칸스탠다드

주방가구 ≫ 주문제작

계단재·난간 ≫ 이페목, 평철난간

현관문 ≫ 우드플러스 | 데크재 ≫ 이페목


현관에서 바라본 사랑채 내부. 건축의 단정함이 고스란히 담겼다.


중첩된 창과 덧창 너머로 투과되는 사랑채 풍경이 한옥을 떠올리게 한다.

한옥의 안방과 대청마루 사이 ‘건넛방’ 개념을 빌려와, 사랑채는 안채와의 사이에 ‘대청마당’이라는 사이 공간(바람길)을 두어 구성했다. 가끔 오는 지인이나 자손들이 사랑채에 머물며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마당을 건너가게끔 분리해준 것이다. 사랑채 역시 실내 어디서나 외부 조경을 바라볼 수 있으며, 상시 생활 공간이 아니어서 한옥의 툇마루를 두고 수직 창살의 덧문을 달았다. 덧문을 열면 안채와 분리되는 벽을 형성하게 되어 각각의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도록 했다.


사랑채 앞은 화계(花階)를 두어서 다양한 식물들이 수시로 피고 지는 것을 구경하는 낭만적 공간으로 만들었다. 안방 거실 앞은 연장된 거실 개념의 야외 데크 공간으로 구성했다. 난로 공간을 따로 두어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야외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길가에 있는 창고건물은 넓은 정원을 가꾸기 위한 창고이기도 하고, 추후 다양한 기능을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든 여벌 공간이다. 도로에서 안방으로 향하는 시선을 차단하는 스크린 역할도 한다.


멀리 바라보이는 설악산의 울산바위와 으뜸바우집. 집의 이름은 울산바위를 지칭하기도 하는 ‘으뜸가는 바위’라는 뜻의 마을 이름 ‘원암리’에서 따 왔다.


뒷마당에서 바라본 주택의 밤 풍경. 안채와 사랑채 사이, 바람길이 되어주는 대청마당이 있는 주택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인생을 다시 건축하는 일. 공사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노부부에게 직접 시공하시길 권했다. 불타버린 시간에 대한 회복이라고 할까? 압축된 기억을 만들도록 돕고 싶었다. 그래서 60대 후반의 베테랑 시공소장을 소개했다. 건축주와 시공소장 간의 호흡이 잘 맞아서 터를 다지고, 기초와 벽을 세우고 마감을 하는 동안 어렵지 않았다. 마감재를 고를 때도 두 분은 아이처럼 설레는 모습으로 곳곳을 다니며 샘플 사진을 보내왔고, 수시로 시공소장 그리고 나와 함께 의논하고 결정해 나갔다.


공사가 마무리되고 입주한 두 분은 평생에 꼭 한 번 집을 지어보고 싶다던 소원을 이루었다고, 새로운 집에서의 생활이 정말 편안하다고 전해왔다. 꿈을 이루도록 돕는 건축사라는 직업이, 새삼 만족스러운 순간이다. <글 : 홍성용>

건축가 홍성용 _ 건축사사무소 엔씨에스랩

건축공학박사, 건축사로 대한건축사협회 편집국장을 역임하였으며 2001년 모이 건축디자인을 설립해 운영했다. 2012년부터 30개월간 미국종횡단과 서유럽 여행을 다녀온 이후, 2015년 한국에 건축사사무소 엔씨에스랩(NCS lab)을 설립해 현재 대표를 맡고 있다. 1996년부터 다수의 학교에서 건축이론과 설계 강의를 하고 있으며, 통섭적 사고로 건축과 영화, 경영, 도시 등 다양한 주제의 책을 저술해 그중 3권의 책이 국가추천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02-2088-7202│www.ncsarchitect.com

취재_ 조고은 | 사진_ 김용순

ⓒ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1년 7월호 / Vol.269  www.uujj.co.kr

2021.07.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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