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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 ]

땅을 읽어내 지은 오름을 닮은 집

by전원속의 내집

제주 호근동 주택

제주를 닮은 집을 짓기 위해 거듭한 고민의 끝.
그곳에는 오름의 모습을 담아낸 검은 주택이 서 있었다.

울산에서 엔지니어와 아티스트로서 삶을 일구어왔던 건축주 부부는 남들과 마찬가지로, 숨 가쁘게, 또 치열하게 인생이라는 레일을 달려왔다. 자녀들을 대학까지 진학시켜 놓고 잠시 숨을 돌려 뒤를 돌아본 부부. 이제 때가 되었음을 깨달은 건축주는 도시를 떠나 그간 마음속 풍경을 그려왔던 제주에서 집을 짓고 인생의 제2막을 올리고자 결심했다.

좌우 대칭으로 균형감을 갖춘 입면. 현관 앞 포치 공간을 넓게 둬 외부 출입에 여유가 있다.

지붕면이 만나는 모서리 등 재료의 질감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곳은 줄눈 위치까지 맞춰 선을 이어주었다. 모서리는 직각으로 만나지 않는 터라 줄눈을 잇기 위해 평소보다 3~4배 이상 시간이 걸렸다.

서귀포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중산간의 마을에 대지를 마련한 건축주는 한 가지 원칙을 가지고 건축가를 찾아 나섰다. ‘땅을 닮은 집’이었다. 아무리 아름답다해도 존재감을 드러내느라 혼자 이질적으로 불거지기보다는 건축주가 사랑한 이 풍경과 마을에 집도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를 바랐다. 그랬던 부부에게 제주 집을 여러 차례 그려온 제로리미츠건축사사무소의 김종서 소장은 적임자였다. 몇 가지 건축 외 문제로 무려 4년이 걸리긴 했지만, 고즈넉한 마을에 차분한 인상의 주택은 조용히 자리를 찾았다.

길가에서 본 주택의 모습. 제주도 특유의 돌담과도 잘 어울린다.

주택이 위치한 곳은 바다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는 중산간 지역에 전원주택용으로 조성된 필지다. 가까이로는 귤 농장과 굽이굽이 꺾인 마을 길을, 멀게는 한라산과 오름들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위치였다. 기본적인 매스의 형상은 이런 오름을 모티브로 했다. 오름이 보여주는 완만한 라인과 배치되지 않도록 일방적으로 뾰족한 박공이나 박스 스타일은 지양하면서 곡선보다는 도시적인 직선의 조합으로 균형점을 찾아 지금의 입면을 갖춰나갔다.

HOUSE PLAN

대지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지면적 ≫ 725㎡(219.31평)
건물규모 ≫ 지상 2층 ┃ 거주인원 ≫ 4명(부부 + 자녀 2)
건축면적 ≫ 105.57㎡(31.99평) ┃ 연면적 ≫ 126.24㎡(38.26평)
건폐율 ≫ 14.56% ┃ 용적률 ≫ 17.41%
주차대수 ≫ 1대 ┃ 최고높이 ≫ 7.5m
구조 ≫ 기초 - 철근콘크리트 매트기초 / 지상 - 철근콘크리트
단열재 ≫ THK180 비드법단열재(가등급)
외부마감재 ≫ 외단열시스템 세라믹 와이드롱타일 블랙
창호재 ≫ 윈센 시스템창호
전기·기계 ≫ ㈜아이앤코 ┃ 설비 ≫ 제주 현지 업체
구조설계 ≫ 이든구조 ┃ 시공 ≫ ㈜엔원종합건설
설계·감리 ≫ ㈜제로리미츠건축사사무소
 

옥상 테라스나 실내에는 한라산이나 오름, 먼 바다 뷰를 와이드하게 조망하기 위해 코너창 형태의 개구부를 여럿 두었다.

형상과 함께 김 소장이 깊이 고민했던 이슈는 마감재였다. 디자인 측면에서는 제주 경관과 일체감을 형성할 수 있는 컬러, 그리고 제주도라는 환경 조건을 염두에 두었다. 많은 비, 강한 바람, 높은 습도와 소금기 섞인 해풍 등 육지와 비교했을 때 무척 가혹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 육지 기준으로 예상되는 내구성이 실제로는 상당히 못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천연 석재보다는 도시적인 감각의 소재를 원한 건축주의 의향도 고려됐다. 컬러강판 등 여러 소재를 두고 건축주와 건축가의 긴 논의 끝에 호근동 주택에는 제주의 땅과 같은 색인 블랙, 그리고 물과 기후에 강해 유지관리 요소가 적은 세라믹 타일을 낙점했다.

2층 침실과 테라스, 창고를 잇는 외부 통로.

PLAN


① 현관 ② 주방 ③ 식당 ④ 거실 ⑤ 메인침실 ⑥ 욕실 ⑦ 침실 ⑧ 작업실 ⑨ 보조주방 ⑩ 창고 ⑪ 테라스 ⑫ 중정

SECTION


① 현관 ② 주방 ③ 식당 ④ 거실 ⑤ 메인침실 ⑥ 욕실 ⑦ 침실 ⑧ 작업실 ⑨ 보조주방 ⑩ 창고 ⑪ 테라스 ⑫ 중정


주방과 거실 모습. 가운데 중정은 판석으로 포장해 관리와 이용에 편의를 더했다.


1층 침실 앞에서 본 복도. 끝은 거실 코너창과 닿아 시야에 막힘이 없다.

INTERIOR SOURCE

내부마감재 ≫ 벽 – 친환경 수성 도장, 자작나무 합판 / 바닥 - 이건 온돌마루
욕실·주방 타일 ≫ 포세린 타일(제주 현지 업체)
수전 등 욕실기기 ≫ 계림, 대림, 아메리칸스탠다드
주방 가구 ≫ 건축주 직영 ┃ 조명 ≫ LED T5, 다운라이트(제주 현지 업체)
계단재·난간 ≫ 애쉬 계단재, 평철난간 ┃ 현관문·중문 ≫ 건축주 직영
방문 ≫ 자작나무 현장 제작 ┃ 데크재 ≫ 포세린 타일

거실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작업실 공간. 건축주의 그림 작업이 이뤄지곤 한다.


규모는 30여 평의 비교적 콤팩트한 2층으로, 외부보다는 실내 지향적인 건축주에게 맞춰 중정을 중심으로 두르듯 공간을 배치했다. 현관을 들어서면 주방에 이어 식당, 거실, 안방으로 긴 동선을 이루며, 작은 침실과 작업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기능을 1층에 집약시켰다. 오랫동안 지내온 아파트 평면에서 급격히 변화하는 대신 익숙하고 안정적인 실 배치를 의도한 결과다. 거실은 천장을 오픈해 2층 작업실과 면하는 보이드 공간을 만들어 공간감을 극대화하면서도, 1층은 도장, 2층은 자작나무 합판으로 마감해 소재에 따른 구분감을 줬다. 자작나무 합판은 단순히 목재 질감을 주는 것 이상으로 디테일도 신경 썼다. 각 합판끼리 만나 생기는 선은 물론 지붕 면의 꺾임까지 고려해 판재를 재단하거나 각도를 고려해 적용했다.


지붕 선이 그대로 드러나 독특한 시각적 재미를 주는 2층 침실.


2층 작업실부터 지붕면 전체의 합판 마감도 외부 타일 마감과 비슷하게 주요한 라인은 끊어지지 않게 신경 쓴 모습을 볼 수 있다. 연속성과 함께 보다 자연스럽게 공간을 인지하게 된다.

근래 SNS에서는 제주 풍경이 망가지고 있다며 종종 건물 사진이 올라오곤 한다. 고급 자재로 건물은 신경 써서 짓지만, 정작 자연과는 어울리지 않고 홀로 어색하게 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호근동 주택은 현지 천연 소재로 지역성을 강조하지 않아도 땅과 잘 어울릴 수 있음을 증명해보인 좋은 선례다.


귤 농장 너머로 드러난 주택의 모습.

건축가 김종서 _ 제로리미츠건축사사무소
김종서 소장은 울산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하였다. 매스스터디스, 원오원디자인, ㈜해안건축(디자인랩)을 거치며 경험을 쌓았고, 2012년 ㈜제로리미츠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여 건축과 디자인의 가치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한계와 경계 탐구를 지향하는 작업을 한다. 주요 작업으로는 제주 하도리 돌집, 무주 오연재(단독주택), 울산 동구 VIA 사옥 등이 있으며 2021년 6월까지 울산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직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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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_ 신기영 | 사진_ 김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