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의 사운드트랙

<죠스> <인디아나 존스> <스타워즈> 존 윌리엄스 영화음악, 그리고 두다멜 지휘 내한 콘서트

존 윌리엄스. 로이터 연합뉴스

머릿속 한구석에 똬리를 튼 영화음악들이 있다. 어린 시절 눈물 줄줄 흘리며 본 영화 <미션>과 <시네마 천국>이 그렇고, 해적 잭 스패로의 뒤죽박죽 모험에 혼이 쏙 빠졌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이 그렇다. 이 음악들을 만든 엔니오 모리코네와 한스 치머의 이름은 영화음악에 별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들어봤을 가능성이 크다. 그에 비해 존 윌리엄스의 이름은 덜 익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음악으로만 치자면 앞의 두 음악가 작품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봤을 거라 장담한다. 내 머리에 가장 많이 저장된 영화음악도 존 윌리엄스의 작품들이다.

단 두 개의 음만으로 만든 긴장감

존 윌리엄스는 1932년 미국 뉴욕주에서 재즈 음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에서 작곡을 배우고, 명문 줄리아드 음대에서 작곡·피아노·지휘법을 배웠다. 졸업 뒤 작은 클럽에서 재즈피아니스트로 일하다 1960년대 초 영화음악계에 입문했다. 존 윌리엄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죠스> 작업을 하며 이름을 널리 떨쳤다. ‘빠밤 빠밤’ 하는 단 두 개의 음만으로 소름 돋는 긴장감을 자아내는 음악은 뾰족한 지느러미로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식인상어와 찰떡궁합이었다. 결국 생애 첫 아카데미 음악상 트로피를 안았다. 당시 할리우드에선 재즈, 록, 디스코 등이 유행했다. 그런데 존 윌리엄스가 고전 심포니를 할리우드 주류로 가져온 것이다. <죠스>의 상징적 테마도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4악장 도입부를 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윌리엄스는 스필버그와 유난히 죽이 잘 맞았다. 함께 작업한 영화만 28편이다. <미지와의 조우> 《E.T.》 <인디아나 존스> <쉰들러 리스트> <쥬라기 공원> 등이 대표작이다. 스필버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내 영화는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하지만, 그것을 흘러내리게 하는 것은 윌리엄스의 음악이다.” 그의 말마따나 언제나 감동의 화룡점정은 윌리엄스의 음악이었다. 스필버그의 소개로 만난 조지 루카스와도 평생의 파트너십을 맺었다. 세계 최고의 프랜차이즈물 <스타워즈>의 첫 영화부터 둘은 함께해왔다. 이 밖에 <슈퍼맨> <해리 포터> <게이샤의 추억> 등도 윌리엄스의 대표작이다.


할리우드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와 윌리엄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터다. 그는 1984년 LA올림픽 공식 주제가 <올림픽 팡파르 테마>를 만들기도 했다. 1919년 창단한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첫 만남은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 윌리엄스는 피아노 연주자로 LA 필하모닉 무대에 처음 올랐다. 1978년 할리우드 볼에서 열린 LA 필하모닉 공연에선 지휘봉까지 잡았다. 윌리엄스는 “나는 스튜디오에서만 지휘했지 관객 앞에선 해본 적이 없다”며 주저했지만, LA 필하모닉 쪽의 설득 끝에 무대에 올라 <스타워즈> <미지와의 조우> 등을 지휘했다.


현재 LA 필하모닉의 지휘봉을 10년째 잡고 있는 이는 구스타보 두다멜이다. 2009년 28살 두다멜이 LA 필하모닉 상임지휘자가 된 것은 파격이었다. 그는 베네수엘라에서 빈민층 아이들을 위한 음악 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 지휘자로 성장한 인물이다. 음악으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사회를 통합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로, 비슷한 프로그램이 세계 여러 나라로 번지고 있다.


윌리엄스가 2015년 영화음악가로는 처음으로 미국영화연구소(AFI) 평생공로상을 받았을 때 두다멜은 미국 영화 전문 잡지 <버라이어티>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생 동안 존 윌리엄스를 존경해왔습니다. 어릴 적 나는 영화에 미쳐 있었고, <스타워즈>《E.T.》 <인디아나 존스> 음악을 사랑했습니다. 영화음악 작곡가들은 오케스트레이션(오케스트라를 위한 작곡과 편곡)에 능한 매우 훌륭한 음악가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내게 존은 이 시대 최고 음악가입니다. 또한 멋진 사람이고 훌륭한 친구이기도 하죠.” 두다멜은 윌리엄스 작품들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꾸려 친구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중 하나가 지난 3월15일 전세계 동시 발매된 음반 <셀러브레이팅 존 윌리엄스>(로스앤젤레스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라이브, 2019)다.

192명 단원의 연주로

한겨레21

구스타보 두다멜이 이끄는 LA 필하모닉이 3월17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존 윌리엄스 영화음악 콘서트’를 하고 있다. 마스트미디어 제공

3월17일 이 음반을 생생한 라이브로 듣는 호사를 누렸다. LA 필하모닉은 요즘 창단 100돌을 기념하는 페스티벌을 펼치고 있다. 그 하나로 월드투어를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도 공연한 것이다. 3월16~18일 각기 다른 장소에서 다른 구성의 공연을 펼쳤는데, 둘쨋날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연 ‘존 윌리엄스 영화음악 콘서트’는 더 폭넓게 대중과 만나기 위한 무대였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관객 6천여 명이 들어차 있었다. 무대에선 무려 192명에 이르는 단원들이 각자 악기를 조율하고 있었다.


곱슬머리의 두다멜이 등장했다. 그는 LA올림픽에서 울려퍼진 <올림픽 팡파르 테마>로 문을 열었다. 이후 <미지와의 조우> <죠스> <해리 포터> <쉰들러 리스트> 《E.T.》 <후크> <쥬라기 공원> 등 음반 수록곡 순서대로 연주해나갔다. 몇몇 곡에선 대형 스크린으로 영화 장면을 보여줬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1편 <레이더스> 주제곡이 흐를 때 가슴이 벅차올랐다. 중학생 때 학교 강당 상영회에 500원을 내고 들어가 본 영화다. 영화 속 음악, 장면과 함께 넋을 잃고 빠져든 까까머리 중학생의 내가 떠올랐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스타워즈> 주제곡을 3악장으로 구성해 연주한 대목이었다. 스크린에서 영화 장면이 나오더니 막판에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음악을 녹음하는 윌리엄스의 모습이 등장했다. 1977년 첫선을 보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4: 새로운 희망>부터 1999년부터 순차적으로 개봉한 프리퀄 3부작, 지금 진행 중인 시퀄 3부작의 두 번째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8: 라스트 제다이>까지 시리즈 전편 포스터와 함께 보여준 윌리엄스의 얼굴은 영화와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괜스레 뭉클해져 눈물이 고였다.

여전히 현역

올해로 87살을 맞은 존 윌리엄스는 여전히 현역이다. 올해 말 개봉하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9>와 내년 개봉할 <인디아나 존스 5> 음악도 그의 손에서 나올 예정이다. 이 시대의 베토벤이자 모차르트인 그가 언제까지고 “우리 인생의 사운드트랙”(두다멜)을 만들어주길 바란다.


서정민 한겨레 기자 westmin@hani.co.kr

2019.03.3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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