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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처 ]

2020 ‘선한 영향력’은 계속된다

by한겨레21

[한겨레21] BTS·박나래·유산슬·양준일… 문화계에 부는 ‘착함의 선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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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한 사람이 아니지만 예능인 박나래는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019월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개그맨 박나래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대중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만큼 앞으로 상처 주지 않는 ‘선한 웃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사회적 공인으로서 연예인의 책임감을 언급한 거다. 이날 시상식에서 우수상을 받은 개그맨 안영미도 선한 영향력을 언급했다. “(팬들) 댓글 덕분에 제가 <라디오스타> MC가 됐다. 2020년에도 제2의 안영미가 나올 수 있도록 댓글로 선한 영향력 부탁드린다.” 수상 소감으로 악플 전쟁 속에 응원과 격려를 해주는 ‘선플’(선한 댓글) 달기를 하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개그맨 송은이는 “안영미의 (연예대상 시상식) 수상 소감을 듣고 안영미의 선한 영향력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고 새해 계획을 밝혔다(1월7일 MBC 라디오 <여성 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에서).


선한 마음이 불러오는 선순환



이들이 말한 ‘선한 영향력’이 요즘 유행어처럼 번지고 있다. 이 말은 한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이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 선순환을 뜻한다.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남을 이롭게 하는 선한 마음, 이타성이다.


최근 선한 영향력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는 화제의 인물이 있다. 양준일. 20대에 데뷔한 뒤 홀연히 사라진 그가 50대에 돌아왔다. JTBC <슈가맨>에 출연한 뒤 신드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대중의 선한 영향력이 만들어낸 새로운 유형의 스타다.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인간미에 대한 미담이 이어지며 그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그의 팬들은 “착한 사람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들자며 선플로 응원했다.


양준일 팬클럽 카페 ‘판타자이’의 회원인 최명수(43)씨는 선한 스타를 키우는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고 했다. “양준일의 겸손하고 남을 배려하는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든다. 지금 이 순간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태도도 좋다. 착한 그가 복을 받았으면,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더불어 ‘나도 그처럼 성실하고 착하게 살면 잘될 거야’라는 따뜻한 기운을 받았다.”


방탄소년단(BTS)도 데뷔 때부터 줄곧 선한 영향력을 이야기했던 연예인이다. 그들은 지난해 12월4일 일본에서 열린 ‘2019 MAMA’(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에서 9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이날 ‘올해의 앨범’상을 받은 뒤 제이홉은 “앨범 작업을 하며 많이 공부하는데 앞으로 더 공부해서 여러분께 더 좋은 음악 들려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좋은 메시지, 선한 영향력으로 항상 다가가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전세계 아미(BTS 팬클럽)들도 자발적으로 BTS가 전하는 ‘선한 영향력’을 전파한다. 특히 BTS 멤버와 팬들의 사회복지단체 기부 활동으로 사회 곳곳에 온기를 퍼트린다. 과거 ‘조공’이라 일컫던 고가의 선물 문화가 기부 문화로 바뀌면서 선한 영향력의 좋은 예로 손꼽히고 있다.


공익을 위한 연예인의 선한 행동은 그들의 또 다른 경쟁력이 된다. 2019년 7월 시장조사 전문 기업인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16∼64살 1천 명에게 BTS 관련 설문조사를 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64.2%는 “BTS가 청소년들과 젊은층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 같다”고 했다. BTS에 호감이 가는 이유로 “높은 인기에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57.5%·중복 응답), “춤 실력과 공연 실력”(47.3%), “음악 실력”(37.2%)에 이어 “인기가 있다고 일탈 행동을 하지 않는 점”(33.9%), “개념 있는 행동”(31%)이라고 답했다. 음악 실력뿐 아니라 성실하고 착한 인성과 태도 등을 중요한 호감 요소로 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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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감수성과 방송계의 변화



‘착하면 손해 본다’ ‘착한 사람은 호구다’라는 말이 나오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왜 다시 ‘착함’이 대접받는 걸까. 책 <착한 사람이 이긴다>에선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시대는 착함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 시대에 무엇보다 인간에게는 인간다움이 요구된다. 이런 시대에 인간다움의 조건으로 인성이나 도덕성, 윤리의식 등 착함의 속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한겨레21>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요즘 신드롬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보면 유산슬, 양준일 등 모두 선한 영향력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대중은 인기를 잃어가는 트로트를 살리겠다는 선한 의지로 뛰어든 유산슬, 성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양준일이 계속 선한 행보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계 안팎에서 일어나는 착한 변화는 인권의식과 감수성이 높아지는 사회 흐름의 영향이다. 페미니즘 이슈가 부각하고 그와 함께 소수자, 약자에 대한 관심과 이들에 대한 포용력이 넓어지고 있음을 방송계에서도 읽을 수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의 이윤소 활동가는 <한겨레21>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말했다. “지난해 설리, 구하라 등 악플에 시달린 연예인들의 자살이 잇따르면서 타인에게 하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깨닫게 했다. 방송에서 외모 비하, 인종차별 등 혐오와 차별의 말이 문제로 지적되고 그런 말을 쓰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콘텐츠 제작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제작 매뉴얼도 생기고 있다. 한 예로 영화 <우리 집>을 만든 윤가은 감독은 촬영할 때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거나 손을 잡는 행위 등의 가벼운 접촉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등 미성년자를 위한 촬영 규칙을 만들었다.


다양한 사회문제의 해결점을 찾으려는 착한 예능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MBC <같이 펀딩>이 그런 예다. 이 프로그램은 혼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분야의 ‘가치’ 있는 아이디어를 크라우드펀딩(불특정 다수에게서 기금을 모으는 것)을 통해 ‘같이’ 실현해보는 예능이다. 환경보호를 위해 기획한 ‘바다 같이’ 등 프로젝트를 진행해 펀딩 총액 26억원을 달성했다.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예능 프로그램의 외연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해 8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선정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받았다. EBS <배워서 남줄랩>의 ‘자해하기 싫어요’ 편과 ‘미워하지 마, 자해하지 마’ 편은 청소년의 자해가 사회문제가 되어가는 이 시대에 생명존중, 평화, 이타심 등의 가치가 담긴 건강하고 선한 랩을 전파하여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쳤다는 이유로 지난해 한국YWCA 생명부문상을 받았다.


선한 사람이 주목받을 2020년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은 착한 이야기를 가진 이들을, 선한 영향력을 주는 프로그램을 보고 싶어 하고 그걸 자신의 일상에서 이어가는 선순환을 이룰 것”이라며 “그 선함의 연결로 2020년에도 제2의 유산슬, 제2의 양준일 등 선한 영향력을 가진 또 다른 스타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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