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그 홍콩 영화, ‘왕가위 감독’의 감성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 , , 을 다시 돌아봅니다. 고독과 사랑, 그리고 그리움을 담은 그 시절 홍콩 영화의 정수를 느껴보세요.

영화 <중경삼림> 스틸컷 /네이버 영화 

‘90년대 홍콩 영화’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왕가위(王家卫) 감독이다. 그는 세계적인 영화 감독이자 아시아 영화계의 거장이며 자신만의 구성과 연출을 선보인 독창적인 실험가이기도 하다.


1988년 작품 <열혈남아>로 감독으로서 처음 관객을 만났던 왕가위는 3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국내 영화관에서 돌아가며 기획하는 듯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왕가위 감독 기획전’이 여전히 많은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9월 4일부터 10일까지 CGV에서 만나볼 수 있는 ‘왕가위 기획전’은 왕가위 감독의 마스터피스이자 대표작 <중경삼림>, <화양연화>, <아비정전> 총 3편의 리마스터링 영상을 상영한다. 그 시절 홍콩 영화의 감성을 새롭게 알아보고 싶거나 혹은 다시 느껴보고 싶다면 관심을 가져볼 만 하다.

<해당 기사에서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 <화양연화>, <아비정전> 중 몇몇의 장면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만큼,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다면 영화를 먼저 관람하길 권한다>

도시의 고독과 청춘의 실연, 중경삼림

미국 록그룹 마마스 앤 파파스의 히트곡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을 듣게 되면 자동으로 재생되는 장면들이 있다. 노래 자체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야기하지만 90년대를 지난 세대라면 홍콩의 정취가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그 이유는 이 음악이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1994)의 주제곡으로 삽입되면서 다시 한 번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영화 중경삼림 포스터

영화 <중경삼림> 포스터 /네이버 포토

중경삼림은 1994년의 홍콩을 그리고 있다. 젊은 남녀 간의 사랑을 가볍고 탐미적으로 다루면서 동시에 불안정한 도시의 고독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두 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진 옴니버스식 구성의 영화로 각각 두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먼저 1부는 금발 가발을 쓴 미스터리한 여인과 경찰 223의 이야기다. 금발 가발의 여인은 임청하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버려진 경찰 223역은 금성무가 연기했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 있다면, 기억이 영영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꼭 기한을 적어야 한다면, 만 년 후로 하고 싶다”라는 유명한 대사는 이 에피소드에서 등장한다.


경찰223의 이름은 하지무. 5월 1일 생일인 그는 자신의 연인인 ‘메이’에게 이보다 한 달 전인 4월 1일 만우절에 이별 통보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생일이 오기까지 한 달 동안 매일, 그녀가 좋아했던 과일인 파인애플의 통조림을 구매한다. 이 통조림은 모두 유통기한이 5월 1일까지인 것들이다.

영화 <중경삼림> 스틸컷, 연인과 헤어진 하지무는 유통기한이 5월 1일까지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두 먹어치운다 /네이버 영화

하지만 하지무의 생일이 다가와도 그녀에게는 연락이 오지 않는다. 그는 단골 식당 미드 나이트 익스프레스로 향해 그곳을 전전하고, 전화기를 붙든 채 전 연인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끝내 메이와 연락이 닿지 않은 그는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두 먹어버리며 그녀를 잊기로 한다.


금발의 가발을 쓴 미스터리한 여성은 한 바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마음 먹은 하지무를 만난다. 그녀는 금발에 레인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홍콩이라는 도시와는 이질적인 차림의 모습을 하고 있어 궁금증을 더한다.

영화 <중경삼림> 스틸컷, 금발의 가발과 선글라스, 레인코트의 그녀 /네이버 영화 

2부에서도 연인에게 이별을 당한 경찰이 등장한다. 양조위가 연기한 경찰663은 스튜어디스인 연인과 이별했다. 그의 전 연인은 경찰663의 단골 음식점을 찾아 편지와 함께 그의 집 열쇠를 맡긴다. 그 음식점이 바로 1부에서 하지무가 방문했던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다.

영화 <중경삼림> 스틸컷,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에서 경찰663과 페이 /네이버 영화 

또 다른 등장인물 페이는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에서 일한다. 해당 역은 왕페이가 맡아 연기했다. 그녀는 경찰663을 몰래 사랑하고 있다. 페이는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 엎드려 경찰663의 집을 몰래 훔쳐보기도 한다. 이 장면은 많은 젊은 관람객들에게 인상적인 기억을 남기며, 실제 해당 장면을 촬영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관광 명소로 떠올라 여행객들의 인증샷에 등장하고 있다.

영화 <중경삼림> 스틸컷, 경찰663의 집을 몰래 훔쳐보는 페이 /네이버 영화 

페이는 우연히 그의 전 연인이 맡긴 편지와 집 열쇠를 손에 넣게 되면서 경찰663의 집에 마음대로 들어간다. 무단침입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경찰663은 페이 덕분에 전 연인에 대한 미련을 지울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중경삼림은 영화 전반에 걸쳐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왕가위 감독은 독특한 미쟝센을 통해 주인공들의 불안정하면서도 고독한 심리상태를 보여주는데, 그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핸드헬드나 스텝 프린팅 기법 등이 여기에 속한다.


핸드헬드는 카메라가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하면서 등장한 촬영 기법이다. 촬영자가 휴대용 카메라를 직접 들고 피사체를 찍는 방식으로 화면의 흔들림이 두드러지고 산만하다는 특징을 준다. 또 스텝 프린팅은 저속 촬영을 한 다음 특정한 부분을 복사해 붙이는 방식으로 늘어진 듯 보이는 화면의 잔상 등을 통해 공간을 왜곡해 보이게 한다.


왕가위 감독은 이러한 여러가지 촬영 기법과 고속촬영을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화면을 파편화하고 왜곡하는 등 자신만의 미쟝센을 구축한다. 이는 불안정하고 고독한 주인공들의 감정, 상황 등을 보여주는 연출이자 장치인 셈이다.

영화 <중경삼림> 스틸컷,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미쟝센이 돋보이는 영화 /네이버 영화 

특히 이러한 영화 전반의 분위기는 홍콩의 복잡한 시대적 배경을 의미하기도 한다. 당시 홍콩은 1997년 중국반환을 앞두고 혼돈 상태에 놓인다. 많은 이들이 홍콩을 떠났고 사람들은 변화하는 체제 속에서 불안정한 감정 그리고 혼란한 도시 속의 고독을 느끼기도 한다.


1부에 등장하는 금발 가발의 여성은 비가 오는 날 입는 레인코트와 햇빛이 내리쬐는 날 쓰는 선글라스를 동시에 착용하고 있다. 그녀가 이런 차림을 하는 이유는 언제 비가 올지, 해가 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영국령에서 중국으로 반환을 앞두고 있는 홍콩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충킹맨션 또한 이러한 불안한 시대상을 보여준다. 이 영화로 충킹맨션은 홍콩의 주요 관광지가 됐으나, 완공 초반 고급맨션이었던 것과 달리 꾸준히 빈집이 늘면서 불법체류자들이 거주하게 되고 나중엔 관리가 되지 않는 건물로 전락했다고 한다. 감독은 다양한 사람들이 불안정하게 모여 있는 이 건물을 배경으로 삼으며 전반적인 영화의 분위기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불행 속 피어오른 아름다운 시절, 화양연화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 In the Mood for Love)>(2000)는 1960년대 홍콩, 한 아파트 이웃이 된 차우와 첸 부인의 이야기다. 그들은 상해에서 홍콩으로 이주해 온 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아파트로 같은 날 이사 왔다. 차우의 아내는 호텔 근무로, 첸 부인의 남편은 잦은 출장 일정으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 이들은 사실 상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영화 <화양연화>의 포스터 /네이버 포토

아파트를 오가며 자주 마주치는 차우와 첸 부인은 각각 그들의 넥타이와 가방이 각자의 배우자의 것과 동일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배우자들이 불륜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며 서로에 대해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낀다.


이들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각자의 배우자들이 사랑을 시작한 순간에 대해 궁금해 한다. 그래서 역할극을 하며 불륜의 시작을 유추해본다. 또 차우는 평소 무협지를 쓰고 싶어했는데 이에 대해 첸 부인에게 도움을 받기로 한다. 아파트를 둘이서 오가면 주변인들로부터 오해를 받을 것이 분명하기에 그 둘은 차우가 마련한 호텔의 한 방에서 만남을 이어간다.

영화 <화양연화> 스틸컷, 차우와 첸 부인 /네이버 포토

차우와 첸 부인은 사실 불륜의 피해자들이다. 하지만 서로를 연민하고 위로하고 슬픔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반대로 불륜의 주인공이 된다. 서로 끌리는 감정을 마음 속에 비밀로 간직하지만 아파트 사람들, 첸 부인이 일하고 있는 사무실의 사장 등 주변인들은 그 둘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차우와 첸 부인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 연민 그 이상의 것임을 알고 있으나 결국 직접적인 불륜을 행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불륜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욱이 배우자의 불륜으로 인해 가장 큰 아픔을 겪어봤기에 서로에게 다른 마음을 가지는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다.

영화 <화양연화>의 스틸컷, 두 사람은 배우자들의 불륜의 시작을 알고 싶어 역할극을 하기도 한다 /네이버 포토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 속에 왕가위 감독은 많은 이야기거리를 남겨두었다. 전문가들이 꼽은 ‘죽기전에 꼭 봐야 할 영화’에 선정되거나 , 2016년 영국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편’ 중 2위에 이름을 올리는 등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차우와 첸 부인을 연기한 양조위, 장만옥의 연기 역시 일품이며 양조위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화양연화는 미쟝센의 영화다. 모든 화면이 아름다워 영화를 보다 어느 장면에서 멈춰도 예술로 느껴진다. 왕가위 감독이 중경삼림에서는 보여줬던 급박하고 현대적인 화면과는 다르다. 화양연화는 오히려 느리고 정적이다. 슬로우를 건 듯 느리게 움직이는 화면 구성 등 감독은 절제된 연출을 통해 주인공들의 사랑과 그로 인한 도덕적 고뇌, 그럼에도 돌아갈 수 없는 그 순간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화양연화>의 스틸컷, 아름다운 미쟝센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네이버 포토

배우를 활용한 화면 구성이나 전체적으로 어두운 화면 그리고 그 안에서 바랜 듯 표현되는 여러가지 색감도 아름답다. 이러한 요소들이 하나로 모여 전반적으로 정적인 영화의 분위기를 완성해 준다.


이주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아파트 풍경, 그 안에서 마작을 하는 사람들, 좁은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보이는 국수 가게 등 그 시대 홍콩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장면도 다수 보인다. 이는 1960년대 홍콩이 가진 화려함과 그 이면에 가려진 빛 바랜 시간들을 보여주는 요소로, 실제로 왕가위 감독은 1960년대 홍콩에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알려져 있다.


화면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손에 꼽히지만 역시 가장 유명한 장면은 국수 가게로 향하는 첸 부인의 모습을 느리게 보여주는 씬이다. 배우자의 불륜을 알아차린 순간에도 두 사람은 건조한 하루를 이어간다.차우는 국수를 먹기 위해 혼자 가게로 향하고 첸 부인은 포장한 국수를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두운 골목에서 스치듯 마주친다.

영화 <화양연화>의 스틸컷, 불행 속 피어난 아름다운 시절 /네이버 포토

이때 나오는 음악도 유명하다. 의미심장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현악 연주곡 <유메지의 테마>는 화양연화를 대표하는 음악으로도 유명하다. 이 음악은 화양연화를 위해 만들어진 곡은 아니며, 음악의 이름에서 알 수있듯 원래는 일본 영화 <유메지>의 OST였으나 화양연화에서 사용되며 더 인기를 끌었다.


첸 부인을 연기한 장만옥이 입고 나오는 다양한 디자인의 치파오도 눈길을 끈다. 영화에서는 총 23벌의 치파오가 등장한다. 첸 부인의 치파오는 단지 의상일 뿐이지만 우아하고 나른한 영화의 감성을 완성하는데 한몫을 한다. 특히 치파오를 입고 국수통을 든 채 느릿느릿 걸어가는 첸 부인의 모습은 화양연화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영화 <화양연화>의 스틸컷, 첸 부인의 치파오가 눈에 띈다  /네이버 포토

영화 <화양연화>의 스틸컷, 첸 부인의 치파오가 눈에 띈다  /네이버 포토

사랑을 믿지 못하는 '발 없는 새'에 관한 이야기, 아비정전

왕가위 감독의 작품은 영화를 직접 보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아는 장면을 하나씩은 포함하고 있다. 영화 <아비정전(阿飛正傳, Days of Being Wild)>(1990)에서도 유명한 장면이 있다. 바로 주인공 아비를 연기한 장국영이 방안에서 혼자 러닝셔츠 차림으로 맘보춤을 추는 모습이다.

영화 <아비정전>의 스틸컷, 맘보춤을 추고 있는 아비의 모습 /네이버 포토

언뜻 자유로운 바람둥이인 아비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장면 같지만 춤이 시작되기 전 나오는 ‘발 없는 새’에 관한 내레이션은 아비의 슬픈 처지를 보여준다. 발 없는 새는 나는 것 밖에는 알지 못해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지치면 바람에 의지해 잠이 들 뿐이다.

영화 <아비정전>의 포스터 /네이버 포토

아비정전은 제목 그대로 ‘아비의 일대기’라는 의미다. 거창한 것 같지만 아비의 삶은 특출 나지 않다. 아비는 오후 3시 매표소에서 일하는 한 여자를 찾아간다. 그 여자는 소려진으로, 처음에는 매일같이 찾아와 집적대는 아비를 받아줄 생각이 없었으나 이내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서도 유명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아비는 소려진에게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1960년 4월 16일 3시 1분전, 당신과 여기 같이 있고, 당신 덕분에 난 항상 이 순간을 기억할 거예요. 이건 당신이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죠. 이미 지나간 과거니까”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지한 사랑을 요구하는 소려진과 공허한 마음으로 되는대로 살아갈 뿐인 아비의 사이는 금방 균열을 맞는다. 소려진은 결혼을 원했지만 아비는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다. 소려진은 그를 떠난다.

영화 <아비정전>의 스틸컷, 소려진은 다시 찾아오지만 아비는 여전히 정착하지 못한다 /네이버 포토

사실 아비는 어렸을 적 자신을 두고 떠난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속에서 공허한 하루를 살고 있다. 그는 부모에게 버려진 상처에 의해 아무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다. 사랑에 대해 알지 못하는 아비는 결국 발 없는 새처럼 한 없이 표류한다. 양어머니를 괴롭게 하는 남자를 찾아가 혼내 주던 아비는 그곳에서 루루라는 여자를 만나지만 여전히 진정한 사랑 보다는 가벼운 연애를 할 뿐이다.

영화 <아비정전>의 스틸컷, 루루와 가벼운 연애를 이어가는 아비 /네이버 포토

아비정전은 장국영, 장만옥, 유덕화, 유가령 그리고 마지막 엔딩 장면에 잠깐 등장했던 양조위까지 홍콩의 유명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음에도 개봉 당시엔 호평을 받지 못했다. 당시 가장 인기있는 영화 장르는 홍콩 느와르였던 만큼 아비정전은 정적이며 어둡고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로 평가되며 대중에게 외면을 받은 것이다.

영화 <아비정전>의 스틸컷, 왕가위 감독 영화의 본질을 담은 아비정전 /네이버 포토

다만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 아비정전은 왕가위 영화의 마스터피스로 회자되고 있다. 특히 해당 영화는 왕가위 영화의 시작과 끝이자, 본질을 담고 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이보다 앞서 개봉했던 그의 데뷔작 <열혈남아>(1987)는 당시 인기였던 홍콩 느와르적 요소를 어느 정도 가져가면서 관람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아비정전은 이와 반대로 대중적이지 않으면서 왕가위 감독이 가진 세계관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버려지고 엇갈리며 외롭고 공허하다. 이는 <중경삼림>, <화양연화> 등 왕가위 감독이 제작해 온 다른 영화에서도 여러 번 등장했던 테마다. 버려지고 기다림을 반복하는 인물들은 끊임없이 엇갈리지만 그럼에도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발이 없는 새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하늘에서 내려와 정착할 수 있다.

불안정과 그리움을 이야기한 왕가위 감독

왕가위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통해서 불안정과 혼란, 그리움 등의 정서를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이는 청춘이 가진 고독, 사랑의 예민함 그리고 지나버린 시간의 무상함을 모두 담고 있으면서 작품 외적으로는 당시 홍콩의 불안정한 시대상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시절 그 홍콩 영화 감성이 그리운 이들이라면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감상해 봐도 좋겠다. 독특한 촬영 기법과 아름다운 미쟝센을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그의 세계관은 언제 봐도 흥미로운 요소를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윤미지 기자

2025.05.13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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