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겐 테토 테스트’는 재미일까, 성(性)의 이분법일까
에겐 테토 테스트, 단순 재미일까? MBTI 이후 유행하는 밈의 기원과 심리학자들의 경고까지 짚어봅니다.
MBTI 다음으로 성격이나 성향을 분류하는 테스트로, ‘에겐남’과 ‘테토녀’ 등을 불리는 ‘에겐 테토 테스트’가 유행하고 있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줄인 말로, 호르몬에 따라 가까운 성격 유형을 분류하게 된다.
SNS를 중심으로 에겐과 테토 중 어느 성향과 가까운지를 인증하는 영상이나 게시물이 많다. 쿠팡플레이의 SNL에서는 이를 희화화한 내용이 등장해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배우 한가인도 스스로를 ‘테토녀’라고 인증했을 정도로 최근 밈(meme)이 되고 있다.
![]() ‘에겐 테토 테스트’는 여성성과 남성성 중 어떤 성향이 추측할 수 있는 테스트다 / Pixabay |
내가 여성적인지, 남성적인지를 단순히 재미로 즐길 수 있는 테스트이지만, 몇 가지 문항으로 사람을 두 가지 성향으로 분류한다는 부분에서 고정관념에 갇힐 수 있어 전문가들은 비과학적인 테스트를 너무 맹신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에겐 테토 테스트’ 어디서 시작된 걸까
유행처럼 지나가는 밈(meme)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유래는 무려 4년 전이다. 온라인에서 알려진 바에 따르면, 2021년 콘텐츠 크리에이터 이상수 씨가 처음 제시한 ‘연애 먹이사슬 분석 글’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 연애 먹이사슬을 에겐과 테토로 분류했다 / 크리에이터 이상수 블로그 갈무리 (https://blog.naver.com/azalea1_1/222381720041) |
해당 글에서 이상수 크리에이터는 에스트로겐 남, 녀와 테스토스테론 남, 녀는 서로에게 먹이사슬처럼 끌려가는 관계라고 분석하고 있다. 호르몬이 강한 순서대로, 남성성이 강한 테토남이 가장 상위에 있으며, 그다음은 테토녀, 에겐남, 에겐녀 순이다. 비슷한 성향이거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남성성, 여성성을 가진 이성에게 끌린다는 것이 글의 요점이다.
![]() 내쪼 작가 인스타그램 갈무리 (@nezzo_toon) |
이후 인스타툰 작가인 내쪼가 2024년 ‘알파 메일 꼬시는 법’, ‘짝남 유형별 꼬시는 패션 추천’ 등에서 에겐남, 테토남 등을 언급하며 그린 웹툰이 화제가 되면서 해당 테스트와 성격 유형이 확산됐다. 내쪼 작가 역시 해당 개념을 이상수 크리에이터의 글을 참고했다고 언급해, ‘에겐’과 ‘테토’로 구분하는 성격 유형 분류가 오래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 metavv 갈무리 |
![]() types 앱 갈무리 |
직접 해본 ‘에겐 테토 테스트’는 여러 개가 있는데, 대체로 어떤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2가지 선택지를 놓고 답하도록 한다. 질문도 10~20개 정도로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다. 모두 실제로 있을 법한 상황이라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하게 되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 다양한 결과가 나온다 / types 앱 갈무리 |
그렇게 나온 결과는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하다.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하고 깨닫게 되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었어’하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결과에 따라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 등도 알려주는 내용도 있어, 평소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면 참고할 만하다.
성격 유형 테스트 인기 이유? 자기 이해, 공동체 소속감, 정보 추구 등
그렇다면 ‘에겐’과 ‘테토’처럼 성격 유형을 분류하는 테스트가 왜 인기일까. 국내 여러 논문에서 MBTI를 대중들이 왜 좋아하는가를 분석한 내용이 있다.
그에 따르면, MBTI나 에겐 테토 테스트처럼 성격 유형을 분류하는 테스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의 성격을 이해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도구 ▲행복과 쾌락을 추구하는 성향 ▲공동체 소속감 등 대인 관계 형성을 위한 도구라는 점이다.
![]()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로이 바우마이스터 / 공식 홈페이지 (roybaumeister.com) |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인간이 자기 스스로에 대한 피드백을 원하며, 자신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외부에서 정보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점이 비과학적인 성격 유형 테스트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특히, 성격 유형 테스트는 자신을 표현하며, 사회적 흐름에 뒤처지고 싶지 않아 유행을 선도하는 MZ세대의 성향과도 잘 맞는다.
![]() Pixabay |
또 다른 이유는 관계 형성에 있다. 과거 유행했던 혈액형처럼, 비슷한 공통점을 찾거나 다른 점을 파악해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에 성격 유형 테스트처럼 간단하고 편리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할 때,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질문으로 “MBTI가 뭐예요?”하고 묻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성격 유형 테스트는 사회적인 문제를 해석하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예를 들어,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섬세하며, 갈등을 회피하는 성향을 가진 ‘에겐남’, 독립성이 강하며 활동적이고 직설적인 ‘테토녀’와 어떤 갈등이 생겼을 때,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개인 간 혹은 단체 간에 갈등이 생겼을 때, 성격 유형 분류는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부분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 프로이트는 인간은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 위키미디어 |
성격 유형 테스트가 인기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행복과 쾌락을 추구하는 경향 때문이다. ‘무의식’과 ‘자아’에 대한 개념을 오래 연구한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이와 연관 지어 보면, 성격 유형 테스트는 즉각적으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있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어떤 상황에 놓여있다는 가정하에 내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를 대답하는 과정 또한 흥미롭다.
전문가들 “비과학적인 성격 분류, 재미로만 보아야” 경고
MBTI나 ‘에겐 테토 테스트’는 단순히 재미로 보기엔 즐겁지만, 주변 사람들까지 어떤 성향인지 혼자 추측하고 분류하게 된다. 누군가를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테스트가 비과학적이라는 점, 타인을 이분법적 사고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위험하기에 재미로만 봐야 한다고 경고한다.
![]()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치료학과 교수 / SBS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 채널 갈무리(https://youtu.be/ARRj0mo9q1g?si=S9oC3ggLbuunke30) |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 채널에서 “MBTI와 같은 성격 테스트는 과학적이지 않은 도구라고 해서 믿지 않는 것보다는 상대방과 이런 소재로 이야기하는 즐거운 놀이로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테스트에 관심이 많은 이유에 대해서 “개인적, 사회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이다. 의지하고 싶은 것이 필요한데, (MBTI와 같은 성격 테스트는) 성향을 알려주며, 듣고 싶은 이야기나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이를 ‘자기충족적 예언’이라고 하는데 좋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제작진이 제시한 심리테스트를 직접 해본 임명호 교수는 신빙성이 있냐는 질문에 “직관적 대답일수록 정답이다. (신빙성이) 있다”고 답하며 “지나치게 맹신하지만 않는다면 젊은 사람들이 심리테스트에 관심이 있고, 남과 나의 성격에 관심이 많은 것은 좋은 문화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김태경 우석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 SBS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 채널 갈무리(https://youtu.be/gRBEWJ05Al8?si=ooJBshjOD9a95r8_) |
김태경 우석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상담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MBTI는 쓸모가 있는 유용한 검사”라며 “성격이라는 게 보통 18세가 넘어야 굳어진다고 하는데, 요즘은 어린아이들도 테스트를 하더라. 이렇게 남용되어도 되나 싶은데 좋은 이야기만 나오는 위험한 것이 없는 검사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유튜브 채널 갈무리 (https://youtu.be/UYHjMxOsKAI?si=DZDXBuK4xmUMb4lt) |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유튜브 채널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MBTI와 같은 테스트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쉽고 유용하다. 이 같은 유형론은 편견이고 고정관념이지만, 뇌가 에너지를 덜 쓰고 정보를 많이 얻는 방법”이라며 “사람을 판단할 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기 어렵다. 그런데 MBTI와 같은 정보는 뇌과학적으로 보면 정보 처리의 효율성 측면에서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MBTI는 비과학적인 것이라고 언급하며, 자기가 자기에 대해 서술하는 문항에 대한 결과물이며, 내가 말한 것이니 맞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flickr (Cheryl) |
MBTI의 문제점에 대해 스펙트럼을 범주로 오해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I와 E는 내향성과 외향성인데, 두 가지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은 성향의 편차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격의 스펙트럼을 이분법적으로 범주화하기 따라서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이동진 평론가의 의견이다. 성향을 ‘에겐’과 ‘테토’로 분류하는 테스트 역시 이분법적으로 사람을 바라본다는 측면에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이러한 테스트에 대한 신뢰도 문제도 있다.
이동진 평론가는 “나는 MBTI 검사를 해보지 않았다. 이론이 되기 위해서는 검증 가능해야 한다. 막상 검사를 해보면 맞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매번 검사 결과가 다르면 이론화할 만한 근거가 되지 않는다”라며 “심리학에서도 성격 유형을 분류하는 검사가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분류법은 (MBTI처럼 극명하게) 반대가 아니다. N과 S가 반대인지, 제대로 된 범주화인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 유튜브 채널 ‘사피엔스 스튜디오’ 영상 갈무리 (https://youtu.be/ZfABBX_q2zQ?si=9zApvMpEk0lIas6_) |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의 ‘포러 효과(Forer Effect)’ 또는 ‘바넘 효과(Barnum effect)’를 근거로 심리테스트를 근거 없이 믿지 않을 것을 경고했다.
‘바넘 효과(Barnum effect)’는 성격에 대한 보편적인 묘사들이 자신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말한다. 버트럼 포러가 학생들에게 성격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주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학생들 모두 같은 내용이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검사 결과가 자신과 잘 맞는다며 5점 만점에 평균 4점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 바넘 효과 / 유튜브 채널 ‘사피엔스 스튜디오’ 영상 갈무리 (https://youtu.be/ZfABBX_q2zQ?si=9zApvMpEk0lIas6_) |
김경일 교수는 “애매하거나 모호하고 일반적인 내용을 보면 그렇게 믿는다. 혈액형, 별자리 등 성격에 대한 근거 없는 이야기들은 간단하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 사람들이 이런 테스트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내가 어떤 위치인지를 놓고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에 대해 알려주는 심리테스트에 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경일 교수의 의견이다.
이어 김경일 교수는 “사람을 유형별로, 간단한 검사로 알아보려는 그것은 상대방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다. 쉽게 알기 위해 근거 없는 지식을 사용하며, 몰입하는 것은 지적해야 할 부분”이라고 경고했다.
![]() 심리테스트, MBTI, 에겐, 테토 등의 검색 통계 / 네이버 데이터랩 갈무리 |
네이버 데이터랩의 최근 3개월간 ‘심리테스트’, ‘MBTI’, ‘에겐’, ‘테토’ 등 검색량을 살펴보면, 이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사람들은 ‘나’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욕구가 큰 것이다. 내가 누군지 정체성을 파악하는 노력은 좋지만, 전문가의 경고처럼 이를 맹신할 필요는 없다.
몇 가지 질문으로 사람을 두 가지 유형으로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다. SNS에 테스트 결과를 공유하며, 내가 이런 사람인가를 타인에게 ‘인정’받기보다는, 가볍게 ‘인증’하며 재미로 끝내기를 바란다.
* 참고 논문
- MBTI 성격 유형론에 대한 태도와 주관적 안녕감 간의 관계: 성격 5요인과 자기개념 명확성의 조절효과 (권가영, 임낭연 / 2023)
- MZ세대의 자기애성향, SNS 이용동기, 과시적 여가소비의 관계 (장나연, 주진영, 신규리 / 2022)
전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