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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단연코 프랑스의 수많은 명소 중 가장 황홀한 곳, 생트 샤펠

by핸드메이커

생트 샤펠 /flickr

흔히 고딕 예술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큰 규모를 자랑하며,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찬란함이 특징이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에 있는 생트 샤펠은 고딕 예술을 대표하는 다른 대성당들보다는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 하면 주저없이 생트 샤펠을 꼽는다.


루이9세의 명에 따라 지어진 생트 샤펠은 성스러운 예배당이란 뜻으로, 루이9세는 프랑스에서 신앙심이 가장 깊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십자군 원정에 나갈 때마다 엄청나게 비싼 가격으로 가시관, 십자가, 기타 유물 등 성물들을 사들였다. 생트 샤펠은 이 성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졌다.


거의 전체가 유리로 된 하나의 거대한 신전으로 설계되었으며,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이가 특징으로 건축물의 우아함과 대담함이 돋보인다. 6-7년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만들어졌지만 구조적인 결함도 없으며 곳곳의 화려한 장식과 조각, 회화, 스테인드글라스 또한 소홀히 만든 점이 없다. 

생드니 성당 /flickr

1200년대 중반, 생드니 성당의 보수 공사는 전체 구조의 하중을 아치형의 구조와 함께 기둥들로 지탱하는 방법을 적용했고, 벽을 스테인드글라스 패널로 교체했다. 다른 교회들도 생드니 성당을 모델로 삼아 짓거나, 보수하기 시작했다. 당시 성당 건축이 호황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새로운 스타일은 유행을 탔다.


석공 장인들은 건축가로 진화했고 그 중에는 노트르담 성당을 지은 피에르 드 몬트뢰유와 같이 오늘날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도면을 사용해 미리 계획을 짜고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새롭게 만들어진 대성당들은 기둥을 더 높게 뻗었고, 높고 높은 아치형의 천장들이 만들어졌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는 기둥들이 큰 특징이다. 

생트 샤펠 /unsplash

콘스탄티노플의 마지막 황제였던 보두앵 2세는 돈이 급히 필요했고, 이를 구하기 위해 국가에서 소장하고 있었던 가장 소중한 종교 유물을 팔기로 한다. 바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머리에 씌워진 가시관이었다. 1237년 황제는 유럽 항해를 떠나던 중 프랑스의 왕 루이9세를 만난다. 루이9세는 황제의 십자군 원정에 동참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고, 대신 기사관과 다른 유물에 관심이 많았다.


이 가시관은 루이9세가 왕국 연간 수입의 절반이라는 금액을 지불하고, 곧 프랑스로 옮겨져 1239년 파리에 도착했다. 생트 샤펠을 짓는 데 든 돈이 가시관을 가져오는 데 쓴 돈의 1/3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가시관이 도착한 다음날, 성대한 의식이 열렸고 3년 후 루이9세가 구입한 두 개의 새로운 유물이 파리에 도착한다.


이 유물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걸렸다는 직접적인 증거들이었다. 루이9세는 이 귀중한 유물들을 작은 생 니콜라 예배당이 아닌 더 권위 있는 곳에 두기로 결정한다. 여담으로 루이9세가 인수한 유물은 총 22점이었다고 하며 지금은 십자가 조각, 못, 가시 면류관 등 세 가지만 남아 있다고 한다. 현재의 생트 샤펠에는 이 유물들이 없으며 해당 성물들은 노트르담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생트 샤펠의 스테인드글라스 /unsplash

루이9세는 성물 컬렉션을 보관하기 위해 새로운 예배당을 짓기로 한다. 공사 시작의 정확한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물이 파리에 도착한 1241년 가을부터 교황이 이 공사를 처음 언급했던 1244년 5월 사이에 이 공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공사는 6년 넘게 걸렸고, 루이9세는 그의 어머니가 설립한 수도원 같은 종교 시설들도 건축했다.


또 프랑스 파리의 초대 주교이자 순교자인 디오니시우스를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성당인 생드니 대성당을 재건하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그는 건축 현장을 직접 방문해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건물 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때로는 노동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고. 그래서 루이9세가 건축가들과 긴밀히 협력해 생트 샤펠을 설계했다는 설도 있다.

노트르담 드 파리 대성당 /unsplash

생트 샤펠의 건축가는 알려진 바 없지만, 16세기로 올라가는 옛 이야기에 따르면 생제르맹 데 프레 수도원의 성모예배당과 노트르담 드 파리 대성당의 남쪽 종탑의 건축가인 피에르 드 몬트뢰유라고 언급되어 있다. 그는 루이 시대의 최고의 건축가로 알려져 있으며 생 드니 수도원 성당의 본당을 개축하기도 했다. 또한 생트 샤펠에 보이는 조각을 봤을 때 아미앵 대성당의 건축가인 토마 드 코르몽도 언급되는데, 생트 샤펠과 아미앵 대성당의 성모 예배당 사이의 건축적 유사성이 이유라고.


교황 보니파시오 8세는 1297년 시성식에서 루이9세를 황제로 묘사했고 이는 신성 로마제국을 기독교 세계의 중심이라 선포하는 것이기도 했다. 루이9세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매주 목요일마다 가난한 사람들의 발을 씻겨 주었고, 매주 금요일마다 파리 시민들에게 성물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는 이 성물을 성소에 보관함으로써, 파리와 프랑스 왕국이 중세 유럽 속 확실한 존재로 남길 바랐다. 루이9세의 야망은 파리를 로마에 이어 그리스도교국의 두 번째 수도, 즉 '새 예루살렘'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즉 생트 샤펠을 건축한 것은 루이9세의 신앙적 행위뿐만이 아닌, 왕의 정치적 행위이기도 했다.

생트 샤펠 /flickr

생트 샤펠은 왕조가 바뀌는 동안에도 꾸준히 존경을 받았지만, 1400년대 이후부터는 샹트 샤펠에서 왕실 결혼식이나 대관식이 열리지 않았다. 이후 생트 샤펠은 루이14세 시대까지 장례식이 매우 성대하게 치러졌다. 1774년 루이15세가 사망한 후 장례식의 연설자 선정과 조문객 명단 작성 권리를 두고 여러 분쟁이 있은 후부터 루이16세는 생트 샤펠에서 장례식을 여는 것을 금지했다. 또한 18세기 들어 계몽주의 철학은 성물의 진위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고 유물에 대한 숭배를 불신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후 일어난 프랑스 혁명은 생트 샤펠에 큰 타격을 주었다. 왕정을 상징했던 생트 샤펠은 프랑스 혁명가들의 첫 번째 표적 중 하나였다. 무대를 장식했던 동상들은 프랑스 혁명 당시 손상되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다만 가시관은 보존되어 1806년 노트르담 대성당의 보물로 편입되었다. 생트 샤펠은 프랑스 혁명 이후 더 이상 예배에 사용되지 않았고,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밀가루 창고로 사용되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의 일부는 영국으로 운송되어 미술 시장에 판매되었다. 

장미꽃이 피어나는 듯한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 /unsplash
단연 걸작인 스테인드글라스 /unsplash

생트 샤펠은 19세기에 복원되었는데 상부 예배당은 원래 건물의 설계를 기반으로 복원했지만 하부 예배당은 기록이 부족해 재창조된 부분이 많다고 한다. 총 15개의 스테드글라스 창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1113개 장면이 담긴 스테인드 글라스 장문들은 파리에 성물이 도착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113개의 장면 중 720개가 원본이라고 한다. 즉 창문의 2/3은 건물이 지어졌을 때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하며, 화려한 장미 스타일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루이9세가 지배하던 왕조 시절을 이야기한다.


유리창은 문맹률이 낮은 사람들을 위해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달했다고 한다. 샤르트르 대성당에서 일했던 최고의 장인들이 왕의 명을 받아 생트 샤펠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맡았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생트 샤펠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잘 보존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창문을 구경하기 위해 매년 평균 90만명의 관람객이 이 곳을 방문한다고 한다. 

하부 예배당 /flickr
역시나 아치형 구조가 눈에 띈다 /flickr

성모 마리아에게 헌정한 생트 샤펠의 하부 예배당은 한때 궁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하부 예배당은 조명이 없어 비치는 햇빛만으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오면 정말 천국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도록 설계되었다. 관람객들은 하부 예배당에서 시작하는 나선형 계단을 올라 상부 예배당으로 향한다. 

상부 예배당 /unsplash

하부 예배당과 상반된, 위쪽에 위치한 상부 예배당은 십자가 유물이 있는 곳으로 작은 문을 통해 팔레 왕궁의 1층과 연결되어 있다. 당시 상부 예배당에 대한 접근은 왕실 귀족들에게만 허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상부 예배당은 그리스도의 성물을 모시는 자리였고, 왕과 귀빈을 위한 자리기도 했다. 

사도상 /flickr
천장의 아치형 구조 /unsplash

상부 예배당은 100가지가 넘는 식물 모티브가 기둥을 장식하고 있으며 교회의 기둥인 12개의 사도상이 눈에 띈다. 이 중 6개는 복제품이다. 높다란 건축물,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로 이루어진 창문, 따뜻한 색으로 빛나는 조명은 하부 예배당과 커다란 대조를 이룬다. 특히 가느다란 기둥들이 받치고 있는 늑골 모양의 아치형 천장은 마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생트 샤펠 /unsplash

오늘날 생트 샤펠은 주로 공연을 여는 데에 쓰이며, 일 년에 한 번 성 이브 축일에는 미사가 열린다고 한다. 노트르담 대성당, 샤르트르 대성당과 함께 고딕 예술의 대표적인 유적지 하나로 존재한다. 생트 샤펠은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비치는 빛과 함께 예루살렘에 관한 건축물이라는 것에 대한 루이9세의 꿈이 성공적으로 실현된 곳이기도 하다. 또한 건축, 조각, 회화, 스테인드글라스, 음악 등 모든 방면에서의 예술이 훌륭히 융합된 결과물이라는 평을 받는다.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으로 둘러싸인 생트 샤펠의 한가운데에 서 있게 된다면, 어쩌면 드넓은 천국 속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온 것 같은 착각을 받게 될 것이다.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