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분 만에 도난당한 루브르 유물, 돌아올 수 있을까

루브르 박물관에서 8분 만에 1,400억 원대 왕실 보석이 도난됐다. 인터폴까지 나선 대규모 수색, 과연 되찾을 수 있을까.

지난달 세계 최대의 미술관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 허술하게 뚫려버렸다. 박물관이 오픈한 지 30분 만에, 범인들은 외벽에 사다리차로 접근해 티아라와 귀걸이, 목걸이 등 19세기 왕실 보석들을 훔쳐 갔다.

국제형사경찰기구 인터폴에 등록된 루브르 박물관 도난 유물 / 인터폴

국제형사경찰기구 인터폴에 등록된 루브르 박물관 도난 유물 / 인터폴

희대의 도난 사건이기도 하지만, 세계 문화유산을 보유한 루브르 박물관의 보안 체계에 의문을 남겼다. 이는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문화재 도난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으며, 이미 해외에는 약 24만 점의 우리 문화재가 국내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도난 문화재를 회수하고, 문화재 도난을 예방할 수 있을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도난당한 유물 대부분 19세기 왕실 보석

지난달 19일 루브르 박물관 아폴론 갤러리에서 발생한 이번 도난 사건은 박물관 개관 후, 30분 만인 오전 9시 30분경 발생했다. 해당 사실이 밝혀진 후, 박물관 측은 곧바로 폐쇄 조치를 내리고 관람객을 내보냈다.

아폴론 갤러리 전경 / 위키미디어 (Wilfredo Rafael Rodriguez Hernandez)

아폴론 갤러리 전경 / 위키미디어 (Wilfredo Rafael Rodriguez Hernandez)

직접 침입한 범인 4명은 톱과 장비 등을 갖고 조끼를 입은 채 인부로 위장했다. 기계식 리프트를 1층에 주차해, 창문으로 올라가 내부로 침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경비원을 위협한 후, 전시실의 유리를 절단하고 유물을 훔쳐 도망쳤다.


프랑스 수사 당국이 현재까지 체포한 용의자는 총 7명이다. 1차로 검거한 2명과 2차 검거자 5명 중 3명이 직접 침입한 4인이며, 나머지는 공범 또는 조력자로 알려졌다. 직접 침입한 용의자 중 1명만 쫓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범행을 시인했으며, 최대 15년 징역형과 벌금형 등을 받을 것으로 전해졌다.

범인들이 도주과정에서 흘리고 간 외제니 황후의 티아라 / 위키미디어 (David Liuzzo)

범인들이 도주과정에서 흘리고 간 외제니 황후의 티아라 / 위키미디어 (David Liuzzo)

이날 도난당한 유물은 총 9개였다. 이 중 1개인 외제니 황후의 티아라는 도난당했다가 범인들이 도주 과정에서 흘린 것을 발견했다. 심각하게 훼손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어느 정도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외제니 황후의 티아라는 나폴레옹 3세의 왕후인 외제니 드 몽티조의 것으로, 1855년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특별히 제작된 것이다. 금으로 만들어진 관은 독수리와 당초무늬와 함께 다이아몬드, 에메랄드로 장식돼 있다. 1988년 경매에 나와 로베르토 폴로가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제니 황후의 진주 티아라 / 위키미디어 (Jean-Pierre Dalbéra)

외제니 황후의 진주 티아라 / 위키미디어 (Jean-Pierre Dalbéra)

외제니 황후가 티아라를 쓰고 있는 초상화 / 위키미디어

외제니 황후가 티아라를 쓰고 있는 초상화 / 위키미디어

외제니 황후의 또 다른 티아라인 진주 티아라도 도난품 중의 하나다. 프랑스 보석상이던 알렉상드르 가브리엘 레모니에가 나폴레옹 3세와의 결혼을 기념해 제작한 것이다. 은에 금을 덧입혀 세팅하고, 212개의 진주와 1,998개의 올드컷 다이아몬드로 장식됐다.

외제니 황후의 대형 코르사주 브로치 / 위키미디어 (Shonagon)

외제니 황후의 대형 코르사주 브로치 / 위키미디어 (Shonagon)

외제니 황후가 소유했던 보석이 대부분 도난당했는데, 성유물 브로치와 대형 코르사주 브로치 2종이 있다. 이중 대형 코르사주 브로치는 프랑스 보석상이자 금 세공사인 프랑수아 크라메르가 만들었다. 1855년 제작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 브로치는 커다란 리본 형태로, 길이 22.2cm, 너비 10.5cm, 두께 3.5cm로 브로치라고 하기엔 큰 사이즈다. 전체적으로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점이 돋보이는 장신구다.

사파이어 세트 중 귀걸이 / 위키미디어 (Tangopaso)

사파이어 세트 중 귀걸이 / 위키미디어 (Tangopaso)

사파이어 세트 중 목걸이 / 위키미디어 (Tangopaso)

사파이어 세트 중 목걸이 / 위키미디어 (Tangopaso)

사파이어 세트 중 티아라 / 위키미디어 (Shonagon)

사파이어 세트 중 티아라 / 위키미디어 (Shonagon)

마리 아멜리 왕비의 초상화 / 위키미디어

마리 아멜리 왕비의 초상화 속에서 사파이어 주얼리 세트를 발견할 수 있다 / 위키미디어

프랑스의 마리 아멜리 왕비와 네덜란드의 오르탕스 왕비가 소유했던 사파이어 세트 중 귀걸이와 목걸이, 티아라도 포함됐다. 해당 세트는 티아라, 목걸이, 귀걸이, 큰 브로치 1개, 작은 브로치 2개, 빗, 팔찌 2개로 구성됐다. 스리랑카산 사파이어가 세팅됐으며, 주변은 다이아몬드로 둘러싸여 있다.

에메랄드 귀걸이 / 위키미디어 (Shonagon)

에메랄드 귀걸이 / 위키미디어 (Shonagon)

에메랄드 목걸이 / 위키미디어 (Shonagon)

에메랄드 목걸이 / 위키미디어 (Shonagon)

마리 루이즈 황후의 초상화 / 위키미디어

마리 루이즈 황후의 초상화 / 위키미디어

나폴레옹 1세의 왕후인 마리 루이즈 황후의 에메랄드 귀걸이와 목걸이도 도난당했다. 이 세트는 프랑스 보석상 프랑수아 레그노 니토가 제작한 것으로, 나폴레옹의 결혼선물로 알려져 있다. 초상화에서도 황후가 착용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 검찰에 따르면, 해당 유물들의 가치는 약 8,800만 유로(한화로 약 1,400~1,500억 원 이상)로 추정된다.

모나리자 도난에 이은 ‘최악의 사건’

이번 도난 사건을 두고, 프랑스 현지에서도 비난이 쏟아지고 있으며, 무려 115년 전인 1911년 있었던 모나리자 도난 사건이 회자될 정도로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는 루브르 박물관의 보안 시스템에도 큰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도난당해 비어 있던 모나리자의 자리 / 위키미디어

도난당해 비어 있던 모나리자의 자리 / 위키미디어

1914년 반환된 모나리자의 귀환을 알리는 신문 기사 / 위키미디어

1914년 반환된 모나리자의 귀환을 알리는 신문 기사 / 위키미디어

모나리자 도난 사건도 도난당한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었다. 당시 화가 루이 베루드가 모나리자 모작을 위해 방문했을 때 도난 사실을 알게 됐는데, 사진 촬영을 위해 옮겨진 줄 알았다고 한다. 조사를 위해 일주일이나 폐관했으며, 범인은 직원이었던 빈첸초 페루자로 밝혀졌다.


범인은 박물관이 문을 닫은 후, 옷장에 숨어있다가 외투에 그림을 숨겨 걸어 나오는 방식으로 모나리자를 빼돌렸다고 한다. 그리고 무려 2년여간 집 난로 밑에 숨겨두었다가 우피치 미술관에 판매하려고 했다가 체포됐다. 그 후 모나리자가 루브르로 돌아온 것은 1914년 1월이다.

19일 도난 당시 ‘특별한 사유로 휴관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 루브르 박물관 X 갈무리

19일 도난 당시 ‘특별한 사유로 휴관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 루브르 박물관 X 갈무리

이렇게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로 CCTV 등 시스템 노후화와 부재, 감시 인력 부족, 정부의 예산 집행 지연 등이 거론되고 있다.


로랑스 데카르 루브르박물관장은 청문회에서 “외부에 카메라가 여러 대 있지만, 노후화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장비가 매우 부족해 외벽 전체를 감시하지 못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 범인들이 침입한 지점을 비추지 못하는 등 사각지대가 있음이 알려졌다. 때문에 범인들이 쉽게 사다리차를 대고 침입할 수 있었다.

이번 도난 사건은 CCTV와 인력 부족, 재정 부족 등 다양한 문제점이 낳은 결과다 / AI가 생성한 이미지 (Google Gemini)

이번 도난 사건은 CCTV와 인력 부족, 재정 부족 등 다양한 문제점이 낳은 결과다 / AI가 생성한 이미지 (Google Gemini)

또한, 현장을 감시하는 인력 부족과 근무 태만도 지적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루브르 박물관 감시 인력은 190명이 감소했으며, 도난 사고가 발생한 시간에는 6명이 감시해야 했지만, 개장 30분이 지난 첫 휴식 시간에는 4명만 근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런 허점은 직원이 아니면 쉽게 알 수 없다. 때문에 수사 당국은 박물관 보안팀 직원과 공모했을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실제로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한 결과, 보안과 관련된 정보가 전달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가장 본질적인 부분은 정부의 예산 집행이었다. 라시다 다티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지난 40년 동안 대형 박물관의 보안 강화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며 박물관 장비와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부족했음을 지적했다.


현재 프랑스의 재정위기 상황과 맞물리면서, 보안 시스템 현대화를 위한 예산 집행도 지연됐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X 갈무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X 갈무리

이번 도난 사건 하루 뒤인 20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SNS를 통해 보안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해당 글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발생한 도난 사건은 우리의 역사적 유산을 공격한 것”이라며 “1월에 시작된 ‘루브르 신르네상스 프로젝트’에는 보안 강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이로써 우리의 기억과 문화를 이루는 것들을 보존하고 지킬 것을 보장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루브르 박물관 전경 / 루브르 박물관 X

루브르 박물관 전경 / 루브르 박물관 X

이후 프랑스 정부의 대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상황이 됐다. 프랑스 문화부는 전국 문화기관의 보안시스템을 전수조사할 것을 지시했으며, 루브르 박물관 측은 박물관 내에 파출소를 설치하고, 차량 진입을 차단하는 장벽을 외부에 설치할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추가 도난을 예방하기 위해 아폴론 갤러리의 보석 등은 프랑스 중앙은행 지하 수장고로 이관했다.

도난당한 유물은 어떻게 되나

현재 프랑스 정부와 수사 당국은 100명의 특별 수사팀을 구성해 도난당한 유물을 되찾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유로폴 등 국제 경찰과의 공조를 통해 도난품의 밀반출과 거래 경로를 추적 중이며, 체포된 범인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도난당한 유물이나 문화재, 그림 등은 암시장(Black Market)에서 거래된다 / AI가 생성한 이미지 (Google Gemini)

도난당한 유물이나 문화재, 그림 등은 암시장(Black Market)에서 거래된다 / AI가 생성한 이미지 (Google Gemini)

그렇다면, 보통 도난당한 유물이나 문화재는 어떤 경로로 처리될까. 보통은 ‘Black Market’이라고 불리는 암시장에서 소수의 컬렉터, 장물아비, 범죄 조직 등에 거래된다.


본격적인 거래가 이뤄지기 전, 도난품은 ‘장물’로서 브로커에게 전달된다. 관련된 서류를 조작하거나 복제품을 만들기도 하며, 유물이 분해되거나 재가공 되기도 한다. 특히, 이번에 도난당한 보석들은 알려졌기 때문에 원형 그대로 거래될 가능성이 적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후 암시장 거래를 위해 동유럽-중동-아시아 경로로 이동하는데, 자유무역항인 홍콩, 싱가포르가 주요 허브로 거론된다. 이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프랑스 정부는 막대한 보험료 때문에 문화재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고 설명했다. 기사와 관련없는 이미지 / pixabay

프랑스 정부는 막대한 보험료 때문에 문화재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고 설명했다. 기사와 관련없는 이미지 / pixabay

또는, 해당 유물이나 그림, 문화재에 가입된 보험금을 노리고 협상 또는 협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에 도난당한 물품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 소장품이라는 점에서 민간 보험은 막대한 보험료가 책정되기 때문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며, 국가가 보험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손실액은 국가 재정으로 감당한다고 프랑스 정부가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 프랑스 법규상 작품 대여나 이동에만 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어 있으며, 내부 소장품은 해당하지 않아, 이번 도난으로 인한 손실액이 모두 국가 재정으로 남게 돼,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2번이나 도난당했던 뭉크의 〈절규〉 / 위키미디어

2번이나 도난당했던 뭉크의 〈절규〉 / 위키미디어

도난당한 유물이나 작품 중에는 암시장이나 협상을 통해 회수된 사례로 아주 드물게 발견된다. 유례없이 2번이나 도난당했던 뭉크의 〈절규〉는 1994년과 2004년 도난 당시 경찰이 암시장 거래에 직접적으로 개입, 암시장 처분 정황을 포착해 회수됐다.


2019년 독일 드레스덴 왕궁 내에 있는 그린 볼트 박물관에서 도난당한 보석 장신구 3개와 보석 21점은 체포한 용의자들과 협상 끝에 대부분을 회수했다.

韓 문화재 환수도 제자리 걸음

이번 도난 사건은 프랑스의 안일한 대처만 문제 삼을 수 없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내용을 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도난당한 문화재는 12,749건이었으며, 회수된 것은 15.5%인 1,972건으로 나타났다.

최근 5년간 국외 소재 한국 문화재 추정 규모 / 국회 영상회의록시스템 갈무리

최근 5년간 국외 소재 한국 문화재 추정 규모 / 국회 영상회의록시스템 갈무리

조금 다른 사례지만, 올해도 문화재 환수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지난달 16일에 있었던 국가유산청 국정감사에서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은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는 올해 기준 24만 7,718여 점이지만, 환수된 것은 최근 10년간 1,288건, 최근 5년간 100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비율로 환산하면 5% 수준이다.


또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만, 개인이 해외 경매를 통해 문화재를 다시 국내로 환수했지만, 도난 문화재를 이유로 몰수한 사례도 알려졌다. 정 의원은 “일반인이 경매를 통해 문화재를 입수하면, 국가유산청은 도난 문화재라는 이유로 몰수한다”며 “도난 문화재라고 딱지를 붙여버리면 양성화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장렬왕후 어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인조계비 장렬왕후 가상존호 옥보를 참고로 생성함 / AI가 생성한 이미지 (Google Gemini)

장렬왕후 어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인조계비 장렬왕후 가상존호 옥보를 참고로 생성함 / AI가 생성한 이미지 (Google Gemini)

문제가 된 장렬왕후 어보는 숙종 2년인 1676년 인조의 계비인 장렬왕후 조 씨에게 ‘휘헌(徽獻)’이라는 존호를 올릴 때 제작된 것으로, 6.25 전쟁 당시 대거 도난당한 것 중 하나다. 이를 2016년 문화재 수집가인 정진호 씨가 미국의 온라인 경매 사이트에서 약 1,070만 원에 낙찰받았다. 당시 사이트에 올라온 이름은 ‘일본 석재 거북이’였다고 한다.


정 씨는 해당 물건의 진품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했으며, 진품임을 확인한 후,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의 유물 매수 공고에 따라 국립고궁박물관에 약 2억 5,000만 원에 매수할 것을 신청하고 인도했다.


박물관과 국가유산청은 어보를 심의한 결과, 도난당한 어보로 확인, 도난 문화재이며 어보가 조선시대 제작된 국가 소유의 문화재라는 이유로 매입을 거부했다.


이에 정 씨가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도난품을 취득한 경우는 선의취득자여도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미국 버지니아주 법률을 인용하며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법원이 화해 권고 결정으로 국가유산청에 보상금 5,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권고했지만, 선례를 남길 수 없다는 이유로 지급하지 않았다. 당시 언론 등은 이를 두고 ‘몰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호조태환권 원판 / 국립고궁박물관

호조태환권 원판 / 국립고궁박물관

호조태환권 원판은 조선 최초의 근대 지폐인 ‘호조태환권’ 인쇄를 위한 동판으로, 고종 때인 1892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의미가 있어 국보급 문화재로 여겨지지만, 이 역시도 6.25 전쟁 당시 도난당해 해외로 유출됐다.


지난 2010년 문화재 수집가 윤원영 씨가 미국의 한 경매 사이트에서 약 3,000만 원에 호조태환권 원판을 낙찰받았다. 이후 주미한국대사관 법무협력관 검사에게 해당 문화재는 한국 정부 소유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으나, 이후 대사관에서 추가 연락이 없어 잔금을 치르고 인수했다.


인수 3년 후인 2013년, 미국국토안보수사국(HSI)에 장물취득 혐의로 체포됐으나 증거불충분으로 기소 철회됐으며,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원판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역시도 사실상 ‘강제 환수’, ‘몰수’라며 부정적인 여론이 강했다.

해외에서 돌아오지 못한 우리 문화유산은 약 24만 점에 달한다 /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홈페이지

해외에서 돌아오지 못한 우리 문화유산은 약 24만 점에 달한다 /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홈페이지

이에 정부와 국회에서도 법 개정을 시도했으나 무산됐다. 2021년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3명이 문화재보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폐기됐다.


당시 개정안은 도난 문화재라는 사실을 모르고 개인이 문화재를 소유했을 때 ‘선의(善意)취득’으로 인정하고 몰수하지 않도록 하던 기존 법안을 고쳐, 출처 및 취득 경위 등에 대한 자료를 제출해 국가유산청장(당시 문화재청장)의 확인을 받은 경우에만 선의로 취득한 것으로 추정해 문화재 몰수의 예외로 인정하도록 했다.


국가유산청도 해외에 있는 문화유산을 환수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2012년에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을 설립해, 국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현황 조사, 반출 경위 등 연구, 환수·활용 전략 및 정책 개발 등 국외소재문화유산 관련 사업을 종합적·체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2023년 기준, 협상·매입·기증 등의 방식으로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2,484점의 유산과 관련 자료를 환수했다. 지난해에는 프랑스 파리에 유럽 거점 사무소를 개설해, 유럽 소재 한국 문화유산의 조사·환수·활용 기능을 강화하기도 했다. 지난해 기준 유럽에 있는 한국 문화유산은 약 4만 9,161점이다.

올해 발행된 「다시 찾은 소중한 문화유산」 기념우표 / 국가유산청

올해 발행된 「다시 찾은 소중한 문화유산」 기념우표 / 국가유산청

올해 1월에는 환수 문화유산 4종의 사진을 담은 「다시 찾은 소중한 문화유산」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2021년부터 이어진 기념우표 발행은 정부의 문화유산 환수 정책의 적극성을 알리는 동시에 국민에게 국외소재문화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알리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루브르 박물관의 도난품은 인터폴까지 나서서 수색 중이다. 지구 어딘가에서 원래의 모습 혹은 이미 해체된 모습으로 존재할 이 유물들은, 암시장에서는 금전적 가치만으로 숫자처럼 거래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역사와 정체성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희망이 없다’는 말처럼, 문화재도 역사의 한 뿌리다. 이번 사건이 ‘최악의 사건’으로 남지 않도록 실질적이면서 선제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전은지 기자

2025.11.12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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