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산을 왜 달려요? 100km씩이나?”…맞는 말이다 [이우성의 달리기]
평지만 달리던 MZ세대가 왜 산으로 향할까? 자연 속에서 뛰는 ‘트레일 러닝’의 매력과 2030이 이 운동에 빠져드는 이유, 그리고 세계 대회까지 확장된 러닝 문화의 흐름을 소개합니다.
![]() 트레일 러닝팀 ‘뽀꼬아뽀꼬’의 리더 성산희씨가 트레일 러닝 대회에서 밝은 표정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성산희 제공 |
산을 달린다고 하면 대부분 이렇게 반응한다. “평지를 달리는 것도 힘든데 산을 어떻게?” 합리적인 의심이다. 그래서 굳이 산을 달리겠다는 의지를 품으려면 마법의 힘이 필요하다.
4년 전 처음 산 달리기, 즉 트레일 러닝을 했다. 함께 ‘로드’ 달리기를 하는 친구들과 지하철 광나루역에 모였다. 아차산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트레일 러닝을 많이 해본 선생님이 오셨다. 갓 서른이 되어 보이는 분이었다. 웃는 얼굴이 요정 같았다. 이름이 성산희였다. ‘산’이 들어가네, ‘희’는 기쁘지, 혼잣말한 기억이 난다. “여러분, 오르막길에선 걸을 거고, 다른 구간에선 천천히 가볍게 달릴 거예요.” ‘산의 기쁨’이 말했다.
![]()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트레일 러닝 대회 ‘유티엠비’에 참가한 김성민씨가 찍은 대회 풍경. 다니엘 브라이트(Daniel Bright) 제공 |
정말로, 내리막길에서 살살 달리고 오르막길에선 그 리듬을 잘 살려 빠르게 걸으니 힘이 들지 않았고, 묘하게 흥도 났다. 강약 사이를 부드럽게 오가는 조화, 산의 흐름과 몸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느낌. 울퉁불퉁한 지면에 시시각각 적응하면서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아차산 정상에서 노을이 태양을 서서히 거두어들이는 장면을 보았다. 해리 포터가 유년을 보낸 호그와트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아도 마법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자연을 보면서 달리는 것과 자연의 일부가 되는 건 달라요. 하나가 되는 느낌이에요.” 성산희는 현재 트레일 러닝팀 ‘뽀꼬아뽀꼬’(Poco a Poco)의 리더를 맡고 있다. 10주 단위로 운영하는 이 모임은 2기 활동이 종료되었다. 회원이 되려는 이들에겐 또 다른 마법의 힘이 필요하다. 신청자가 항상 정원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최근 2~3년 사이 트레일 러닝의 인기가 높아졌죠. 젊은 층이 압도적으로 늘었어요. 지금 시대가 원하는 건 피로 사회에서 벗어나 자기다움을 찾는 거잖아요. 트레일 러닝이 그런 특징을 갖고 있어요. 산은 다정하고 자유로워요.” 산에 대해 말할 때 산희는 빛이 난다. 마치 그의 내면이 산에서 경험한 기쁨으로 꽉 차 있는 것 같다.
![]() 트레일 러닝팀 ‘뽀꼬아뽀꼬’. 성산희 제공 |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산을 달린다고? 대회도 있다고? 저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어요.” 등산 전문 매체 ‘월간 산’의 윤성중 기자는 12년 전 트레일 러닝에 대해 처음 알았다. “산을 다루는 기자니까 산과 관련된 건 결국 다 해봐요. 그래서 7년 전에 의정부에서 열린 ‘코리아50K’ 대회에 나갔어요. 산을 50㎞ 달리는 거였죠.” 그는 트레일 러닝을 처음 알게 된 때와는 다르게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사이 산을 많이 탔고, 암벽등반도 즐겼으며, 도로 달리기 경험도 쌓았다.
그가 대회 참가 얘기를 이어 했다. “10㎞ 지점에서 기권했어요. 허벅지에 쥐가 나더라고요.” 하지만 기권은 ‘오늘의 레이스’가 조금 일찍 끝났다는 것을 선언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이후 그는 여러 차례 트레일 러닝 대회에 참가했다. 결승선을 통과하지 못한 적도 꽤 있었다.
지난 9월 마지막 주 주말엔 전북 장수에서 열린 ‘장수 트레일레이스100K’ 대회에 출전했다. 그의 첫 100㎞ 도전이었다. “성공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발목 부상을 당해서 포기했어요. ‘이젠 다시 안 해’라고 다짐했어요. 훈련 과정이 힘들었거든요.” 그의 도전은 이렇게 끝날까?
![]() 등산 전문 매체 ‘월간 산’의 윤성중 기자. 윤성중 제공 |
“며칠 지나니까 마음이 바뀌더라고요. 나무들 사이를 헤치며 나아가는 쾌감, 계곡의 물소리, 흙과 풀 냄새, 모든 게 생각났어요. 다시 느끼고 싶었죠.”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산이 좋으면 걸어서 올라가도 되잖아요?” 그가 대답했다. “그것도 좋죠. 하지만 산을 달리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두번 세번, 열번 스무번, 끄덕였다. 그 말의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산에서는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을 때 발견하는 건 내 안의 풍경이다. 그것이 외부의 풍경만큼이나 아름답다는 걸 깨달을 때 생명을 지닌 한 개체로서 순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러니 이 여정에서 실패는 없다. 숲속을 달리는 동안 수시로 이러한 마법의 순간이 찾아온다. 이건 단편적인 예찬이 아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하고 권위 있는 트레일 러닝 대회는 ‘유티엠비’(UTMB, Ultra-Trail du Mont-Blanc)다.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린다. 샤모니는 프랑스 동부와 스위스, 이탈리아 국경이 맞닿은 알프스산맥 중심부다. 등반가, 산악인, 탐험가들이 모이는 성지다.
이곳에 서유럽 최고봉인 몽블랑산이 있다. 이 대회 기간엔 다양한 종목이 열리는데 가장 긴 거리 종목을 같은 이름 ‘유티엠비’라고 부른다. 샤모니를 출발해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를 거쳐 다시 샤모니로 돌아오는 174㎞ 거리의 레이스다.
![]() 프랑스 동부와 스위스, 이탈리아 국경이 맞닿은 알프스산맥 중심부. 다니엘 브라이트(Daniel Bright) 제공 |
이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하기 위해선 ‘스톤’을 모아야 한다. 포인트 같은 건데, 한국에선 제주도에서 열리는 ‘트랜스 제주’가 유일하게 스톤을 주는 대회다. 100㎞ 코스를 완주하면 3개, 50㎞를 완주하면 2개, 더 짧은 거리는 1개를 준다. 러닝용품 회사 직원 김성민은 지난 8월에 열린 ‘2025 유티엠비’에 참가했다. “지난해 ‘트랜스 제주’ 100㎞ 코스를 완주해서 스톤 3개를 받았어요. 그전에 받아둔 것도 있어서 ‘유티엠비’ 61㎞ 코스에 참가 신청을 했어요.”
성민은 6년 전에 처음 트레일 러닝을 시작했다. 당시 주변 사람들이 ‘유티엠비’에 출전하는 것을 보고 동경하게 되었다. “전세계 최고의 대회니까요.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모이고요. 대회 기간 동안 샤모니는 축제예요.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곳에 온 선수들을 축하해주고 응원해줘요. 와, 이런 세계가 있구나, 느꼈어요. 꿈이 이루어진 거죠.”
나는 질문할 게 없었다. ‘유티엠비’에 다녀온 사람들은 눈 덮인 몽블랑산이 구름에 맞닿아 있는 풍경에 대해 말한다. 풍경의 마법에 빠진 사람은 그 기쁨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러니 듣는 나는 그저 감탄할 뿐이다.
![]() 프랑스 동부와 스위스, 이탈리아 국경이 맞닿은 알프스산맥 중심부. 다니엘 브라이트(Daniel Bright) 제공 |
성민이 말했다. “대회는 힘들었어요. 상승고도가 3400m예요. 초반 오르막이 끝이 안 났어요. 이렇게 긴 오르막이 있을 수가 있나, 하늘로 가는 건가, 싶을 만큼이요. 바위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유럽 선수들이 지나가면서 괜찮냐고 물어봐주더라고요. 수준이 굉장히 높다는 걸 깨달았어요. 조금 아쉬워요. 그들이랑 충분히 붙지를 못했어요. 제 실력이 못 미쳤어요. 다음엔 준비를 잘해 순위 경쟁을 해보고 싶어요.”
나는 지난해에 그가 ‘트랜스 제주’에서 100㎞를 완주하고 돌아왔던 때를 떠올렸다. 그의 목표는 17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이었지만, 발목을 다쳐 20시간 걸렸다. 그때 그는 말했다. “트레일 러닝이 좋기는 하지만 굳이 100㎞씩 뛸 필요가 있을까요?” 당시 그는 회의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일까? “아, 그때는 그랬죠. 하지만 저는 ‘유티엠비’에 다시 도전할 거고, 그때는 101㎞ 코스에 나갈 거예요.”
![]() ‘2025 유티엠비’에 참가한 김성민씨. 다니엘 브라이트(Daniel Bright) 제공 |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변덕스러운 이 청년을 이상하다고 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굳이 100㎞씩이나 뛰는 건 이해가 잘 안된다. “결승선이 보였어요. 저랑 계속 엎치락뒤치락하던 노인분이 계셨는데 제가 몇걸음 앞서서 들어왔어요. 그분이 이어 들어오신 후에, 저를 꼭 안아주셨어요. ‘수고했다’고, ‘수고했다’고 여러번 말해주시면서요.” 그 순간 둘은 서로를 이해했을 것이다.
‘산을 굳이 달릴 필요가 있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모두가 달릴 필요는 없다. 하물며 산을 달리는 건 운동이라기보다 취미나 취향에 가깝다. 혹은 문화적 현상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마음은 근사한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사랑하는 친구를 떠올리는 것과 비슷하다. 다음엔 같이 가자고 하고 싶다. 가을이야. 산 풍경이 참 예뻐. 나랑 달리러 갈래? ‘기쁨’이 오고 있다.
이우성 콘텐츠 제작사 미남컴퍼니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