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가 쏘아 올린 ‘청바지 어게인’

찢어진 청바지 입고 한가위 접수한 나훈아

청바지는 본래 노동자 계급의 옷

최근 유행은 통 크고 신발 위로 주름지는 것

뒷주머니 크기, 엉덩이보다 크거나 작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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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까지 청바지에는 벨트 고리가 없었다. 당시엔 벨트 대신 멜빵을 활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사진 리바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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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는 ‘대기획’이라는 타이틀처럼 대단했다. 정작 나훈아는 “손도 잡아보고 뭐가 좀 뷔야(보여야) 뭘 하지 눈빛도 잘 보이지도 않고 우짜면(어쩌면) 좋겠노”라고 아쉬워했지만 서울, 제주, 일본, 덴마크, 오스트레일리아, 러시아, 짐바브웨까지 전 세계 1000명의 팬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중계한 방식은 비대면 시대가 낳은 장관이었다. 가장 놀라운 건 방송 시간이었다. 중간 광고 없는 2시간40분 공연이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 한 인간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가 티브이(TV)를 넘어 필자 앞에서도 일렁이는 듯했다. 당연히 온라인에서는 실시간으로 난리가 났다. ‘아버지가 내일 제사상에 올릴 수제 막걸리를 개봉하셨다’, ‘이로써 나훈아와 소크라테스는 공식적인 의형제가 됐다’, ‘남진은 (플)라톤형을 준비하고 있을 거다’ 등 공연 보랴 공연 피드백을 찾아보랴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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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의 한 장면. 사진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나훈아가 흰색 민소매 티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솟구치듯 점프하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힘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소스라쳤고 기어이 “뭐야 몸매가 왜 저렇게 좋아”라는 말을 육성으로 뱉고 말았다. 1947년생 남자 몸이 저러면 반칙 아닌가?(심지어 빠른 47년생이다.) 기원전 인물에게 호형호제하더니 시간의 법칙을 거스르기 시작한 걸까? 아버지뻘의 남자와 필자의 몸을 번갈아 비교하다가 곧 우울해졌다.


나훈아가 청바지를, 그것도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건 건강한 에너지를 시각화하기 위해서다.(사실 그는 젊었을 때도 이 복장을 자주 선보였다. 그 모습이 생전의 프레디 머큐리와 비슷해 보인다.) 체형을 가리기 위해 입는 그런 펑퍼짐한 청바지가 아니라 군살 없는 몸에 허리와 허벅지가 꼭 맞는 청바지는 건장하고 젊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이는 청바지의 역사와도 맞물려 있다.


청바지는 1873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광부를 비롯한 노동자 계급이 옷을 살 때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내구성이었다. 거친 일을 하다 보니 원단이 쉽게 해졌고, 바느질을 아무리 튼튼하게 해도 옷이 금세 뜯어졌기 때문이다. 돌과 흙에 의한 마찰에도 쉽게 해지지 않는 원단을 사용할 것. 반복하는 거친 동작에도 이음매가 쉽게 터지지 않게 재봉할 것. 이런 요구를 만족해줄 옷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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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통이 큰 청바지가 유행이다. 사진 무신사 제공

튼튼하고 두꺼운 원단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두꺼운 원단을 재봉하는 기술의 부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실로 꿰매는 대신 구리 리벳(두툼한 버섯 모양의 굵은 못)으로 원단을 연결하는 방법을 떠올린 이가 있었다. 그가 바로 리바이스의 설립자 리바이 스트라우스다. 리바이스가 여전히 청바지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각광 받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인 맥락 때문이다.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은 생전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종종 청바지를 발명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청바지는 획기적이고 실용적이다. 무심한 듯하면서 차분하다. 청바지는 단정함, 단순함 같은 내가 옷에서 바라는 모든 표현이 담겨 있다.” 실제로 청바지를 더하거나 뺄 것 없는 거의 완벽한 형태라고 말하는 이가 많다. 100년 전에 만든 청바지와 지금 시중에 파는 청바지 사이에 큰 차이가 없는 것이 그 증거다. 먼저 청바지에 리벳을 여전히 사용하는 점과 주머니 모양과 배열에 거의 변함이 없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청바지를 ‘진’(Jeans)’ 또는 ‘5 포켓 진’(5 Pocket Jeans)이라고 부른다. 이는 주머니가 5개가 달렸다는 뜻으로 청바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앞뒤로 주머니를 2개씩 배치하고 앞쪽 주머니 안에 작은 주머니를 하나 더 넣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워치 포켓’(Watch Pocket) 또는 ‘코인 포켓’(Coin Pocket)이라고 한다. 이름처럼 회중시계를 넣거나 동전이 생겼을 때 보관하기 위한 용도다. 더 이상 회중시계를 들고 다니지 않고, 동전도 거의 쓸 일 없는 요즘에도 이 주머니를 굳이 만들어 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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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주머니 안에 있는 작은 주머니를 ‘코인 포켓’ 또는 '워치 포켓'이라고 부른다. 사진 샌프란시스코 마켓 제공

청바지 앞섶은 버튼을 이용해 여닫는 방식과 지퍼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사용하기 편한 건 지퍼이지만, 굳이 버튼을 사용하는 이유 역시 청바지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의 모습을 최대한 계승하려는 노력 때문이다. 지금이야 지퍼가 지천으로 널려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한 것 같지만, 실제로 인류가 본격적으로 지퍼를 사용한 것은 고작 한 세기 전이다. 리바이스가 청바지에 지퍼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1950년대에 들어서다. 청바지 벨트 고리 역시 1920년대에 등장했는데, 벨트를 실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이때다. 그 전까지 벨트는 군대 유니폼 등에 활용하던 장식물이었다. 그럼 그 전에는 바지를 어떻게 동여맸느냐고? 벨트 대신에 멜빵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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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빠짐 가공한 청바지. 사진 바버샵 제공

패션 제품 중엔 실용적인 필요로 탄생해 오랫동안 특정 계층이 활용하다가 유명 인사가 착용한 모습에 대중이 호감을 느껴 유행한 경우가 더러 있다. 대표적인 것이 티셔츠다. 청바지 역시 유행하게 된 경위가 티셔츠와 매우 흡사하다.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말런 브랜도가 청바지를 입고 등장하면서 청바지의 지위가 달라진다. 말하자면 지저분한 노동복에서 남성미 넘치는 일상복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또 몇 년 후 제임스 딘이 <이유 없는 반항>에서 붉은색 재킷에 물 빠진 청바지를 입고 등장하면서 청바지의 인기는 그야말로 폭발한다. 두 영화 모두 1950년대 개봉했다는 것과 10~20대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이 의미심장한데, 실제로 1960년대 판매한 청바지를 보면 1950년대의 그것보다 통이 좁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청바지는 노동복이라 편해야 하고 이런 이유로 바지통이 꽤 넓었다. 하지만 청바지가 노동복이 아닌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구입 연령도 점차 낮아지며 몸매가 드러나는 쪽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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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유 없는 반항> 의 제임스 딘. 사진 수입사 제공

청바지는 나이와 국적을 넘어 누구나 입는 옷이지만, 모두가 잘 입는 옷은 아니다. 그건 청바지가 실루엣, 컬러, 세부 디자인 등에 따라 종류가 천차만별이라서 내게 꼭 맞는 제품을 찾기 어려워서다. 가장 흔히 하는 실수가 비싼 제품이거나 명품 브랜드면 좋을 거라는 기대다. 청바지는 브랜드에 따라 100만원에 육박하는 제품도 있다. 가격이 품질에 비례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발품을 팔고 꼭 직접 입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청바지를 사기 전 확인해야 할 사항을 몇 가지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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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비지 원단은 별도의 실밥이 보이지 않아 접어 입었을 때 깔끔한 인상을 준다. 사진 ETC 서울 제공

▲현재 유행하는 청바지는 통이 넓고 길이가 길어 신발 위쪽으로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생기는 1990년대 스타일이다. 하지만 꼭 유행에 따를 필요는 없다. 자신의 체형을 판단하는 일이 더 중요하며 만약 다리가 길어 보이고 싶다면 ‘슬림 스트레이트 핏’(너무 타이트하거나 펑퍼짐하지 않은 일자 바지)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허리와 길이 이외에 엉덩이와 허벅지 부분도 잘 맞는지 체크해야 한다. 뒷주머니의 크기 역시 자신의 엉덩이보다 지나치게 크거나 작지 않은지 확인해야 한다.


▲청바지 원단은 면 100%가 기본이지만, 경우에 따라 신축성이 있는 합성섬유를 섞기도 한다. 이 경우 움직임에 따라 원단이 조금씩 늘어나기 때문에 착용감이 편하다.


▲청바지는 물 빠짐 가공이 없는 청바지(흔히 ‘생지 청바지’라고 말하는 것)와 물 빠짐 가공을 한 청바지로 구분된다. 생지 청바지의 경우 입으면서 자연스러운 주름과 물 빠짐이 생긴다. 나만의 청바지를 만들 수 있다는 이유로 마니아들은 생지 청바지를 선호한다. 다만 세탁에 따라 색이 계속 변하는 걸 원치 않는다면 물 빠짐 가공이 된 청바지를 사는 게 좋다.


▲좋은 청바지 원단을 고르고 싶거든 원단을 뒤집어 안쪽에 셀비지(천을 짜거나 가공할 때 그것을 보호하거나 장식 목적으로 짠 천의 양쪽 가장자리) 라인이 있는지 확인한다. 셀비지 라인이 있다면 그건 셀비지 원단을 사용했다는 의미이고, 이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원단을 짰다는 뜻이다. 청바지 애호가가 셀비지 원단을 고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셀비지 라인은 바지를 접어 입을 때 심미적인 효과도 있다.


임건(<에스콰이어> 디지털 디렉터)
2020.10.2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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