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인가, 누가 아직도 사딸라!를 모르는가

[뉴미디어 만난 옛 TV]


“내가 립스틱 광고를 찍을 줄이야”

야인시대·태조 왕건 등 출연한 김영철

10대들에게 ‘사딸라’ 아저씨 등극

이순재도 햄버거·껌 광고 출연 10대들과 소통


순풍산부인과·하이킥 등

10분 내외 재편집한 옛프로그램들

뜨거운 조회수로 옛 스타들 재소환


강부자·권인하 등 뉴미디어 소통유튜브 인기는 연기처럼 사라져…

한겨레

“사딸라 아저씨다!” 요즘 배우 김영철은 어디를 가든 이렇게 불린다. 1953년생. 우리나이로 67살인데, 길을 지나는 10대들이 대뜸 “사딸라 아저씨~ 아저씨~” 하며 스스럼없이 그를 막아선다. 2002년 방영한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그가 노임 협상을 하며 외친 대사 ‘사딸라’(4달러)가 유튜브 등에서 인기를 얻으며 10대의 유행어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어린 친구들이 놀리나 싶어 싫었다”는데 요즘엔 “신기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덕분에 햄버거와 립스틱 광고까지 찍었다. 17년 전 한마디가 환갑 넘은 자신을 아이돌 뺨치는 ‘어른돌’로 만들어줄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새로운 매체를 통해 구시대 콘텐츠가 사랑받는 아이러니한 일들이 2019년 대중문화계를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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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철, 이순재…유튜브가 빚은 10대들의 ‘어른돌’

김영철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5년 전부터 영상이 조금씩 퍼지더니 최근에 폭발한 것 같다”며 “유튜브 등 새로운 매체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2000년 출연한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그가 연기한 궁예의 대사 “누구인가. 누가 지금 기침 소리를 내었어”도 엄청나게 패러디되고 있다. 립스틱 광고는 궁예의 이 대표적인 ‘관심법 대사’를 포인트 삼았다. “누구인가. 누가 지금 톤궁예를 하였어.” 톤과 궁예의 관심법을 합성한 신조어로 ‘발라보지 않아도 피부 색깔에 맞는 톤을 미리 추측한다’는 뜻이다. “내가 립스틱 광고를 찍을 줄이야! 입술이 두꺼워서 잘 어울리기는 하지만. 하하하.”


‘어른돌’은 김영철만이 아니다. 배우 이순재도 뉴미디어를 통해 ‘재발굴’됐다. 그는 1934년생. 한국 나이 86살에 10대들의 ‘공감 친구’가 됐다. 그가 출연한 2006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편집본이 유튜브에서 파도타기 중이다. 이순재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야동을 보는 등 자기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어른의 모습이 젊은 친구들에게 공감과 재미를 주며 동질감을 형성하는 것 같다. 본능적인 측면에선 노인이나 애들이나 다 똑같다”며 웃었다. 13년 전 자신이 나왔던 보험 광고를 패러디한 햄버거 광고에 출연해 “푸짐함 최대 보장! 지금 바로 주문하세요”를 외친다. 이순재는 최근 젊은층이 좋아하는 껌 광고에도 출연했다.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문화방송)에 나온 강부자도 축구를 소재로 온라인 채팅창에서 젊은층과 소통하면서 해외 축구의 어머니 ‘해머니’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뉴미디어는 ‘옛날 사람’들이 스스로 솟아오를 수 있는 기회의 장도 된다. 한동안 텔레비전에서 볼 수 없었던 가수 권인하는 유튜브에 개인 채널을 만들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벤의 ‘180도’, 윤종신의 ‘좋니’ 등 요즘 노래를 불러 올리는 ‘커버 유튜버’로 활약하는데 채널 구독자 수가 19만을 넘어선다. 최근 연 콘서트에서 80%가 20~30대 팬이었다고 한다. 인기에 힘입어 5월 디지털 싱글도 발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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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으로 ‘순풍’ 정도는 봐줘~야 인싸지!

‘어른돌’의 등장은 드라마나 예능을 비롯한 옛날 프로그램이 유튜브 등에서 다시 화제를 모으는 것에서 기인한다. 티브이 대신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10대들이 요즘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 바로 <순풍산부인과>(1998년)다. 유튜브에 관련 영상이 1000개 넘게 올라와 있다. 그중에 ‘레전드’로 꼽히는 ‘미달이 방학숙제’ 편은 19일 기준으로 조회수가 309만여건에 이른다. 영상을 보다가 미달에게 관심을 갖고 찾아보고 김성은이 인기를 얻는 식의 패턴이 반복된다.


유튜버들이 곳곳에서 찾은 영상들을 짧게 재편집해 올린 것이 유행처럼 번졌는데, 옛 프로그램이 화제를 모으면서 방송사도 ‘유물 발굴’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상파 3사는 자체적으로 유튜브 등 관련 채널을 운영하며 쌓아놓았던 자산을 백분 활용하고 있다. <한국방송>은 1980~90년대 인기를 끈 <가요톱텐>과 <토요대행진> 등 과거 음악 영상을 다시 볼 수 있는 ‘어겐 가요 톱텐’과 <유머 1번지> 등 개그프로그램을 올리는 ‘크큭티비’를 지난해 개설했다. <에스비에스>도 ‘에스비에스 나우’를 개설해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천국의 계단> 같은 예전 프로그램을 재편집해 올린다. <에스비에스> 쪽은 “예전 영상을 보고 싶다는 의견이 많아 시작했다”며 “<순풍산부인과> 이후 채널 구독자 수가 매일 1000명씩 증가했다”고 말했다. <문화방송>의 ‘엠비시 클래식’에서 소개하는 <거침없이 하이킥> ‘오분순삭’은 핵심만 추려줘 인기 만점이다. 극 중 황정음이 최다니엘의 ‘아는 여자’에서 ‘여자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5분 안에 소개한 것은 특히 반응이 뜨거웠다. ‘오분순삭’은 지난 2월 업로드 6개월 만에 누적 조회수 1억을 돌파했다.


그냥 영상만 올려놓던 것을 넘어 이제는 드라마 본방송을 보듯이 편집본을 예정된 시간에 공개하고 구독자들이 함께 보면서 실시간 채팅으로 즐기기도 한다. <에스비에스> 쪽은 “<천국의 계단>은 실시간 채팅을 하며 보는 것이 특히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에스비에스>는 <순풍산부인과> 미달 역의 김성은이 출연하는 라이브도 준비 중이다. 인기를 얻으면서 유튜브로 재가공된 ‘구콘텐츠’들은 수익적인 측면에서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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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라고 다 되나? 유튜브에 딱 맞는 재미 있어야

<순풍산부인과>를 좋아하는 20대 대학생 강승현은 “요즘은 거의 없는 대가족을 이해하게 되고, 지금 배우들의 과거 모습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동네 한 바퀴>(한국방송2)에 출연 중인 김영철은 “‘사딸라’ 인기를 계기로 청소년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며 “올드한 인물과 콘텐츠들이 뉴미디어로 사랑받으면서 세대 통합이 이뤄지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그러나 옛날 콘텐츠라고 10대가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인기 있는 콘텐츠들은 마치 10년, 20년 뒤를 내다본 듯 뉴미디어에 딱 맞는 포인트가 있다. 시트콤은 많지만 유독 <순풍산부인과> <…하이킥> <웬만해선…>은 10분 남짓의 짧은 영상으로 편집하기 좋아 유튜브 등에 안성맞춤이다. 세 프로그램을 모두 연출한 김병욱 피디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광고 등을 빼면 본방송 시간이 27분 정도인데 늘 두가지 이야기를 심어뒀다. 이를 한가지 이야기로 편집하면 요즘 애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10분 남짓이 된다. 편집하기 좋고, 짧은 분량이라도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있어 유독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김 피디는 “전화기 같은 옛날 소품들이 촌스러워 보일 순 있지만 유행어 등 당시 반짝 인기 있던 흐름에 기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봐도 이해하기 쉽다는 점도 인기 요인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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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연예인들한테서는 잘 볼 수 없는 특색 있는 연기나 가창 방법도 10대들의 눈길을 끈다. 김영철은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어’가 인기 있는 이유를 “내가 들어도 뭔가 목소리 톤이 색다르긴 하다. 당시에도 좀 다르게 해보고 싶어서 평범하지 않은 시도를 했다”고 설명했다. 권인하의 유튜브 채널을 즐겨 본다는 한 고등학생 누리꾼은 인터넷 댓글에서 “지금 가수들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목소리가 신선하고 그런 목소리로 요즘 노래를 너무 잘 소화하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이런 콘텐츠들은 10대들이 좋아하는 ‘짤방’ 등에 요긴하도록 편집하기에 쉽다는 점도 인기를 끄는 데 한몫한다. <슬픈연가>에서 권상우가 다른 남자와 있는 김희선을 보며 눈물을 감추려고 모자를 스르르 내리는 모습을 ‘권상우 소라게설’로 만든 ‘짤방’은 특히 화제다.


하지만 가볍고 빠른 뉴미디어의 속성을 무시할 순 없다. 김영철은 “유튜브 등 신매체들은 흐름이 빠르다. 젊은 친구들이 요구하는 게 급속도로 변하기 때문에 그만큼 인기도 짧아진다”며 “단순히 화제에 그치지 않고 이를 계기로 서로를 이해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달리 말하면 구콘텐츠를 뛰어넘는 좋은 작품이 없다는 뜻이다”라며 “옛날 프로그램과 스타들을 보면서 단순히 웃고 즐기는 데만 그치지 말고, 올드 콘텐츠와 뉴미디어의 장단점을 결합해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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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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