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방’ 있나요?…코로나 시대 오피스?!
시골 민박부터 도심 호텔 장기투숙까지
집도, 회사도 아닌 제2의 일터를 찾아서
‘제주맥주’ 한달살기 지원 이벤트에서 제공하는 숙소. 사진 제주맥주 제공 |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예측하는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고. 코로나19가 불러온 비대면 업무도 그 가운데 하나다. 언제나 온라인에 연결될 수만 있다면 어디서든 일하는 ‘리모트 워크’(Remote Work·원격근무)가 앞으로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된다면,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일할 수 있을까.
지금은 상상력의 범위가 집과 회사로 협소하지만, 과도기 같은 이 시절이 지나고 나면 일터의 선택지는 더 넓어지지 않을까. 지역에 깃드는 작은 민박집살이부터, 코로나19 이후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지역 한달살기 프로그램, 도심의 호텔이 내놓은 하루 이용권부터 장기투숙 패키지까지 집과 회사의 징검다리에 놓인 업무 공간의 세계를 살펴봤다.
강원도 고성에 있는 민박 집. 사진 김은희 제공 |
민박 | ‘달방’을 아시나요?
지난 10월께 강원도 고성군 한달살기 프로젝트 ‘고성만사성’을 성황리에 마친 김은희 앤다 대표는 “집도, 회사도 아닌 곳에서 감각을 깨우고 갑갑했던 숨통을 틔우면서 일할 계획이라면 시골 민박을 추천한다”고 권했다. 그는 민박 시설이 낙후하고, 서비스가 다소 거칠 것 같아도 지역 토박이 어르신들에게서 얻는 또 다른 정서가 일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호텔처럼 매끄러운 서비스도, 내 집 같은 안락함은 없더라도 행여 새벽에 보일러가 꺼지지 않았을까, 마음 쓰는 민박집 주인의 모습에 업무 스트레스가 녹는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강원도 고성에 있는 민박 집. 사진 김은희 제공 |
김 대표는 민박집 구하는 요령에 대해 “일단 현장에 와서 찾으시라”고 권한다. “이름만 민박이고 게스트하우스나 펜션처럼 운영하는 곳이 있다. 그런 곳은 피하고 지역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민박집을 고르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지역 민박업계 어르신들이 쓰는 용어를 숙지하면 계약이 좀 더 용이하다. “민박집 구할 때 한달 정도 머물 계획이라면 ‘달방 있나요?’라고 물어보세요. 그리고 ‘원룸 형태 방이 있어요?’라고도요.” ‘달방’은 이 업계 전문 용어다. 이런 용어를 사용하면 계약을 할 때 원하는 가격대로 협상할 수 있다고 한다. 원룸을 강조하지 않으면 자칫 욕실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써야 할 수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강원도 고성에 있는 민박 집 간판. 사진 김은희 제공 |
도시에서 본 간판을 기준 삼지 말고, 지역 특유의 촌스러움이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크고 화려한 간판을 단 민박집을 고르는 것도 김 대표는 추천한다. “그런 간판엔 ‘정말 열심히 잘해보고 싶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릴 거야’ 하는 어르신들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겁니다.” 이외에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인터넷 시설 등이 잘 설치되어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호텔과 리조트 | 한나절부터 한달짜리 투숙까지
호텔들이 코로나19 이후 대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 ‘데이유즈’ 패키지를 출시하고 있다. 통상 체크인 시간은 오후 3시인데 6시간 앞당긴 것이다. 체크아웃 시간도 오후 7~8시로 퇴근 시간과 비슷하다. 콘래드 서울 관계자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에는 단순 당일 투숙객이 많았다면, 올해는 재택근무용으로 문의하는 고객이 늘었다”며 이런 고객의 요구에 객실에서 컨퍼런스콜(다자간 전화회의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설치하는 등 재택근무에 필요한 기반 시설을 마련했다고 한다.
콘래드서울 ‘데이유즈’ 패키지에 제공되는 객실. 사진 콘래드서울 제공 |
호텔 관계자는 “아이를 돌봐야 하는 재택근무자라면 수영장 등 호텔 부대시설도 이용할 수 있어 찾는 편이다”며 “가족 단위 재택근무 이용객도 많다”고 전했다. 한 고객은 이 같은 후기를 남겼다. ‘책상에 앉아 일하다가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한강과 서울 도심, 커피 한잔은 업무 속 힐링을 만끽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수영장도 이용했는데, 숙박하는 분들과 이용 시간대가 겹치지 않아 편안하게 수영을 즐길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외에도 서울 여의도, 강남, 마포 등 도심에 위치한 글래드호텔은 월~목요일 오전 8시에 체크인해 오후 7시에 체크아웃하는 ‘호텔로 출근해’ 패키지를 출시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레스케이프호텔 또한 오전 8시에 체크인 해 당일 저녁 8시에 체크아웃하고 1인 조식, 피트니스 이용, 식음료 할인권 등을 포함한 ‘워케이션’ 패키지를 출시했다. 이 패키지에 숙박을 더한 ‘워케이션 28시간’ 패키지의 경우 조식 , 미니바 음료, 객실 안마의자 이용 등을 추가로 제공한다.
이비스앰배서더서울명동의 장기투숙 객실. 사진 이비스앰배서더서울명동 제공 |
한달짜리 장기투숙 패키지를 내놓은 호텔이나 리조트도 있다. 이비스앰배서더서울명동, 이비스스타일앰배서더서울강남 관계자에 따르면 “특히 이비스명동의 경우 패키지가 나오자마자 11월에 실제 계약된 건수는 4~5건 정도이지만, 문의는 훨씬 많이 들어왔다. 대부분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계약했다”고 밝혔다. 이비스명동의 한 달 장기투숙 패키지 가격은 하루 평균 5만원 선이다.
살아보는 거야 | 지역 한달 살기 프로그램
‘제주맥주’ 한달살기 지원 이벤트에서 제공하는 숙소. 사진 제주맥주 제공 |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염두에 둔다면, 살아보고 싶었던 곳에서 일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평소와 똑같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업무에 집중하고, 출퇴근 시간을 길바닥에서 보내는 것 대신 자연을 즐길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지 않겠는가.
코로나19 이후,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한달살기’, ‘일주일살기’ 프로그램 인기가 높아졌다. 지자체 제공 프로그램 대부분은 이용객에게 지역 편의 시설을 제공하거나 비용 등을 지원해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경남 산청, 하동, 통영, 전남 강진, 광양, 강원 고성 등 다양한 지역에서 한달살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는 지자체 대부분이 한달살기 프로그램을 마감했으니 내년 초 ‘찜’해 둔 시·도군청 누리집을 부지런히 살펴보자.
미스터멘션 한달살기 지원 이벤트에서 제공하는 숙소. 사진 미스터멘션 제공 |
지자체 한달살기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면서 사설 업체에서도 유사한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미스터멘션은 한달살기 숙소 예약에 특화한 숙박 플랫폼이다. 1주일, 보름, 한달 단위로 숙박 예약할 수 있고, 미스터멘션 인증 숙박 업소의 경우 방역 수준 등도 확인된 시설이라고 한다. 미스터멘션에서는 현재 한달살기 무료 제공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오는 20일까지 미스터멘션 누리집을 통해 지원할 수 있다. 총 4개 팀을 선정해 내년 1월 제주 한달살기를 지원한다. 숙박, 렌터카 혹은 개인 차량 탁송, 항공권 등을 제공한다. 혼자, 친구, 가족, 부부 한달살기 등 테마에 맞춰 지원할 수 있다. 미스터멘션 관계자는 “최근 원격 근무 관련 문의가 늘었다”고 밝혔다.
경주 블루원리조트가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제공하는 스튜디오. 사진 블루원리조트 제공 |
또다른 제주 한달살기 지원 프로젝트도 눈에 띈다. 맥주 생산업체 ‘제주맥주’가 이달 20일까지 지원자를 받는 한달살기의 경우 ‘내 생애 커다란 쉼표’란 콘셉트로 숙소, 항공권, 렌터카, 방역용품 등 한달살기에 필요한 대부분을 제공한다. 신청은 12월20일까지 제주맥주 누리집에서 가능하며 선정된 인원은 내년 1월11일부터 2월10일까지 제주에서 생활하게 된다. 제주맥주 관계자는 “쉼에 방점이 찍힌 캠페인이지만 그동안 한달살기 등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직장인, 프리랜서 등의 참여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지원자 가운데 총 3팀이 선정될 예정이다.
경주 블루원 리조트는 ‘경주 일주일살기’와 ‘한달살기’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달 11일까지 신청자를 받아 총 3팀(동반 4인까지 가능)을 선정한다. 두팀을 뽑는 일주일살기의 경우 투숙 기간 동안 소독 및 방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타트업 창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한달살기의 경우, 투숙 서비스를 포함해 리조트 내 공유 오피스인 위드림 시설과 사진 촬영 및 영상 편집 등이 가능한 스튜디오를 이용할 수 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