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댕이 너만을 위한 집이야…반려동물 가구의 세계

[라이프]by 한겨레

ESC

반려동물을 위한 봄맞이 아이템

사람과 함께 쓰는 반려동물 가구

캣 타워, 숨숨집 등 직접 제작한 이도

여러 가구 브랜드 속속 출시 중

더는 ‘인테리어 파괴범’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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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반려동물 동반 카페 ‘포니테일’에서 열린 반려동물 식탁 만들기 수업을 위한 준비 재료. 이목원스튜디오 제공

쓱쓱, 공들여 사포질을 했다. 반려동물 식탁이 완성되어 가는 순간이었다. 나뭇결을 따라 사포를 문지를수록 표면이 부드러워졌다. 눈처럼 소복이 쌓여가는 나뭇가루에서 구수한 향기가 났다. 한층 매끄러워진 표면을 쓰다듬으며 새 식탁에서 밥을 맛있게 먹을 반려견을 떠올렸다. 나의 가장 작은 친구를 위해 모처럼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무언가를 만들고 있자니 마음속에 따뜻한 기운이 차올랐다.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가구공방 이목원스튜디오에서 열린 ‘반려동물 식탁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했다. 미리 재단한 나무에 구멍을 뚫고 나사와 목심을 박아 넣은 뒤 사포질을 하고 오일로 마무리했다. 한 줄로 요약하면 단순한 작업 같지만, 재단 과정을 건너뛰었는데도 꼬박 2시간 넘게 걸렸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이상민(30)씨는 비글(개의 한 품종) ‘알로’를 위해 식탁을 만들었다. “알로를 위해 직접 무언가를 제대로 만들어 본 것은 처음”이라며 뿌듯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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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가구 만들기 수업을 진행 중인 이원규 ‘이목원스튜디오’ 대표(사진 왼쪽)와 이상민씨. 사진 신소윤 기자

5년째 이목원스튜디오를 운영 중인 이원규 대표는 최근 1년 사이 반려동물 가구 수요가 급증하는 걸 몸으로 느낀다. 반려동물과 산책하던 반려인들이 공방에 들러 제작 가구를 문의하기도 하고, 어떤 반려인은 필요에 따라 직접 도면을 그려와 주문하기도 한다. 수요에 맞춰 다음 달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 여는 원데이 클래스에 반려동물 식탁 제작 수업도 넣기로 했다. 공방에서 판매하는 제품군에 반려동물 전용 계단, 식탁, 울타리 등도 추가했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반려동물 가구 시장도 확장세를 보인다. 지난 2월 농협경제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전국 가구 중 약 30%인 574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삼정 케이피엠지(KPMG) 경제연구원에서 발간한 '펫코노미 시대, 펫 비즈니스 트렌드'(2018)에서는 “반려동물과 공생하기 최적화된 인테리어를 완성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수요가 증가”했다며 “방석, 캣 타워 등으로 단조로웠던 반려동물 가구 제품군이 사람과 함께 쓸 수 있는 일체형 가구 등으로 다양화하는 추세”라고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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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집. 사진 느린목공방 제공

이런 경향은 소규모 목공방부터 일반 가구 브랜드까지 가리지 않고 반영된다. 경기도 부천에 있는 ‘느린목공방’은 주로 도마, 쟁반, 조리도구 등을 수제로 만들어 판매했는데, 최근 쇼핑몰 목록에 ‘펫 가구’를 추가했다. 느린목공방의 강힘찬 팀장은 17일 ESC와의 전화 통화에서 “고객들의 수요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가 가장 필요해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강 팀장은 자신의 반려묘 ‘코코’가 쓸 ‘숨숨집’(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은신 공간)을 찾다가 직접 가구를 제작하기로 했다. 그는 “몇 번이나 고양이 집을 샀는데, 집 인테리어에 도통 어울리지 않아 마음에 계속 걸렸다. 반려인이라면 알록달록하고 내구성이 떨어지는 제품이 애물단지였던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욕심을 부려 질 좋은 나무와 친환경 마감재를 써서 매끈한 고양이 집을 만들었다. 집사인 자신의 편의 또한 고려해 아래쪽에는 선반을 제작해 넣었다. 만들고 보니 이런 고양이 집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아 판매를 계획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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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전용 옷걸이. 사진 카밍그라운드 제공

반려동물 가구를 전면에 내세우는 브랜드도 있다. 카밍그라운드의 박수인 공동대표는 퇴사 후 목공을 배우며 수제 가구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던 중 반려견 ‘호수’를 키우게 됐고, 반려동물을 위한 가구를 만드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호수에게 필요한 물품을 찾던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해서” 반려인과 반려동물을 위한 작은 가구를 만들기로 했다. 강아지의 주둥이 길이까지 고려한 식탁 등 가구를 만드는 마음 씀씀이가 세심하다. 사람 옷장에 넣기도, 그렇다고 따로 수납장을 마련하기에는 거창했던 반려동물 옷을 걸기 위한 동물 옷 전용 옷걸이는 특히 귀엽다. 역시나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애매하게 놓여 있기 마련인 사료와 간식 따위를 보관하는 가구에는 ‘미니 곳간’이라고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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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룸 ‘캐스터네츠’ 시리즈의 책장 겸용 캣타워. 사진 일룸 제공

가구 브랜드들도 반려인의 마음을 반영해 반려동물 가구 시리즈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일룸의 캐스터네츠에는 반려묘를 기르는 ‘집사’ 디자이너가 디자인 작업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 캐스터네츠의 콘셉트는 ‘함께 쓰는 가구’다. 캣 타워는 책장과 겸해 쓸 수 있고, 숨숨집은 간이 수납장 역할을 한다. 책상 옆에 붙은 미니 캣 타워는 책상에 앉아 있을 때, 노트북 자판 위에 털썩 앉아 버리는 귀여운 방해꾼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하다.


일룸 신정연 펫가구 파트장은 “이제 반려동물이 더는 사람이 사는 곳에 얹혀사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같이 잘 살아갈 공간이 필요하다는 고민 끝에 제품을 내놨다”고 말했다. 일룸은 캐스터네츠 출시 직후인 지난해 11월부터 두 달과 올 1~2월 판매량을 비교했을 때, 짧은 기간이지만 성장률이 약 40% 올랐다고 한다. 공식 누리집에서 관련 키워드 검색량도 약 180% 증가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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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모쿠캣’의 캣타워. 사진 비블리오떼끄 제공

수많은 복제품을 양산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가리모쿠60’ 시리즈로 유명한 일본 가구 브랜드 가리모쿠도 지난해 ‘가리모쿠 캣’ 시리즈를 출시했다. 국내에서는 올 3월부터 가구 편집숍 비블리오떼끄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가리모쿠 캣 시리즈는 “집 안 인테리어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반려동물이 좋아하는 가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목표다. 선이 간결한 캣 타워, 반려동물이 양질의 수면을 할 수 있도록 복원성과 통기성이 좋은 재질로 만든 침대, 수납장과 선반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고양이 화장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나무와 직물 등 자재는 사람 가구에 쓰는 것 또는 이 회사에서 생산하는 자재 중 가장 좋은 것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외에 동서가구에서도 ‘펫츠펀’ 시리즈를 출시해 소나무 등 원목을 사용한 반려동물 집, 침대, 사료 수납장 등을 판매하고 있다. 가구업체 한샘은 온라인 쇼핑몰인 한샘몰에서 ‘펫 실내용품’ 카테고리를 따로 마련하고, 다양한 반려동물 가구 브랜드를 유치해 판매 중이다.


반려동물을 위해 지갑을 여는 소비자의 소비 규모는 해마다 커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반려동물 생애주기별 관리를 위한 정책 과제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반려동물 관련 지출은 2008년까지 월 5000원 수준에 불과했으나 2018년에는 개의 경우 9만6000원, 고양이는 6만7000원 수준으로 증가했다. 한국소비자원이 발간한 <반려동물 시장에서의 소비자 지향성 강화 방안 연구 보고서>는 2010년 이후 반려동물 관련 지출액 증가 추세는 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산업적 특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여기에 더해 반려인이 반려동물을 사람 가족과 같은 일원으로 생각하는 ‘펫 휴머나이제이션’과 같은 인식이 퍼지면서, 반려동물 가구는 이제 단순한 소모품으로 여겨지지 않는 듯하다. 사람과 함께 나눠 쓸 수 있고, 집의 인테리어와 조화를 이루는 진짜 가구로서 존재한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2020.05.10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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