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에 눈 달았을 뿐인데…사람들이 반색했다

헬싱키 중앙도서관의 소셜로봇 실험

밋밋한 겉면에 왕방울 눈 생기자

괴롭힘 멈추고 인격적으로 대우

사람-기계 소통 방향 일깨워줘

한겨레

공항, 슈퍼마켓 등 곳곳에 안내로봇이 비치되는 등 로봇이 점점 더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최근 핀란드의 한 도서관에서 진행된 로봇과 인간의 상호작용 실험은 향후 로봇 도입과 이용의 확산에 중요한 관점을 제시한다.


2018년 문을 연 핀란드 헬싱키의 최대 공공도서관인 오오디 중앙도서관은 자동화와 로봇이용 시스템을 채택했다. <패스트컴퍼니>와 <미디엄> 등에 따르면, 오오디 중앙도서관은 도서 자동반납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용자들이 책을 무인반납 장치에 올려놓으면 책은 컨베이어벨트에 의해 지하 도서 자동분류실로 이동한 뒤 식별돼 상자에 담긴다. 상자에 담긴 도서는 로봇(Mir200)에 의해 지상 3층 서가로 운반되고, 사서들은 분류가 이뤄진 책 상자에서 책을 꺼내 서가에 꽂는다. 오오디도서관은 기존에 분류와 이송을 담당하는 로봇 일부를 사서 업무 보조에 할당하기로 했다. 원하는 도서가 어디에 있는지, 서가가 어떠한 방식으로 분류도 있는지, 화장실은 어디인지 등 사서에게 집중되는 안내성 질문들을 처리할 수 있는 소셜로봇을 만드는 일이다.


도서관쪽은 바퀴가 달린 네모난 상자 모양의 로봇에 태블릿 피시를 달아 새 기능을 부여한 뒤, 이용자들이 어떻게 로봇과 반응하는지를 관찰했다. 도서관을 찾은 사람들은 안내로봇을 ‘소통 가능한’ 대상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일부 어린이들은 움직이는 로봇에 올라타기도 하고, 로봇의 작업을 방해했다.

한겨레

오오디도서관의 로봇 개발을 담당한 로봇공학자 미냐 악셀손은 <미디엄> 기고에서 “로봇은 기계임을 명확히 드러내고, 터치스크린으로 조작하고 사람과 대화할 수 없다. 이용자 기술 이해 수준에 따라 용도가 달라져서는 안되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접근성을 제공해야 한다”는 등의 개발원칙을 소개했다. 개발팀은 기존 도서 운반로봇에 플라스틱으로 된 만화캐릭터 같은 ‘왕방울 눈’을 만들기로 했다. 로봇에 부착된 눈을 통해 로봇이 움직이는 방향을 표시해주고 이용자와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부착된 눈은 과장됐다.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의 12가지 원리로 제시한 것중 ‘과장하라’에 해당하는 것으로, 만화캐릭터들은 커다란 눈을 비롯해 강조하고자 하는 신체적 특징을 두드러지게 표현한다.


‘바퀴달린 상자’ 모양이 기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로봇에 눈이 생긴 뒤 이용자 반응은 크게 변화했다. 우선 로봇을 괴롭히던 행위가 사라졌다. 로봇을 ‘태블릿 달린 움직이는 상자’라고 무시하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던 이용자들이 몰려들고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감정적 표현이나 소통 방식을 모방하는 대신 만화캐릭터의 눈을 달아 로봇의 상태를 표시해주는 간단한 방법이 ‘인격적 대우’를 끌어낸 것이다. 개발을 이끈 악셀손은 “로봇이 사람과 너무 비슷하면 사람들은 로봇에게 실제 수행할 수 있는 기능 이상을 기대하게 된다. 만화캐릭터 같이 커다란 눈은 로봇이 사람과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하며 이용자들이 로봇에게 적정하게 기대하고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로봇이나 도구에 눈을 부착해 사람들의 특정한 반응을 유도한 시도는 다수의 사례가 있다. 2018년 자동차업체 재규어랜드로버는 자율주행차에 만화캐릭터같은 눈을 부착했다. 실제 시각 기능은 없지만, 도로를 횡단하는 보행자들이 차량 눈을 통해 자신 앞에서 차량이 멈출 것이라는 신호를 받을 수 있다. 2019년초 미국의 슈퍼마켓체인 자이언트 푸드 스토어도 커다란 눈을 단 안내로봇을 172개 매장에 비치했다. 2012년 실험에서 자선모금함에 눈을 부착했더니 그렇지 않은 상자에 비해 48% 많은 모금이 이뤄졌고, 2018년 기부와 자원봉사를 요청하는 상황에 ‘지켜보는 눈’을 그려넣은 결과 다른 사람을 돕는 반응이 높게 나타났다.


사람의 감각중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이고 뇌의 상당 부분이 시각정보 처리와 연결되어 있어, 뇌는 눈의 확장기관 역할을 하고 있다. 눈은 외부 정보를 수용하는 기능만이 아니라 사람의 현재 상태를 알려주는 창의 역할도 한다. 애니메이션처럼 과장되게 그려넣은 눈이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필요로 하는 로봇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확인된, 핀란드 도서관에서의 실험이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2019.09.0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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