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 나와 친구들은 왜 결혼하고 또 안 하는가

[토요판] 밀레니얼 읽기


(7) 새로운 결혼관의 탄생

“집에서 하래서” “아저씨 죽는다길래”

“하자 있다고 할까 봐” 했다는 엄마들

서른 즈음 결혼해 아이 낳으라지만

혼인·출산율 최저…세상은 달라졌다

결혼은 반드시 사랑의 종착점 아냐

다른 욕망과 목적을 위해 걷는 길

‘정상가족’ 그릇에 욕망 담으라지만

새롭고 다양한 가족 형태 인정해야


한겨레

남성과 여성이 결합해 가정을 이루고, 하나 이상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 ‘정상가족’만이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다. 1인가구, 친구와 모여 사는 경우, 동성 파트너와 동거하는 경우는 온전하지 못한 상태로 간주된다. 게티이미지뱅크

로맨스투성이. 사랑 빼곤 무엇도 안 되는 이야기. 부모의 결혼이 이루어지기 전, 그곳에 어떤 씨앗이 처음 싹텄는지 그 내막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거기에 30년 넘는 세월이 지나도 이야기될 만한 감정들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야기를 듣게 된 경위엔 지금 쓰고 있는 이 원고가 있었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할 때까지만 해도 할 얘기가 많다 싶었다만, 쓸수록 아니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도 않았고 결혼이라는 제도로 이성의 타인과 묶일 생각이 없는 내게 ‘결혼’이라는 주제는 지나치게 뭉툭하고 컸다. 급한 대로 엄마에게 에스오에스(SOS)를 쳐 대뜸 질문을 던졌다. “엄마는 아빠랑 결혼 왜 했노?”


“결혼 왜 했냐고? 니는 무슨 그런 걸 물어보노. 엄마, 지금 아줌마들이랑 밥 먹는데.” 기회는 이때다 싶어 스피커폰을 켜보라고 했다. “다들 결혼 왜 하셨어요?” 생뚱맞은 질문에 웃음이 한바탕 터졌다. 서로 먼저 이야기해보라는 손짓 끝에 이야기가 술술 풀려나왔다. “나는 너희 아빠 손잡는 순간 ‘아, 결혼해야겠다’ 싶었는데.” 아, 시작부터 엄청났다. 우리 엄마는 그렇다 치고, 다른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저씨랑 놀다 보니까 집에 가기 싫어서 결혼했다. 결혼하는 수밖에 없겠다 싶어서.” “아, 나는 좀 다르다. 엄마가 하라고 해서 동네 아저씨랑 결혼했다.” “결혼 안 해주면 아저씨가 죽어버리겠다 하길래 했지. 다른 이유 없다.” 로맨스와 폭력이 반쯤 섞인 이야기의 향연을 비집고 들어가 두번째 질문을 던졌다. “그럼, 결혼 안 하겠단 생각은 한번이라도 해보셨어요?” “엄마야, 상상도 안 해봤다.” 내가 옆에 있었다면 허벅지라도 찰싹 때릴 기세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는 결혼 안 하면 하자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으니까, 안 하는 건 생각을 안 했지.”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은 다른가, 하고. 세상이 바뀌었다면, 얼마나 바뀌었나 하고 자문했다.


물론 세상은 변했다. ‘2019년 혼인·이혼 통계’를 보면, 재작년의 혼인 건수는 23만9200건으로 전년 25만7600건보다 1만8400건(-7.1%) 줄었다. 이는 1972년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역대 최저다. 아이를 낳는 비율도 많이 줄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0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4명을 기록해 1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역시 출생통계를 내기 시작한 197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하지만 세상이 확 달라졌다고,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모양으로 자리잡았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결혼을 선택하고, 아이를 낳으며 살아간다. 친구들은 이야기한다. 우리의 작은 버블 바깥으로 나가면 세상은 여전하다고. 직장에선 내게 아무도 결혼했냐고, 결혼할 거냐고 묻지 않지만 명절을 맞아 찾은 고향의 어른들은 밥 먹고 한숨 돌리기가 무섭게 찍어낸 듯 같은 질문의 돌림노래를 이어간다. “결혼은 생각 없나?” “아줌마가 좋은 사람 소개해줄게.” “누구누구는 결혼해서 애 낳았다는데….” 다들 비슷한 리듬으로 산다. 자연히 가장 많은 이들이 춤추는 박자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제일 정답에 가깝게 여겨진다. 보통 열네살이 되면 중학교에 가고, 열일곱이 되면 고등학교에 가는 것처럼 서른 즈음이 되면 결혼과 출산 계획을 대충이라도 가지고 있으리라 여기는 게 나와는 거리가 있는 세상의 ‘보편’이다. 스무살이 되어도 대학에 가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유의 삶의 리듬은 왜인지 잘 이야기되지 않는 것과 유사하게 결혼의 영역에서도 보편과 주변의 구분은 지금까지도 꽤 명확하다.


물론 내 주변에도 결혼했거나, 결혼을 준비 중인 친구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애인이 결혼하지 않으면 죽어버린다고 해서 결혼하거나, 엄마가 하라고 해서 동네 사람이랑 결혼하지 않는다. 찐하게 연애하면서도, 결혼하는 제일 큰 이유를 로맨스로 꼽지도 않는다. ‘결혼하지 않는 삶은 상상도 못 했다’는 6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과 달리, 90년대에 태어난 내 또래 여성들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도 상상할 줄 안다. 내가 하는 스탠드업 코미디 모임에서 친구 ㅅ은 어느 날 갑자기 출산하겠다는 계획을 모두에게 알렸다. 왜, 갑자기? 우리의 물음에 돌아온 답은 간단하고 분명했다. “내 생애주기를 볼 때 이때쯤 애를 낳아서 좀 길러보고 싶어.” 야,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친구들은 모두 경탄했다. 얼마 후 ㅅ은 결혼을 하겠다며 결혼식장을 성큼 예약한 뒤 남편을 포함한 친구들에게 알렸다. 출산과 육아를 하기 위해 결혼을 선택한 ㅅ은 어제도 오늘도 몸을 튼튼하게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도 30종이 넘는 비타민과 영양제, 유산균 따위를 챙겨 먹는 중이다. 이 경우, 결혼은 최종적으로 다다라야 할 종점이나 결론이 아니다. 과정이고,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걷는 길이다. 몇살쯤엔 결혼해야 한다는 생애주기에 맞춰 내 몸을 비틀어 끼우는 대신, 아이를 갖고 싶다는 선명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결혼을 이용하는 것이다.


14평짜리 집을 19평으로 넓히기 위해 결혼을 선택한 ㅇ도 있다. 신혼부부로 묶이는 순간 받을 수 있는 대출금의 액수가 확 달라졌다고 했다. ㅇ은 원래도 애인과 함께 살았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자, 더 큰 집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결혼 과정에서 가부장적인 시가와의 갈등으로 힘들었지만 최종적으로 얻게 될 집이라는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에 감내할 수 있었다. 이야기하고, 약속도 정했다. 아이는 낳지 않기로 했고, 시가에도 가지 않기로 했다. 약속대로 결혼 뒤 첫 명절은 집에서 보냈다. 정관수술도 했다. 모두 합의하에 이행된 일들이다.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었던 차에, 옆에 있던 좋은 파트너와 결혼하게 된 ㄷ도 이제 결혼한 지 1년이 넘었다. 이들 모두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땐 눈에서부터 꿀이 떨어지지만, 결혼에 대해 이야기할 땐 거기에 사랑만 있는 게 아니란 걸 분명히 아는 목소리로 말하는 친구들이다. 누구도 결혼의 이유로 사랑을 말하지 않았다. 사랑은 그저 결혼의 전제일 뿐, 거기엔 다른 목적과 욕망들이 더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시대가 변해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건 크게 변하지 않는다. 편히 쉬고 잠잘 수 있는 집과, 먹을 것, 일할 곳, 입을 옷은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사람들의 삶에 있어야 하는 필수 조건이다. 욕망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 함께 있고 싶은 마음, 아이를 가지고 길러 그와 좋은 친구로 생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시대가 변한다고 변하는 욕망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너무 좁고 오래된 그릇에만 이 욕망을 담으라고 요구한다. 남성과 여성이 결합해 가정을 이루고, 하나 이상의 아이를 낳아 기르는 ‘정상가족’만이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꼽힌다. 법적으로 인정받는 ‘신혼부부’라야 여러 사회 보장 시스템의 혜택을 너끈하게 받을 수 있다. 결혼하지 않는 1인가구, 친구와 모여 사는 경우, 동성 파트너와 동거하는 경우, 셋 이상이 결합해 사는 경우는 생애주기의 흐름 속에 온전하게 자리잡지 못한 상태로 간주된다. 그 기준대로라면 나는 아직 미(未)-완성, 미(未)-정상의 존재다. ‘정상가족’을 일구어 ‘정상’의 범주에 언젠가 들어갈 수는 있지만,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한 ‘미정상’의 개인 말이다.


기존의 법이 인정하는 형태의 가족 이외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고, 법적으로도 혜택을 제공하는 법안인 생활동반자법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 법안은 국회에서 여러번 논의되었지만 정식 법이 되어 사람들의 삶에 안착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활동반자법의 정착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기본이다. 기존의 규칙대로라면 ‘미정상’으로 불릴 수밖에 없는 무수한 개인들에게도 권리가 있다. 그들이 삶에서 욕망하는 것들을 이루고 법적으로 보장받을 권리 말이다. 서른 즈음이 되면 결혼을 하고, 더 늦어지기 전에 아이를 낳지 않아도 그들의 삶이 미처 다다르지 못한 무엇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타인에 대한 애착욕구와 가족을 이루고 싶은 마음을 최대한 펼치며 살 수 있어야 한다. 수십 수백년간 지켜온 낡은 생애주기가 아닌,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생애주기 그래프에 열려 있는 사회에서는 각자가 나름의 방식으로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천다민 뉴닉 에디터

▶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은 정보기술(IT)에 능하고 개성이 강한 특징이 있다고 분석된다. 부당한 일에 적극 목소리를 내면서 앞날에 대한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이들이기도 하다. ‘나 때는 말이야’라고 툭하면 가르치려는 ‘라떼 세대’는 모르는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를 격주로 싣는다.

2021.03.09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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