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면서 곧 안주…안주계의 거성 ‘간짜장’

[푸드]by 한겨레

박찬일의 안주가 뭐라고

계란 프라이 살포시 터뜨린

짜장 안주로 술 한잔 시작

기름 부어 놓은 면은 해장용

한겨레

박찬일 제공

포항 구시가를 어정거리다가 간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척 보니 화상이다. 화상 중국집 감별기가 내장된 내 눈으로 보았다. 죽도시장 쪽으로 가서 국밥을 먹을까, 요즘 철인 고등어 추어탕을 먹을까 싶다가 간판 따라 불쑥 발을 들였다. 계란 프라이가 있는 간짜장. 실은 삼선짜장이다. 홀에 앉아 코로나 뉴스를 보던 노인이 입을 꾹 닫고 주방으로 들어간다. 국자가, 같은 금속 재질의 솥을 애무하다가 야단도 친다.


‘덜그럭 철그럭 샤악 삭’ 만화가들처럼 의성어를 떠올려보았다. 나는 겨우 저게 전부다.


하여튼 내 간짜장이 잘 볶아지고 있겠지. ‘청도맥주 댓병―640―’이라 쓴 문구가 냉장고에 붙어 있다. 오늘은 본토식 호사다. 목젖을 찢을 듯. 탄산가스가 치고 내려간다. 단무지에 춘장을 묻혔다. 중국집 최고의 안주. 단무지와 양파에 춘장. 혹은 주방장과 안면이 있으면 대파에 춘장.


카운터에 저 주방장이 어디선가 받아온, 낡은 인증서 한장. 잘생긴 장발의 젊은이 사진이 붙어 있다. ‘Chiang Fung-Kun’ 그의 이름. 옆엔 한자 이름. 그는 장펑쿤이며 姜鳳崑이며 강봉곤이다. 디아스포라가 볶은 간짜장이 상에 당도하였다. 늙은 주방장의 국자 놀림은 리듬이 느리다. 무심한 듯, 박자를 맞추지 않고 덜그럭거린다. 정말로 완벽하게 부친 계란 프라이가 면 그릇에 올려져 나온다. 간짜장은, 누가 뭐래도 면·소스 따로다. 그 관습은 누가 깨고 싶어도 절대 안 된다. 소스가 면에 덮어져 나오는 순간, 그건 그냥 짜장면이 되기 때문이다. 간짜장 소스는, 제 그릇 안에 위엄 있게 담겨 번들거린다.


기름이 한 단층을 이루어 소스 그릇 위로 열기를 보호한다. 간짜장은 이래야 한다. 기름과 춘장의 향이 가득 퍼진다. 간짜장면 한그릇으로 안주 하기 위해서는 소소한 취향과 기술이 필요하다. 소스를 국수 위에 부어 비비지 않는다. 간짜장만 따로 숟가락으로 안주 하기 위해서다. 조심스레 프라이의 노른자를 터뜨린다. 천천히, 노란 소스 같은 노른자가 짜장 위로 흐른다. 젖과 꿀이 흐르듯이, 이 농도의 노른자는 그저 마음이 풍요롭다.


오직 이 프라이만으로도 가볼 가치가 있는 집. 미슐랭이 쓴다면 이런 문구가 어울린다. ‘흰자는 튀기듯 지져서 바삭거린다.’


면 그릇에 담긴 국수는 해장으로 먹을 테니 들러붙지 않게 손을 쓴다. 간짜장 위에 가득한 기름을 따라서 부어두는 것이다. 술을 다 마시고 나서도 국수는 윤기를 지킨다. 아, 잘 만든 면이다. 배달을 하지 않는 집이라 미끈거리지 않고 소스를 잘 붙이는 옛날식 면이다. 장, 아니 강 주방장님은 간짜장에 옛날식으로 감자를 넣는다. 씹히는 맛이 있다. 맥주 또 한잔. 계란국 한그릇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볶음밥용이다.


중국집의 모든 식사 메뉴는 그대로 술안주가 된다. 짬뽕, 볶음밥, 짜장면, 잡채밥! 짜장은, 면도 밥도 좋은데 안주로도 좋다. 그냥 짜장만 안주로 먹는다. 농후한 질감, 짙은 짠맛이 술을 돋운다. 게다가 값도 싸다. 예전엔 3분 짜장이나 카레 같은 것도 안주로 먹었다. 편의점 전자레인지로 데워서, 노상의 탁자에 앉아 벌벌 떨면서 바깥 기온보다 높은 냉장고에 진열되었던 캔맥주를 땄다. 오히려 따뜻한 술이랄까. 3분 짜장 한팩이면 캔맥주가 두개였다. 짜장으로 할까 카레로 할까 고민도 했다. 열에 일곱은 짜장 먼저다. 순서가 있는 법이니까. 임오군란 이후 들어온 ‘짜 형님’이 먼저다. 카레는 아마도 강제 병탄 이후의 도래다. 영국 해군을 모범 삼아 배도 사고 훈련도 시키던 일제 해군은 식사도 모방했다. 카레는 해군의 밥이었다. 장기 항해 시 금요일마다 카레가 나왔다고 한다. 한 주의 흐름을 기억하기 위함이었다는 썰이 있다. 그럼 ‘라떼’의 일요일 아침 라면도 그런 것이었을까. 국방부 시계가 일주일 또 흘러갔다는 친절한 안내?


간짜장 바닥이 보이는 건 슬픈 일이다. 맥주 두병을 복용했다. 일일 정량이며, 안주와 딱 맞는다. 게다가 큰 병이니. 옛날 술꾼들은 소주도 세홉들이, 맥주도 댓병이라 부르던 640㎖쯤(와인 병과 비슷한 용량이다) 되는 걸 마셨다. 소주 댓병은 실은 됫병의 착오다. 1.8리터들이. 예전 실비집에선 이런 병에 담긴 막소주를 잔으로 팔았다는데.


해장의 시간. 빨리도 온다. 기름에 버무려두었던 면을 먹는다. 시장 근처에 가서 대구탕을 한그릇 먹고 싶어졌다. 제철인데. 고등어 추어탕은 모순의 반복이다. 추가 이미 미꾸라지니 어 자는 사족이고. 고등어로 끓이니 추어탕은 아니다. 그래도 민중은 척 하고 다 알아듣는다. 이즈음 경상도에 가면, 고등어 추어탕이 좋다. 1년에 한번 오는 시즌이니, 평생 몇번이나 먹을 수 있을까.


아, 저 중국집 이름은 길성관이다. 길할 길, 별 성.


박찬일(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2023.06.2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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