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콧 논란 속 개봉한 ‘뮬란’ 뚜껑 열어보니
애니 원작과 달라진 설정과 인물
비현실적 무협 액션은 몰입감 방해
영화 <뮬란>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
‘서양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동양인의 판타지 액션.’
17일 국내에 처음 선보인 디즈니 영화 <뮬란>(감독 니키 카로)을 한 문장으로 간추리면 이렇다. 볼거리로는 나쁘지 않으나, 허술한 전개와 과도한 비현실성은 종종 몰입을 방해한다.
1998년 개봉한 동명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뮬란>은 제작 단계부터 화제가 됐다. 그동안 소외돼온 동양 여성을 주체적인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야기는 다양성과 성평등을 강조하는 시대 흐름과 맞물려 기대를 모았다. 애초 3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몇차례 연기 끝에 미국에선 지난 4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로 공개했고, 국내에선 이날 개봉했다.
영화 <뮬란>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
뚜껑을 열어보니, <뮬란>은 설정과 캐릭터가 크게 바뀌었다. 뮬란(류이페이·유역비)이 아버지 대신 남장을 하고 전쟁터에 나가 큰 공을 세운다는 줄거리는 같으나, 뮬란을 따라다니는 작은 용과 귀뚜라미는 사라졌다. 또 뮬란과 사랑에 빠지는 장수 리샹도 없다. 눈길을 끄는 새 인물은 원작에 없던 마녀(궁리·공리)다. 마녀는 뮬란과 대척점에 있으면서도 비슷한 역경을 공유하는 존재로서, 여성 서사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한다.
<뮬란>이 가장 큰 무기로 내세운 건 화려한 액션이다. 어린 시절부터 지붕 위를 거의 날다시피 뛰어다니던 뮬란은 커서는 무협 영화 <와호장룡>의 무림고수처럼 싸운다. 원작에서 의지는 강하지만 신체 능력은 평범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 마녀는 다른 사람 몸으로 침투하거나 맹금류로 변하는 등의 마법을 부린다. 유연족 병사들도 도구 없이 높은 성벽을 맨몸으로 뛰어오른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실존 인물로 전해지는 ‘화목란’ 이야기를 다소 황당무계한 무협물로 바꿔버린 것이다.
영화 <뮬란>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
<뮬란>은 개봉 전부터 보이콧의 벽에 부딪혔다. 지난해 홍콩 민주화 시위가 한창일 때 류이페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홍콩은 중국의 일부다” “홍콩 경찰을 지지한다”고 쓴 게 도화선이 됐다. 세계 누리꾼들은 해시태그 ‘보이콧뮬란’(#boycottmulan)을 달며 불매 운동을 펼쳤다. 최근엔 <뮬란>이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 문제가 제기된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촬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이 더욱 거세졌다. 영화 엔딩 크레디트에는 ‘촬영에 협조해준 투루판 공안국 등 신장위구르자치구 8개 정부기관에 감사 인사를 표한다’는 내용이 담겨 논란에 더욱 불을 질렀다.
영화 <뮬란>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
국내에서도 보이콧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청년시민단체 세계시민선언은 지난 7월 서울 강남구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본사 앞에서 “폭력을 소비할 수 없다”며 보이콧을 선언한 데 이어, 개봉일인 이날 오후 이설아·박도형 공동대표가 각각 서울 씨지브이(CGV) 용산아이파크몰점과 롯데시네마 합정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중국 내 반응마저도 호의적이지 않다. 지난 11일 개봉 이후 첫 주말 성적은 2320만달러에 그쳤다. 지난해 여름 중국에서 개봉한 디즈니 <라이온킹>이 첫 주말에 5400만달러 넘는 수익을 올린 데 견주면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중국 영화 평점 사이트 더우반에서 <뮬란>은 17일 현재 10점 만점에 4.9점을 기록 중이다. 누리꾼은 “줄거리가 느슨하고 의상은 10년 전 드라마 수준” “미국인들이 우리 문화를 망쳤다” “외국인들에게 중국 문화를 이상하게 알리는 영화” 등의 혹평을 쏟아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