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없는데 혼인신고때?...갈길 먼 ‘엄마 성 따르기’

[트렌드]by 한겨레

박다해의 젠더101

[박다해의 젠더101]


아이들에게 ‘엄마 성’ 물려준 부부들


“누군가를 배제하는 제도 바꾸고 싶어”


법무부 법제개선위 “부성우선주의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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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다혜씨는 결혼한 지 꼭 1년이 지났지만 아직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혼인신고서의 ④번 조항인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란 질문을 두고 남편과 아직 합의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장남인데 딸만 세명인 집에서 자란 선씨는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미래의 아이에게 내 성을 물려주고 싶다”고 바랐습니다. 아들이 없어 대를 못 잇는다는 점을 속상해하는 집안 분위기가 있던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선씨는 2005년 2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호주제가 폐지된 뒤 꽤 설렜다고 합니다. 한국의 민법(781조 1항)은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부성주의)고 규정하고 있지만, 호주제 폐지 이후 이 조항이 개정돼 2008년부터는 “부모가 혼인신고 시 협의한 경우”엔 엄마 성을 따를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제 진짜로 내 성을 아이에게 주는게 가능하겠다 싶어 ‘나이스!’라고 외쳤죠. 남편과도 연애하는 초반부터 제 성으로 아이 이름을 짓고 싶다고 늘 말해왔는데, 막상 결혼하고 나니까 ‘보편적이지 않은 거라 싫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합의가 어려울 줄 몰랐어요.” 선씨의 바람을 한 발 앞서 실천한 부부도 있습니다. 이수연, 박은애, 김지현(가명)씨입니다. 남편과 협의를 거쳐 아이에게 엄마 성을 붙여준 것이죠. 호주제가 폐지된 뒤 자녀의 성은 부부의 협의에 따라 정할 수 있도록 바뀌었지만, 실제로 엄마의 성을 물려주려면 제도부터 사회적 인식까지 아직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고 이들은 입을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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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이름에 ‘엄마 성’을 물려줬습니다



지난해 12월 태어난 이수연씨의 딸 이름은 ‘이제나’입니다. 평소 남편과 페미니즘 세미나를 같이 듣곤 했다는 이씨 부부는 임신을 한 뒤 아이가 엄마 성도 따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엄마 성을 따라보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법적으로 이미 보장돼 있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고, 성평등을 위한 것”이라고 시댁에 설명했지만 온전히 지지를 얻은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설득보단 밀어붙인 측면이 있어요. 그런데 막상 엄마 성을 붙이고 나니 또 생각보다 별 일 아니더라고요. 시어머니가 ‘제나는 잘 있니?’ 종종 물으시기도 하고요.” 이씨는 “지금의 결혼제도가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이를 공고히 하는데 일조하고 싶지 않았다”고도 말했습니다.


지난 4월 쌍둥이를 출산해 ‘박’씨 성을 물려준 박은애씨도 부부가 협의한 뒤 양가에 알렸다고 합니다. “결혼을 통해 원가정으로부터 독립했는데, 허락을 구하는 방식은 잘못된 것 같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씨는 “엄마 성을 따른 아이는 보통 이혼 가정이나 한부모 가정으로 보는 편견이 있다. 이런 가정에 대한 편견이 잘못된 거지 그렇게 보여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엄마 성을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특정한 고정관념을 갖게 만드는 것이 맞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아이들이 더 자유롭고 유연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부모로서 충분히 인지시켜줄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꼭 ‘성평등’과 같은 대의 때문만은 아닙니다. 여성에게도 “자식에게 내 성을 물려주고 싶다”는 욕망이 존재한다고 김지현씨는 말합니다. “‘열 달 동안 내 뱃속에서 키운 아이인데 내 성을 따를 수도 있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죠. 오히려 제가 딸만 있는 가정에서 자라 늘 ‘대를 이을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다보니 내 핏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나중에 아이가 크면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나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살게 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하려고요. 세상엔 아빠가 둘, 엄마가 둘인 아이도 있고 아빠나 엄마 중 어느 한쪽이 없는 아이도 있다고, 형태가 다양한데 이건 ‘옳고 그름’이 아닌 ‘차이’의 문제라고도 말해주고 싶어요.”


부부가 협의를 한다고 해도 넘어야 할 장벽은 또 있습니다. 바로 혼인신고입니다. 현행 제도는 출생신고가 아닌 혼인신고를 할 때 엄마 성을 따르기로 협의했는지 묻습니다. 하지만 신고서에 적힌 이 질문란에 ‘예’라고 표기를 해도 협의서를 따로 작성해야 합니다. 이들은 엄마 성을 따르겠다고 하니 신고를 하러 간 구청에서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고 말했습니다.


“구청 직원이 질문을 다시 읽어보라고 했어요. (웃음) 엄마 성을 따르기로 한 게 맞다고 다시 답해줬는데, 이번엔 협의서가 어디 있는지 찾지를 못하더라고요. 써본 적이 없으니까요. 이런 경우가 없었다며 신기해하더라고요.”(김지현)


“처음에 구청에서 ‘잘못 쓰셨다’고 하더라고요. 엄마 성을 따르는 거 맞다고 하니 난리가 났죠. 한 번도 이렇게 신청한 사람이 없었대요. 왜 혼인신고서에 체크하게 만들어놓고 협의서를 따로 써야 하나 싶기도 했어요. 진입장벽이 너무 높게 느껴졌어요. 과연 출생신고도 아닌 혼인신고를 앞둔 연인이 이 문제를 제대로 논의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박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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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박은애씨의 말처럼, 만약 혼인신고를 할 때 “엄마 성을 따르겠다”고 표시하지 않았다면 엄마 성을 물려주는 과정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법원에 가서 ‘자녀의 성·본 변경’ 신고를 하고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본 변경 제도는 재혼 가정에서 자라는 자녀를 위해 도입된 것이어서, 이혼처럼 특정한 사유가 없으면 변경 허가를 받기 어렵습니다.


혼인신고를 할 때 구청에서 이를 제대로 안내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아이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고 싶어도 이런 관습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부부도 있습니다. 차수연씨는 “혼인신고를 할 때 체크하지 않으면 이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는 걸 몰랐다”고 합니다. “아예 행정적으로 선택권이 제한된 느낌이죠. 신고서에 ‘되돌릴 수 없다’고 명시를 하든가 혼인신고 정정 신청제도라도 마련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절충안을 마련하는 부부도 있습니다. 윤다미씨는 아이 이름에 엄마 성인 ‘윤’씨를 넣기로 남편과 논의했습니다. “부모의 두 성을 함께 올릴 수 있는 방법도 찾아봤는데 없더라고요. 최근에 개명한 사례를 찾아봤더니 이름에 엄마 성을 넣는 경우가 있길래 저희도 결국 아이 이름에 제 성을 넣어 ‘권윤O’이나 ‘권윤OO’으로 하자고 논의했어요.” 윤씨는 “아무리 찾아봐도 ‘반드시 아빠의 성을 따라야만 한다’에 대한 논리적인 이유나 명확한 설명은 없다. 이건 단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굳어진 관행과 관습일 뿐”이라며 “적어도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만들어줬으면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혼인신고를 보류 중인 선다혜씨도 “어떤 성을 따르든 선택의 문제인데, 엄마 성을 따르겠다고 할 때만 협의서를 받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며 ‘자유로운 선택권’을 강조했습니다. 아빠 성을 따를 때도 협의서를 받도록 해서, 부부가 혼인신고 전에 이런 주제로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선씨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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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법제개선위도 “부성우선주의 바꾸라” 권고했지만…


부성을 우선하는 원칙에 대한 인식은 사실 많이 변해왔습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2018년 발표한 ‘자녀의 성 결정제도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연구’를 보면, “부성주의 원칙은 불합리하다”고 답한 비율이 전체의 67.6%로 2013년(61.9%) 같은 조사에 견줘 5.7%p 증가했습니다. 성별 분포를 보면, 남성 응답자의 54.5%, 여성 응답자의 77.1%가 “불합리하다”고 답했습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남성 응답자도 과반 이상이 부성주의 원칙을 불합리하다고 답한 점이 눈에 띕니다.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임기만료로 폐기되긴 했지만, 지난 20대 국회에선 더불어민주당의 신경민 의원과 정춘숙 의원이 각각 부성주의 원칙을 폐기하는 민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최근 들어 불을 다시 당긴 건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입니다. 지난달 법제개선위는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는 민법 781조 1항을 전면개정해 “자녀의 성을 부모의 협의로 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라”고 법무부에 권고했습니다. 호주제 폐지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 “자녀는 아빠의 성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명제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다만, 협의 시점을 자녀 출생신고 때로 할 지, 지금처럼 혼인신고 때 정하되 출생신고 때 변경할 수 있도록 할지는 의견이 나뉘었다고 개선위는 밝혔습니다. 또 형제자매의 성과 본이 동일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선, 동일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과 지금처럼 동일해야 한다는 의견도 갈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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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개선위의 해당 권고에 대해 아직 공식적으로 논의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법무부 관계자는 “해당 권고와 관련해 검토 과정에 있고 구체적으로 확정되거나 진행된 사항은 아직 없다”고 밝혔습니다.


오랫동안 부성주의 원칙을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 온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제도는 여성인 조상이 후손에게 아무런 흔적을 남길 수 없게 만든 것일 뿐 아니라 여성의 가족구성권, 성적 자기결정권, 재생산권까지 제한받도록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할 때 ‘법적인 아버지’를 반드시 필요로 하게 해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관계를 형성한다는 설명입니다. 양 교수는 “부성주의 원칙은 인간답게 살 권리를 침해하고, 여성이 혼자 가구를 구성할 때 차별과 낙인을 재생산하고 있다”며 “혼인신고 때 어느 성을 따를지 결정하도록 한 지점도 함께 바꿔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한겨레>에서 여성가족부를 출입하며 젠더 분야를 취재하는 박다해 기자입니다. ‘젠더101’ 연재를 통해 조금 ‘쉬운’ 젠더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101’이란 숫자는 흔히 어떤 학문의 개론이나 입문 수업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젠더101’ 코너에서 우리의 일상이나 주변의 이야기를 전할 예정인데요. 다양한 사람,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성평등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왠지 ‘각 잡고’ 읽거나 공부해야할 것 같은 부담은 덜어내셔도 됩니다. 다뤘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언제든 제보 부탁드려요!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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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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