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이는 친한 연예인과만 일한다? 그럼 유재석, 강호동은?

[컬처]by 한겨레

예능인 송은이에 대한 오해


방송계 인사 “송은이는 친한 분들만 같이 일한다” 비판

10년 넘게 단짝들과 호흡하는 유재석·강호동은 안 불편한가

‘밥블레스유’ 시즌2 기획 때 ‘송은이 라인, 신선함↓’ 보도

여성연예인 성공 때 유독 트집

한겨레

예능인 송은이는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시작으로 <밥블레스유>, <판벌려> 등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탁월한 기획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밥블레스유2>(올리브)를 진행하고 있는 장도연(왼쪽부터), 박나래, 김숙, 송은이. 프로그램 누리집

작년 가을의 일이다. 방송 계통에서 일하는 이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요새 눈여겨보는 예능인은 누가 있냐는 질문이 나오자 나는 주저 없이 ‘송은이’라고 답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으로 시작한 ‘기획자 송은이’의 여정은 한국방송(KBS)의 <김생민의 영수증>과 올리브(Olive)의 <밥블레스유>, 제이티비시(JTBC)2의 <판벌려>를 지나 스카이드라마(sky Drama)의 <송은이 김숙의 영화보장>으로 이어지던 중이었으니까. 송은이가 밀어주고 당겨주며 새삼스레 다시 조명을 받게 된 여성 코미디언들의 수를 보나, 그가 기획해서 만들어온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보나 송은이는 당대 가장 주목할 만한 연예인이었다. 그런데 내 대답을 들은 상대방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뭔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나는 “왜 그러시죠”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답했다. “아뇨. 송은이씨 좋은데. 또 사람들 사이에선 약간 그런 반감이 있더라고요. 송은이씨랑 안 친한 여자 연예인은 일을 못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 다 주변에 친한 분들 모셔서 같이 일을 하시잖아요.”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연예인들이 자신과 호흡이 잘 맞는 짝패와 함께 일하는 게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한국 시청자들은 유재석이 자신이 맡는 프로그램에 하하나 박명수, 이광수와 함께 들어가고, 강호동이 이수근이나 이특과 함께 일을 하며, 이경규가 이윤석과 함께 붙어 다니는 광경을 10년 넘게 보아왔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송은이가 자신과 호흡이 맞는 짝패들과 일하는 게 보기가 불편하다고? 대체 그 광경을 몇년이나 봤다고? 상대가 남자였다면 그나마 좀 덜 당황스러웠을 텐데, 말을 꺼낸 사람이 여자라는 사실이 날 더 당황하게 했다. 고작 몇년 전만 해도 극단적인 남초 현상을 보였던 예능판에, 누구라도 여자 연예인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여성 예능이 흥할 만한 터를 닦아 동료들을 끌어올리는 게 나쁜 일인가? 당혹스러운 마음에, 앞서 든 예들을 이야기하며 반문하자, 상대는 마지못해 웃으며 “네, 그렇지요”라고 답하며 말을 흐렸다. 나는 영 뒷맛이 좋지 않았던 그날의 대화를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마음으로 정리했다. 하긴, 연예인인데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그렇지, 뭐.

‘신선함 없다’는 편견

올해 초 올리브에서 <밥블레스유> 시즌2를 기획하면서 최화정, 이영자가 하차하고 박나래가 합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나는 뒷맛이 찜찜했던 그날의 대화를 다시 떠올렸다. 소식을 전하는 기사 중 아무리 읽어봐도 납득이 안 되는 기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송은이와 김숙, 박나래와 장도연이 친하기 때문에 두 팀의 최대 시너지를 볼 수 있겠지만 이미 여러 방송을 통해 이들의 진행 스타일을 봐왔기 때문에 신선함은 없을 것 같다는 반응도 있다. (중략) 최화정, 이영자가 빠지고 송은이, 김숙, 장도연에 박나래가 합류하게 될 ‘밥블레스유2’. 아직 확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정해진다면 네 사람이 함께 모인 모습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진행력은 갖췄기 때문에 무엇보다 신선함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듯싶다.’(‘이영자 하차→박나래 합류…밥블레스유2 진행력 100%·신선함 급선무’. OSEN. 2020년 1월19일)

프로그램 뚜껑을 열기도 전에 벌써 ‘신선함은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기사를 보며, 나는 오랫동안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신동엽이나 김구라는 한창 바쁘던 시절엔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케이블채널과 종합편성채널까지 셈하면 두 자릿수가 넘어가던 때가 있었다. 전현무도 한번에 9개의 프로그램을 종횡무진 활동하고, 최근 장성규도 고정만 예닐곱개를 넘나들었다. 시청자들 사이에선 이들이 너무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소진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도 종종 나왔지만, 그렇다고 프로그램 뚜껑도 열어 보기 전에 ‘신선함은 없을 것 같다’는 식의 이야기가 기사로 대놓고 나온 적이 있었던가?


확고한 대세로 자리 잡은 박나래가 맡은 프로그램 개수가 8개, 장도연이 5~6개가량의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을 하고 있지만, 정작 송은이-김숙 콤비와 장도연-박나래 콤비가 제대로 호흡을 맞춰서 함께 프로그램을 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성주-정형돈/안정환 조합이 제이티비시에서 <냉장고를 부탁해>, <뭉쳐야 뜬다>, <뭉쳐야 찬다> 세 프로그램 연속으로 협업하는 동안 그 조합이 ‘신선함은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은 없다. 그런데 왜 여성 연예인들이 모여서 만드는 프로그램은 출발도 하기 전에 일단 소금부터 뿌리는 이들이 있는 걸까?


미심쩍고 찜찜했던 입맛은 <밥블레스유> 시즌2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밥블레스유> 남성판 외전을 만들면 어떻겠냐는 질문이 나온 걸 본 순간 확신으로 바뀌었다.

‘컨텐츠랩비보(방송 프로그램 제작 업체)를 통해 제작자로 우뚝 선 송은이는 그간 <밥블레스유>를 비롯해 걸그룹 셀럽파이브 등 여성 예능인의 활약을 주류에 편입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왔다. 그렇다면 그 시선을 전복해 ‘밥블레스유―외전’으로 언니가 아닌 형님들만 등장하는 형님들의 푸드테라픽을 한번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최화정 이영자는 왜 하차했을까?…의문만 남기고 끝난 ‘밥블레스유2’ 발표회’. 한국경제 BNT뉴스. 2020년 3월4일)

여성에겐 엄격한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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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블레스유2>(올리브) 진행자 송은이와 김숙이 길거리에서 한쪽 다리를 들어올려 웃음을 자아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은이-김숙 콤비와 장도연-박나래 콤비가 호흡을 맞춘 건 <밥블레스유2>가 처음이다. 프로그램 누리집

예상치도 못한 질문에 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남자들이 모여서 요리하고 먹방하는 방송이 그간 방송계에 없었던가? 질문이 너무 당당했던 나머지, 나는 혹시 내가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한참을 되짚어봐야 했다.


물론 배역과 배우의 성별을 바꿔 캐스팅하는 ‘젠더-벤딩 캐스팅’은 잘 기획하면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콘텐츠의 의미를 되짚어볼 좋은 기회 아닌가. 공연 예술계에서는 성별 이분법에 저항하는 캐스팅으로 유명한 뮤지컬 <헤드윅>부터 시작해, 최근에는 햄릿이나 리처드 3세 역할에 여성 배우들을 캐스팅해 셰익스피어를 재해석하는 것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안 그래도 남성 연예인에게 더 많은 일자리가 주어지는 방송계 흐름이 아직 유효한 상황에서, 기껏 여성 예능인들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놨더니 그것의 남성 버전을 만들어볼 생각이 없냐고 묻는 것에 큰 의미를 둘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질문을 하필이면 이제 막 새 시즌을 시작하기 위해 제작발표회를 하는 자리에서 물어봐야 했을까? 지금, 대체 뭐 하자는 건가?


<밥블레스유>가 흠결 없는 종류의 쇼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이 쇼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기존 상인들이 자리를 잃고 밀려 나가는 중인 구도심을 힙플레이스로만 소개하는 것이 자꾸 마음에 걸리고, 가끔은 사이다 답변을 주기 위해 진지한 사연에 대해 너무 쉬운 조언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한다. 시즌2가 본격적으로 방영되었을 때, 프로그램 신선도가 예전 같지 않고 비판할 구석이 있다면 응당 제대로 각을 세워서 비판해야겠지. 그러나 아직 프로그램이 제대로 출발도 하기 전에 온갖 트집을 잡는 목소리들이 튀어나오는 건 분명 징후적이다. 남성 연예인이 성공 가도를 달릴 때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던 엄격한 잣대와 지적들이, 여성 연예인이 성공 가도를 달릴 때면 발화자의 성별을 불문하고 튀어나온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물론 방송가에 이들의 성공을 시기·질투하는 이들이 있어서 조직적인 음해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과대망상일 것이다. 오히려 남녀를 불문하고 ‘여성이 이처럼 성공하는 광경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쪽이 조금 더 정확하고 냉정한 해석이겠지. 하지만 이제는 좀 익숙해질 때도 된 게 아닌가? 때가 벌써 2020년이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나 달나라 여행 같은 미래는 아직 먼 이야기라 하더라도, 여성이 성공하는 모습 정도는 좀 익숙해져야 촌티를 벗을 수 있지 않을까?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2020.03.11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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