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의 가스라이팅에 “우리는 완벽하게 당했다”

20대 두 청년 탈퇴자 경험 수기 발간

‘나는 신천지에서 20대, 5년을 보냈다’


독특한 언어와 전도방식 생생히 서술

“빅브러더도 한 수 접어야 할 정도”

한겨레

2017년 신천지 행사장에서 박형민(오른쪽 두번째)씨. 박형민 제공.

“너 말씀 배우려다가 돌아섰지? 네 부모님이 돌아가실 수도 있을 것 같네.”

“인터넷 보지 마세요. 영이 죽어요.”

신천지 탈퇴자가 고발한 ‘은사치기’와 ‘가스라이팅’ 사례다. ‘은사치기’는 신천지 탈퇴를 선언한 이에게 신도가 찾아가 저주에 가까운 위협을 퍼붓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신천지 탈퇴자로서 <나는 신천지에서 20대, 5년을 보냈다>(밥북)를 쓴 지은이들은 ‘나는 가스라이팅과 그루밍, 그리고 상식을 벗어난 전도방식에 완벽하게 당했다’고 책에서 고백한다.


김동규(24)·박형민(24)씨는 지난 2019년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이 책을 썼다. 때마침 신천지 교인이 코로나19 ‘슈퍼전파 사건’을 일으키면서 신천지가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책에는 20대가 신천지에 빠지는 이유, 신천지 특유의 전도 방식 등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원고를 두고 지난달 21일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모금을 시작했는데, 단 이틀 만에 목표 금액인 300만원을 달성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책은 오는 27일 정식 출간한다.


광주광역시에 사는 1996년생 동갑내기 두 사람은 십대 시절 한 청소년 단체에서 만나 가까워졌다. 18살이던 해 초여름, 시내 한 카페에서 교인에게 이끌려 신천지에 들어간 박형민씨는 23살이던 2019년 9월 ‘사고자’(탈퇴자를 가리키는 신천지 용어)가 됐다. 박씨의 전도로 2016년 신천지에 발을 들였던 김동규씨는 다른 친구의 도움으로 “운 좋게” 3개월 만에 그곳을 빠져나왔다.


책에는 개인사적 고백과 신천지에 대한 고발의 내용을 함께 담았다. 신천지에 처음 눈길을 준 건 두 사람 모두 미래가 막연하고 불안할 때였다. 박씨는 “대학 대신 직업반 지원서를 제출하고 길이 보이지 않은 상태”였고 김씨는 “방향성을 상실한 채 대학에 진학했다”며 고백한다. 앞으로 펼쳐질 날들이 어떤 모양일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쩔쩔 맬 무렵, 두 사람은 ‘성경 공부’를 제안받았다. 그리고 3~4명이 모이는 ‘복음방’ 단계, 150여명이 모여 공부를 심화하는 ‘센터’ 단계를 차례로 거쳤다. 통상 이 두 단계를 마치면 6개월이 훌쩍 지난다. 그러면 이때쯤 “‘에스’(S)를 푼다”. ‘네가 반년간 몸담은 이 곳이 사실은 신천지’라고 사실을 알리는 의식이다. 신천지임을 알고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지은이는 이렇게 밝힌다. “도박에 빠진 사람처럼 지난 시간에 대한 보상을 갈구했다. (…) 나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주장을 내면화하기 시작했다.”(박형민) 20대가 신천지에 빠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안정감을 갈구하기 때문”이라며 “기성세대보다 경제적으로 취약해서 불안하고, 사회적 주체가 될 기회도 적었던 청년세대에게 소속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그 나이 때의 강렬한 인정욕구를 신천지가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김동규씨는 밝혔다.

한겨레

두 사람이 이번 책에서 특히 힘주어 말하고 싶은 부분은 한 사람을 전도하려고 여러 사람이 동원돼 ‘거짓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 사람이 한 사람을 꽁꽁 싸매고, 합리적 의심이 불가능한 조건을 형성한 상태에서 (전도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이 복음방과 센터에서 만난 ‘신입’ 중 다수가 이미 신천지 신도였다고 한다. 전도 대상이 자신들을 완벽히 믿도록 신도가 아닌 척하며 추임새를 넣는 등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잎사귀’라 불리는 이들은 ‘신입’이 객관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도록 집요하게 방해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상부에 보고한다. 한 예로, 김동규씨가 피시방에서 시비에스(CBS)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을 시청하고 있을 때, 신천지 교인이던 아르바이트생이 이를 상부에 보고하여 김씨를 전도했던 박씨에게 바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처럼 “지금 ○○마을인데, 옆에 있는 사람이 개종 관련 얘기를 하고 있다” “○○교회 앞에 어떤 아주머니가 딸을 만나러 왔다고 합니다” 같은 보고가 사진과 함께 수시로 텔레그램방에 올라온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도 신천지 앞에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지은이들은 밝힌다.


탈퇴를 선언하면 상황을 조작해 상대방이 판단력을 잃게 하는 ‘가스라이팅’은 한층 더 교묘해진다. 센터에 처음 등록할 때 써낸 집 주소, 학교 등 개인정보를 활용해 접근한 뒤 “가족이 위험해질 수 있겠다”는 등으로 두려움을 증폭시켜 나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은사치기’를 하는 것이다. 탈퇴를 막으려고 신천지 때문에 집 나간 아들을 찾기 위해 1인 시위하는 부모를 가리켜 “아르바이트생”이라며 손가락질하거나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비난부터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모두가 ‘단속’의 방법이다.


지은이 김동규씨는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우리는 신천지 탈퇴를 ‘운 좋은 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며 “독자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2020.04.25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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