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전통혼례서 시작된 제주 고기국수…대표 맛집 4곳

[푸드]by 한겨레

고기국수의 유래를 아시나요


일제강점기 공출과 관련한 아픈 역사

1970년대 명맥 끊어질 위기 넘기고

1990년대 중반 다시 등장

일제강점기 전통혼례서 시작된 제주 고

골막식당의 고기국수

최근 수년간 제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향토 음식은 ‘고기국수’일 것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제주의 고기국수는 매우 생소했으나, 그 맛을 본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입소문이 번져 지금은 제주를 대표하는 향토 음식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유명세와 달리 고기국수의 유래나 역사는 알려진 바 없고 각종 포털사이트나 백과사전 등에도 온갖 억측만 난무한다.


제주에는 100년 전까지만 해도 밀국수가 없었다. 제주의 부엌살림 유물을 아무리 뒤져봐도 국수틀이나 홍두깨는 없으며 밀국수 이야기가 구전으로도 전해진 바 없다. 다만 고려 말 몽골에서 들인 메밀을 익반죽해 짤막한 국수처럼 만들어 먹었다는 메밀칼국수만이 전해온다. 그러다 1900년대 일제강점기에 ‘건면’이 제주에 들어온다. 고기국수는 이 건면의 도입과 제주의 전통혼례 풍습이 결합한 새로운 음식으로 100년도 채 안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전통혼례서 시작된 제주 고

국수마당의 고기국수

제주의 전통혼례는 돼지를 잡으면서 시작해 최소 3일 이상 진행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잔치 음식을 그 기간 동안 나눠 먹는다. 이때 끼니마다 접시에 수육 세 점과 두부와 순대도 한 점씩 담아 주는데, 이를 ‘괴기반’이라 한다. ‘반(槃)’은 한 사람 분의 음식이라는 의미다. 또한 밥과 괴기반과 함께 돼지고기 육수에 해조류인 모자반을 넣어 ‘몸국’이라는 국을 끓여 먹는다. 과거에는 구경하기 힘든 육수로 만든 국으로 제주만의 잔치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돼지를 잡는 풍습은 이어졌다. 메이지유신 이후에도 일본인들은 고기를 그다지 탐내지 않아 돼지를 공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톳이나 천초, 모자반 등 해조류를 탐해 해녀들을 앞세워 제주 해조류를 채취해 전량 본국으로 가져가버렸다. 1920년대 일본의 기록에는 제주에서 흑우와 패류, 해조류 등을 수입했다는 자료가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전통혼례서 시작된 제주 고

제주 토박이가 운영한 ‘석산이네 국수공장’이 자리했던 가옥. 1920년 대에 시작해 해방 이후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적산가옥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다.

결국 모자반이 없어 몸국을 끓일 수 없던 제주 사람들은 육지의 음식인 잔치국수를 돼기고기 육수에 말아 먹었다. 이때 괴기반에 담을 고기를 고명으로 얹으면서 자연스럽게 제주식 잔치국수인 고기국수가 완성됐다. 그렇게 고기국수는 90여 년 전 제주시의 무근성(현 삼도이동 일부) 일대와 애월읍 등지를 거쳐 섬 전체에 확산됐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부터 해방 이후까지 제주는 혼란에 휩싸여 전통적인 풍습이 많이 사라졌다. 특히 1970년대 군사정권에는 가정의례 간소화 정책을 빌미로 집안 대소사에 돼지 도축을 금지했다. 그 덕에 전통적인 ‘반’이 사라지고, 혼식과 분식 장려 정책으로 국수가 일반화돼 멸치 육수가 제주에도 확산됐다. 이에 고기국수는 그 명맥이 끊어지는 듯했다.


1990년대 중반, 이른바 향수 상품으로 고기국수가 재등장한다. 그러나 이때부터 사골 육수를 사용했다. 지금은 거의 모든 국숫집이 사골 육수를 사용하는데, 이는 전통 육수를 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진하면서 담백한 국물을 얻기 위해 나타난 조리법이다.

일제강점기 전통혼례서 시작된 제주 고

삼대전통 고기국수

현재 고기국수 맛집을 검색하면 혼란스러울 만큼 많은 추천이 뜬다. 맛은 각자의 기준이니 따질 이유가 없다. 대신 토박이들이 즐겨 찾는 토속적인 고기국수 전문점을 몇 집 소개한다.


사골 육수를 처음 대중화시킨 집으로 유명한 ‘골막식당(제주시 천수로 12, 064-753-6949)’은 고기국수집 중 가장 굵은 면을 사용하는데, 육수의 기름기가 면에 스며들어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고기국수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집은 ‘삼대전통고기국수(제주시 신대로5길 17, 064-748-7558)’다. 이 집만이 ‘삼대’ 호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위원회에 인정받았고 제주도로부터도 가업승계 대물림 맛집으로 지정됐다. 특이하게도 제주 시내와 애월읍 등 서북지역의 전통 방식인 채소 고명을 많이 사용하고 달걀 줄 알을 푸는 방법도 계승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전통혼례서 시작된 제주 고

올레국수의 고기국수

투박한 방식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끄는 집은 ‘올래국수(제주시 귀아랑길 24, 064-742-7355)’다. 사골 육수보다 고깃국물을 사용하는 전통을 유지하는데, 고기 고명도 투박하게 썰어 올린 것이 정겹다.


국숫집이 밀집한 삼성혈 앞 국수 거리를 찾는 제주 사람들은 ‘국수마당(제주시 삼성로 65, 064-757-5559)’을 선호한다. 꾸미지 않은 토속적인 맛과 함께 면을 무한 리필해주는 인심 좋은 집이다.


글·사진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 원장

2018.09.18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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