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그대로, 장대한 밤색 물길 흐르는 삼척 덕풍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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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산도 하늘도 바람도 모두 들러리

손때 묻지 않은 장대한 밤색 물길

계곡의, 계곡을 위한, 계곡에 의한

강원 삼척 풍곡리 덕풍계곡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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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8일 강원도 삼척시 풍곡리 덕풍계곡 제1용소 가는 길, 여행객들이 물에서 더위를 씻고 있다. 김선식 기자

계곡에선 늘 땀을 뻘뻘 흘렸다. 보통 낑낑댔던 것 같다. 짐 들고 명당자리 찾아 헤매느라, 이끼 낀 바위에 미끄러질까 봐, 낚시나 족대질을 하느라 진땀을 흘리곤 했다. 계곡은 언제나 땀을 뻘뻘 흘리게 하기 때문에 바람과 물이 더 시원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6월28일 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덕풍계곡에 갔다. 이번엔 계곡을 따라 걷기만 했다. 역시나 땀을 뻘뻘 흘렸고 가끔 계곡을 보면서 시원함을 느꼈다. 다만 이 계곡은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었다. 산에 계곡이 딸려 있다기보다는 계곡에 산이 딸린 느낌이랄까.

 

승용차 한 대는 지나갈 수 있지만, 동시에 두 대는 통행이 어려운 길이었다. 오전 11시, 에스유브이(SUV·스포츠실용차)를 타고 덕풍계곡 들머리(강원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로 진입했다. 이곳부터 남동쪽 경북 울진군 경계에 있는 응봉산(해발 999m)까지 10㎞가량 덕풍계곡이 이어진다. ‘얼마나 물이 좋기에 초장부터 난코스냐?’ 의구심은 금세 사라졌다. 차창 밖으로 투명한 에메랄드빛 물길이 펼쳐졌다. 바위틈에서 자란 소나무는 물에 그늘을 드리웠다. 물놀이, 낚시, 낮잠이 모두 가능할 만한 명당자리들을 뒤로하고 2㎞가량을 달렸다. 차량이 더는 들어갈 수 없는 곳, 탐방로 들머리에 내렸다. 오전 11시30분, 걷기 시작했다.


울창한 오솔길은 계곡으로 통하는 복도 구실을 했다. 그 길을 3분가량 걷자 오른편에 계곡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곡 물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어리둥절했다. 물색이 갈색이다. 같은 계곡인데 물빛이 이렇게 극명하게 다를 수 있을까? 차를 타고 지나쳐 온 에메랄드빛 계곡 물이 눈에 밟혔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철제 난간 계단을 따라 들어갔다. 10분쯤 걷자 수십미터 높이의 기암괴석이 나무로 뒤덮여 ‘바위섬’처럼 우뚝 서 있었다. 계곡이 거의 180도로 꺾여 아파트 한 채만 한 바위를 휘감아 돌아 마치 ‘섬’처럼 보인 것이다. 장대한 절경 앞에서 걸음은 자연스레 멈췄다. 계곡으로 내려가자 물은 깊지 않았다. 무릎 정도 잠겼다. 작은 물고기들은 고작 수심 10㎝밖에 안 되는 너럭바위 위를 겁도 없이 노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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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풍계곡 탐방로 들머리에서 10여분 걷자 나타난 풍경. 김선식 기자

탐방로는 걷기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 철제·나무 계단과 난간이 있다. 가끔은 밧줄 난간만 잡고 바위 위를 걸어야 했다. 아주 가끔은 밧줄조차 없는 맨 바위를 걸었다. 길을 만든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계단과 난간은 지난해 설치했다. 그 전까진 밧줄 난간만 드문드문 있었다고 한다. 2004년 덕풍계곡을 답사한 승우여행사 이원근(43) 대표는 “그땐 아무것도 없어서 계곡 가장자리로 걸어가야 했다”고 말했다. 덕풍계곡 들머리에 있는 좁은 포장도로도 2002년 태풍 루사로 마을 길이 유실된 뒤에야 생겼다고 한다. 덕풍계곡은 ‘오지 중 오지’로 알려져 있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계곡이 흘러 마을 사람들은 전쟁이 터진 줄도 몰랐다가 피난 오는 사람들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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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풍계곡의 투명한 갈색 물빛.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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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투명한 갈색 물빛도 신비롭다. 물은 덜 끓인 보리차처럼 노랗다가 콜라처럼 새까맣다. 꼭 넓은 용소만 새까만 건 아니다. 바위틈 30㎝가량 간격을 흘러내리는 협곡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까만 물을 품고 있다. 깊은 곳은 수심이 수십미터라고 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수십길 물속은 알 수 없다. 물빛의 비밀은 나무에 있다. 백두대간에서 자생하는 금강송 군락지인 이곳엔 소나무와 참나무가 많다. 수년간 덕풍마을에서 마을·숲 해설을 해 온 노영만(63) 숲 해설가는 “대대로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참나무 낙엽 등으로 이뤄진 표피층이 그대로 보존돼 계곡 물에 유독 많이 우러나는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은 그 물을 ‘밤물’이라 부른다. 원래는 ‘도토리(참나무 열매)물’이 맞지만 편하게 ‘밤물’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계곡 물이 밤색처럼 보인다. 그는 수년간 계곡을 관찰한 결과라며 덧붙였다. “여긴 비가 오면 계곡 물 갈색이 더 짙어진다. 에메랄드빛 계곡 일부도 갈색으로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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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풍계곡 제1용소 가는 길. 김선식 기자

쉬엄쉬엄 걸었더니 40분 만에 제1용소에 닿았다. 걷기 시작한 탐방로 들머리에서 1.3㎞ 거리에 있는 곳이다. 제1용소는 수십미터 높이의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평평하고 넓은 계곡 끝에 있다. 폭포가 만든 깊은 웅덩이인 용소를 보자마자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폭포를 보면 후련한 기분이 들고, 넓은 웅덩이를 만나면 잠시 쉬어가고 싶기 마련이다. 덕풍계곡은 빙하 침식으로 생겼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거친 빙하가 이토록 섬세하고 유려한 계곡 선을 만들어냈단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전설이 생겨나는 건 역사나 과학으론 도무지 와 닿지 않아서일 것이다. 덕풍계곡 용소가 탄생한 전설은 신라 진덕여왕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상 조사가 나무 기러기 3개를 만들어 울진 불영사, 안동 홍제암, 덕풍계곡 용소골로 날려 보냈는데 그 나무 기러기가 용소에 떨어지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고 홍수가 범람하여 천지 대변혁이 일어나면서 3개의 용소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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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풍계곡 제2용소.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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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용소 물에 발을 담그자 물고기들이 발로 모여들었다. 김선식 기자

덕풍계곡에는 용소 세 개가 있다. 제1용소에서 다시 1.3㎞ 거리에 제2용소가 있다. 제3용소까지는 동식물 보호를 이유로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제2용소는 제1용소보다 폭포가 높고 웅덩이가 넓다. 얕은 물에 먼저 발 담그고 있던 사람들이 “어?” “어!” 이상한 소리를 냈다. 급기야 “여기 더 못 있겠다”며 물 밖으로 나왔다. 물고기들이 발을 건드려 간지럽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천연 닥터피시’를 하고 나온 것이다. 물에 들어가 발목까지 겨우 잠기는 곳에 발을 담갔다. 길이 10㎝ 안팎 물고기 십여마리가 발에 몰려들어 이따금 입을 맞췄다. 인간의 발을 신기하게 여기는 물고기들이 신비로웠다. 오랜만에 인간을 경계하지도 막 대하지도 않는 곳에 방문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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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용소 폭포 클로즈업. 김선식 기자

제2용소에서 다시 탐방로 들머리로 돌아오니 오후 2시30분이었다. 덕풍계곡은 3시간이면 제2용소까지 느긋하게 둘러보고 돌아올 수 있다. 이곳에선 산도, 하늘도, 바람도 모두 들러리였다. 계곡의, 계곡을 위한, 계곡에 의한 공간이다. 사람 손때 묻지 않은 장대하고 유려한 ‘밤물’길을 걷다 보면 이런 계곡에선 물놀이도 낚시도 고기 굽기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덕풍계곡 탐방로는 2005년 9월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야영과 취사는 안 된다.

덕풍계곡 여행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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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는 길 : ‘덕풍계곡 주차장’ 주소는 강원 삼척시 풍곡안길 17-18. 서울에서 출발하면 차로 4시간가량 걸린다. 광주원주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제천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영월, 정선, 태백 방면으로 간다.
  2. 먹을 곳과 묵을 곳 : 덕풍계곡 탐방로 들머리에 있는 ‘덕풍산장’(033-572-7378/덕풍길 1085)은 토종 닭백숙(5만원)과 닭볶음탕(5만원), 도토리묵, 감자전 등을 내놓는다. 닭 요리는 탐방 전에 미리 주문하면 하산하자마자 먹을 수 있다. 덕풍계곡에서 약 10㎞ 거리에 있는 ‘너와마을식당’은 모든 식재료를 직접 재배해 쓴다. 산채비빔밥(7000원), 청국장(7000원), 감자전(5000원) 등이 있다. (033-552-5967/도계읍 문의재로 1113) 서울을 오갈 때 지나는 강원도 정선 고한읍에는 곤드레밥이 구수한 ‘태평소’가 있다. (곤드레정식나물밥 1만1000원/033-591-3600/고한7길 5-37) 덕풍산장과 너와마을은 숙소도 운영한다. 덕풍계곡 들머리 주차장부터 계곡을 따라 펜션과 민박집이 여럿 있다.
  3. 문의 : 8월17일부터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9시, 덕풍마을부터 제2용소까지 숲 해설가와 산행할 수 있다. (전화 033-576-0394 누리집 valley.invil.org) 승우여행사는 8월과 10월에 덕풍계곡을 당일치기로 여행하는 상품을 내놨다. 아침 6시30분 서울에서 출발해 저녁 8시30분 서울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5만1000원·02-720-8311)

머루가 익는 삼척 너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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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를 쌓아 놓은 창고. 김선식 기자

덕풍계곡으로 가는 길, 과거를 되살린 산촌이 있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신리에 있는 너와마을이다. 마을은 ‘너와집’ 전통을 되살렸다. 지난 6월28일 오전 9시, 너와마을 들머리에 들어서자 너와집들이 정원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었다. 너와집은 옛 화전민이나 산간 주민들이 짓고 살았던 집의 형태다. 남한에선 과거 강원도와 울릉도에 분포했다고 전해진다. 200년 이상 된 붉은 소나무를 쪼개 널(너와)을 만들고, 너와 수십·수백개를 서로 이어 기와처럼 지붕을 잇고, 용마루엔 굴참나무 껍질인 굴피를 덮어 비를 막았다. 너와 한장은 보통 가로 20~30㎝, 세로 40~60㎝, 두께 4~5㎝ 정도다. 썩은 너와는 수시로 갈아 끼우고 5년에 한 번은 지붕 전체를 갈아야 한다. 너와는 습기와 연기를 받으면 가라앉아 물이 잘 새지 않는다고 한다. 여름철엔 틈새로 통풍이 잘돼 시원하고, 겨울철엔 지붕에 눈이 쌓여 틈새를 메워 단열 효과가 있다.


현재 너와마을에는 중요민속 자료로 보존된 김진호 가옥(33호)과 강봉문 가옥(35호)이 옛 너와집으로 남아 있다. 또 다른 옛 너와집 한 채는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해 일반인들에게 내부를 공개하고 있다. 너와마을은 한옥 펜션 등 여덟 채를 숙소로 대여한다.(문의 033-552-1659/neowa.invil.org)


너와집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외양간이 눈에 띄었다. 외양간이 집 안채에 있다. 강원도 산간지대 추위와 맹수로부터 가축을 보호하려는 지혜다. 방 안에는 황토로 만든 조명이자 벽난로인 ‘코클’이 있다. 초와 기름이 귀한 산간지대 사람들은 코클에서 관솔(송진이 엉긴 솔가지)로 불을 피웠다. ‘코클’은 생김새가 사람 콧구멍과 비슷해 ‘코굴’이라 불리다 ‘코클’로 변천했다고 한다.


마을에 있는 머루 와인 공장도 너와지붕을 올렸다. 고산지대인 너와마을에서 무농약 머루를 재배해 머루, 머루 와인, 머루즙, 머루 식초 등을 가공·판매하는 곳이다. 너와지붕을 올린 머루와인 공장에선 1년에 와인 약 1만5천병을 생산하고 있다. 공장을 운영하는 너와마을영농조합법인은 2015년 9월 강원농촌융복합산업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로부터 6차 산업 융복합인증사업자로 선정됐다. 6차 산업은 농업(1차), 제조가공(2차), 체험·관광 등(3차)를 모두 연계한 산업이다. 지원센터는 ‘주원료 국산’, ‘강원도 농산물 50% 이상’, ‘최근 2년간 전국 평균 농가소득 3800만원 이상 사업성과’ 요건을 만족하면 인증 사업자로 지정한다.

삼척(강원)/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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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4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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