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최강 물곰은 어떻게 최초의 ‘우주 도둑’이 됐나

출발 몇주전 비밀리에 디스크에 담아

수천마리 도포 뒤 에폭시 수지로 밀봉

착륙 후 밝히려다 추락으로 기회 놓쳐

한겨레

지구 최강의 생명력을 갖춘 것으로 추정되는 초소형 무척추 동물 ‘물곰’. 위키미디어 코먼스

최근 달에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돼 화제를 모은 지구 최강의 생물체 `물곰'(곰벌레)의 달 운송 작업은 비밀리에 추진된 프로젝트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물곰은 지구에서 가장 생명력이 강한 생명체로 알려진 동물이다.


지난 4월 이스라엘의 우주선 베레시트를 통해 물곰 보내기 계획을 추진한 미국 아치미션재단 공동창립자 노바 스피백(Nova Spivack)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베레시트 발사 업체인 스페이스일에 물곰을 보낸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우주개발 업체들은 마지막에 어떤 변화를 주는 걸 원치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직접 위험을 떠안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물곰은 졸지에 달에 몰래 칩입해 들어간 최초의 `우주 도둑'이 됐다. 앞서 스피백은 물곰의 존재를 처음 보도한 정보기술 전문매체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애초부터 물곰을 보낼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며 우주선 발사 몇주 전에 결정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스피백은 베레시트가 달에 착륙한 뒤에 이를 발표하고 양해를 구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베레시트가 고도 7km 지점에서 엔진 고장으로 달 표면에 추락함에 따라 발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몇주 간에 걸쳐 낙하 속도와 충돌 궤적을 통해 달 표면 충돌시의 충격 강도와 열을 추정해본 결과, 물곰이 밀봉돼 있는 디스크가 손상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최근 <와이어드>를 통해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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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곰 수천마리가 밀봉돼 있는 `달 도서관' 디스크 표면. 아치미션재단 제공

모든 대사 과정 멈추고 깊은 동면 들어간 상태

깨어나려면 지구로 가져와 수분 공급해야 가능


‘달 도서관'(루나 라이브러리)라는 이름의 이 디스크에는 물곰 외에도 3000만쪽의 정보와 스피백을 비롯한 25명의 인간 모낭과 혈액 샘플이 담겨 있다. 인간 DNA 샘플은 문헌 정보를 새겨넣은 얇은 니켈 층 사이에 집어 넣었으며, 물곰 수천마리는 디스크 겉면에 에폭시 수지로 밀봉했다.


물곰은 다리가 8개인 0.5mm 남짓의 초소형 무척추 동물로 얼려도, 끓여도, 굶겨도, 치명적인 방사선을 쪼여도 죽지 않는 완보 동물이다. 과학자들은 음식이나 물 없이도 최장 30년 동안 살 수 있고 절대온도인 섭씨 영하 272도, 영상 150도의 극저·고온에서도 견뎌내고, 우주와 같은 진공 상태에서도 살아남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달에 보내질 당시 물곰은 수분이 제거돼 모든 대사 과정을 멈추고 깊은 동면 상태에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런 상태로 10년을 보낸 물곰을 되살린 경험이 있다.


스피백은 그러나 휴면 상태의 물곰이 달에서 살아나 번식할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물곰이 깨어나려면 훗날 다시 달에서 가져와 수분을 공급해 주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물곰이 곧바로 깨어난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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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우주선 베레시트의 착륙 예정지. 미 행성협회 제공

나사 "무분별한 달 표면 오염, 이상적인 방식 아니다"

스피백처럼 비공개리에 임의로 달에 생물체를 보내는 행위는 괜찮은 것일까? <와이어드>는 스피백이 물곰을 보낸 것이 불법적인 건 아니라고 전했다. 미국 항공우주국에는 태양계 모든 행성이 다른 행성 생명체로부터 오염될 위험을 막는 것을 임무로 삼고 있는 행성보호사무국(Office of Planetary Protection)이 있다. 이 사무국은 오염 가능성을 기준으로 우주 탐사 임무를 분류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라 화성처럼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천체에 대한 탐사는 생명체 가능성이 거의 없는 달 탐사보다 엄격한 멸균 과정을 거친다. 1969~1972년 달에 갔다온 미국 우주비행사들이 미생물이 즐비한 배변 봉투 90여개를 달에 남겨 놓고 올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차이 때문이다. 하지만 나사의 신임 행성보호사무국장 리사 프랫(Lisa Pratt) 박사는 성명에서 "달 표면의 무분별한 생물학적 오염은, 설령 달이 100% 죽은 천체라고 해도 과학적으로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이번 사례는 아폴로 달 착륙 임무 중 남긴 생물학적 폐기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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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시트가 추락한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빨간색 원). 위키미디어 코먼스

2020년 두번째 도전엔 DNA 샘플 자원자 신청 받을 계획

아치미션재단은 인류 멸종을 부를 수 있는 지구 비상사태를 대비해 인류 문명의 증거들을 우주에 영구히 남기는 것을 목표로 2015년 세워진 단체다. 이번에 베레시트에 실어 보낸 `달 도서관'은 `억만년 보관소'(Billion Year Archive)라는 이름의 이 프로젝트가 수행하는 첫번째 공식 임무였다. 이번에 보낸 디스크의 수명은 수백만년에 이른다고 한다.


IT 기업가 출신인 스피백은 인터넷언론 <매셔블>과의 인터뷰에서 `최초의 우주 밀수업자'라는 지적에 대해 스스로 `최초의 우주해적'이라고 이를 인정하면서, 인간이 아닌 지구 생물을 처음으로 보낸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자신의 동료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노바의 방주'에 비유했다고 덧붙였다.


스피백은 다음번엔 이번처럼 비밀리에 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아치미션재단은 현재 2020년 달 착륙 탐사선을 보낼 예정인 아스트로보틱과 두번째 달 도서관을 보내기로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


두번째 디스크에는 좀더 많은 유전물질을 포함시킬 예정이다. 위키피디아 정보도 디엔에이에 담아 보내고, 멸종위기종 디엔에이도 보낸다. 특히 인간 디엔에이는 킥스타터 기부 방식을 통해 자원자를 신청받을 계획이다. 킥스타터는 올 가을 시작한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2019.08.27원문링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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